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1일 20곳의 공동체라디오 신규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지역사회 곳곳에서 기대가 모인다. ‘풀뿌리 방송사’ 설립을 위해 10년 넘게 준비해 온 전북 전주에선 노동조합, 통일·언론 관련 등 사회단체와 학회까지 설립에 동참했다. 최초로 공동체라디오가 설립되는 광역 시·도도 9곳이나 된다. 고려인마을 공동체에선 “드디어 우리 목소리를 낼 공식 통로를 얻었다”는 환영이 나왔다. 

방통위가 신규 사업자를 선정한 건 2004년 공동체라디오 사업 최초 도입 후 17년 만이다. 당시 7개 방송사업자가 선정돼 시범사업 기간을 거쳐 2009년 정식 허가를 받았다. 이후 추가 사업자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나왔으나 주파수가 없다는 식으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현 정부 들어 방통위가 논의에 속도를 냈고 과기정통부는 국립전파연구원·중앙전파관리소 등을 통해 전국의 가용주파수를 찾고 혼신이 최소화되는 송신소 위치와 안테나 각도까지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예상보다 많은 20곳이 선정됐다.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이번에 사업자로 선정된 ‘전주공동체라디오’는 17년간 이 사업을 기다린 곳 중 하나다. 전북은 최초 사업자 선정 때 공모에 참여했다가 탈락했던 지역이다. 전주시민미디어센터가 이번 신규 사업 공모의 주축이 됐다. 2005년 만들어진 전주시민미디어센터는 비상시적인 ‘미니FM’으로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해왔다. 전주국제영화제 등 지역 행사가 열릴 때 주파수를 받아 방송을 제작·송출했다. 

주민들은 풀뿌리 단체들이 대거 함께 한 점에 기대를 모은다. 방송사업자 ‘사단법인 전주공동체라디오’는 다양한 분야의 단체, 노조 등이 연대한 기구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전북마을공동체미디어활성화네트워크, 전북대방송국동우회, 민주노총 전북본부, 전주겨레하나, 전주YMCA, 호남언론학회, 참여와 공감포럼, 참여미디어연구소 등의 단체다. 주민 자치부터 통일,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단체가 모였고 노동조합과 언론학자들도 참여했다. 

최성은 전북시민미디어센터 소장은 “공동체라디오는 취지상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데 의미가 있어, 사업 취지에 동의하는 단체들을 모았다. 모두 재정이나 운영 책임을 진다. 편성은 방송국의 편성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며 “전주는 2006년부터 꾸준히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왔다. 조만간 법인 등기를 마치고 송신소, 스튜디오 등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광주의 오랜 고려인 공동체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도 신규 사업자 중 하나다. 고려인마을은 광주 광산구에 있다. 광산구는 다양한 민족·인종이 섞여 사는 대표 다문화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은 주로 2000년대부터 유입돼 2019년 기준 약 7000여명이 거주한다. 

고려인마을도 2016년부터 ‘미니 FM’ 방식으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몇 해 전부턴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방송을 24시간 송출 중이다. 청취 대상은 한국을 포함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고려인이다. 이천영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 150년 이주 역사 동안 고려인 동포들이 자체 방송국을 가지게 된 건 처음”이라며 “우리가 가진 통로로 우리 목소리를 낸다. 주파수를 부여받음으로써 정부로부터 공신력을 부여받았다는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장 활성화됐다고 알려진 충북 옥천은 ‘지역 미디어 플랜’이란 큰 그림을 그려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했다. 군민 5만여명 규모의 옥천은 지역 주간지 옥천신문, 월간지 ‘월간 옥이네’, 무가생활정보지 ‘오크’ 등의 매체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가칭 ‘옥수수’라는 이름의 청소년 매체도 창간을 준비 중이고, 지역 미디어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한다. 방송사 설립까지 구상하는 옥천군 주민들은 그 일환으로 공동체라디오 공모에 참여해 성공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옥천군의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가 사업권을 땄다. 황민호 사무국장은 “‘푸드플랜’처럼 지역엔 미디어플랜도 필요하다. 지역 공론장을 촘촘히 엮고, 소수자 목소리도 조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민주화운동, 언론개혁운동 등의 이력을 가진 한 지역 주민이 대표를 맡았고, 청년 활동가가 편성책임자를 맡을 예정이다. 풀뿌리 자치·언론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도 공동체라디오가 추가됐다. 2004년 이주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성서공동체FM’이 라디오를 시작했고 이번엔 대구시 동쪽 외곽 지역 공동체가 사업자 허가를 받았다. 안심마을의 ‘와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안심마을은 지역 풀뿌리 자치가 활성화된 지역이다. 여러 협동조합, 노인·장애인·지역 복지지관 등이 협력해 다양한 마을 공동체 사업을 열어 왔다. 

박인규 협동조합 이사는 “이 지역은 발달장애와 관련된 당사자 활동, 주민 연대 활동이 활발했다. 성서FM이 그랬듯, 안심마을의 공동체라디오도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제작할 수 있는 방송이 될 것”이라며 “매스미디어에서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부터 동네 자영업자, 의사 같은 전문직 주민들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전하겠다. 청소년·노인 주민도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라디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동체라디오가 최초 설립되는 광역 시·도는 9곳으로, 인천 대전 세종 부산 전북 전남 경남 충북 강원이다. 방통위는 신규 허가 법인을 선정하며 기존의 1~3와트에 불과하던 전파 출력도 10와트로 높였다. 기존 공동체라디오들이 “반경 1km 내에만 전파가 전달된다”며 꾸준히 문제 제기한 결과다. 그러나 고층건물이 들어선 도시 환경 특성상 10와트 조차 방송권역이 10% 정도 늘어날 뿐이라며 30와트까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향후 공동체라디오가 활성화됨에 따라 다양한 반응과 요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