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난생처음 점을 뺐다. 귓바퀴에 꽤 커다란 점이 생긴 걸 엄마가 발견했다. 엄마는 사진까지 찍어 보여주며 “점의 모양이 좀 이상한데? 너무 크잖아?”라고 말했다. 그날 밤 소름 끼치게도 유튜브 채널에 ‘점인 줄 알았는데 피부암?!’이라는 썸네일이 떴다.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피부과에 방문하기 전까지 유튜브 동영상에서 일러준 ‘흑색종 판별하는 ABCDE 방법’을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로 점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은 악성일 확률은 적지만 위험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빼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뺄게요” 대답했다. 레이저로 점을 지지는 동안 불현듯 내 몸에 있는 모든 점들이 뇌리를 스쳤다. 발바닥에 있는 점, 가슴팍에 있는 점. ‘그래. 온 김에 그냥 다 빼버리자.’ 결국 세 차례 시술을 더 했다. 발바닥에 마취 주사를 놀 때는 아픔이 두려워 내 팔을 더 세게 깨물었다. 아픔을 아픔으로 가리려는 발악이었다. 다음날까지 잇자국이 선명했다.

삶은 불안의 연속

일찍이 건강을 신경 쓰고 조심한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일까 싶냐 만은 내가 건강 염려증이 도졌다는 건, 삶이 ‘불안’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너무나 열망할 때,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아주 확실할 때 나의 불안은 높아진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목표와 꿈이 확실해서 불안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진학했는데 지리산 산악등반에 수학 문제집을 가지고 갈 정도로 대학 입시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친구들은 “너 대학 갈 거면 대안학교 왜 왔냐?”라고 물었다.

올해는 입시 다음으로 나의 불안을 증폭시켜준 취업 준비라는 걸 해봤다. 한 중학교에서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작은 책상에 앉아 퀭한 얼굴로 자격증 시험을 봤다.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스킬이 없어 지문을 빨리 읽지 못했고 결국 첫 시험에서는 ‘무급’을 받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생애 최악의 점수였다. 돌아와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한 강사가 지문을 다 읽으면 미련한 거란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밤마다 울었다. 막막해서가 아니라, 간절해서 울었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마음이 가장 괴롭고 무섭다고 하니 같이 취업을 준비하는 스터디원은 내게 말했다. “저는 승부욕이 있어서 경쟁이 너무 신나는데!”

깨발랄한 MZ를 상상하지만

흔히들 MZ 세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 MZ 세대는 활기차다, MZ는 뭔가 다르다, MZ는 통통 튀는 사고를 한다... MZ에 대해 왠지 다르고 조금은 ‘힙한’ 건강한 청년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의 의식이 전환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마따나 직장 상사가 부당한 말을 하면 옳은 소리를 할 것 같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다 간절한 것 같아. 겉으로는 아닌척해도...”라며 요즘 미디어에서 MZ에게 너무 많은 걸 투영한다고 말했다. ‘여행에 미치다’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퇴사 후에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이 꼭 ‘청년’ 과 ‘청춘’을 의미하는 키워드일까? MZ 세대론이 무한히 재생산되면서 면접장이나 기성세대는 MZ만이 생각할 수 있는 새롭고 신박한 아이디어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과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학벌이 좋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도 없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언제나 ‘핑크빛’ 미래인 것도 아니다.

미친 사람처럼 볶아주세요

코로나19로 채용 과정은 더욱 험난해졌다. 매번 미지수와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오프라인 필기시험이 온라인으로 바뀌거나 예년과 다르게 AI 면접이 추가되거나 일정이 바뀌거나 미뤄지기 일쑤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세상에서 내가 알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뿐. 나는 사회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이제껏 토익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 ‘그래도 토익 점수는 있어야...’라는 주위의 말에 토익 학원을 등록해놓고선 전날 전액을 환불받았다. 돈이 입금되자마자 나는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말했다. “미친 사람처럼 볶아주세요.” 언젠가 있을 면접을 위해 생머리의 ‘무색무취’ 머리를 하고 있었던 나는 그날 머리를 빠글빠글 볶아버렸다. 이것이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MZ’다운 도전이었을까?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MZ라고 다 같은 MZ가 아닙니다

가끔 그동안 평생 만난 친구들의 소식을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프로필을 통해 구경한다. 그럼 “얘가 예술을 한다고?!!” 하며 놀람을 감출 수 없게 하는 친구도 있고 중학교 때 ‘일진’이라고 불렸던 애가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럼 동네 친구들끼리 세상 다 살아본 표정으로 말한다. “사람 인생 모르는 것이여~”

초등학교 때부터 동아전과를 달달 외웠던 내가 대안학교에 입학했으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상상치 못했을 일이고, 덴마크 농장에서 사과를 따다가 종합 대학을 자퇴하기로 결심하고 예술 대학에 진학한 일 역시 부모님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자란 애가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하면 모두가 휘둥그레 놀란다. “너는 그럴 줄 몰랐어!” 흔히 말해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내가 ‘주류’의 삶으로 편입되려고 하는 게 쉽지 않은 건 맞지만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현실적인 생각들이 오고 간 결과다. 나는 놀라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취업은 나쁜 거야?” “취업은 시류에 편승하는 거야?” 그러니까 한 사람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뭐 하나 속단하고 재단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이 잘 안 변한다고 하지만 의외로 일상을 살다가 만나는 수많은 우연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기도 한다.

MZ에 대한 편견이 불편한 MZ

MZ 세대를 말하는 기사를 보고 있자면 걱정이 든다. 한 친구는 내가 이런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고 하니 “제발 MZ에 대한 편견 좀 없애줘. 너무 억울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른이 될수록 체감하는 세상의 시계는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통해 꿈꿨던 일상의 시계와 다르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청년들은 주류에 편입되는 길을 택하고 전 세계를 집처럼 누비기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약을 알아보고 좌절하길 반복한다. 연예인들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화려한 부캐’도 없다. 건강과 부캐 라는 키워드보다는 ‘번아웃’이나 ‘작은 성취’가 MZ를 설명하기에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불행하냐고? 그렇지도 않다.

다양성 인정하지만 ‘정상성’ 답습하는 청년 따분하게 여겨

모두가 ‘건강한’ 청년의 모습으로 살 필요는 없다. 그런데 청년에 대한 프레임은 극과 극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다양성은 인정하는데 ‘다양하지 않은’ 그러니까 기존의 ‘정상성’에 부합하는 청년을 인정하지 않는 일도 있다. 쉽게 말해 “난 틀에 박힌 게 좋아!” “난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라고 하면  ‘따분한 청년’ ‘게으른 청년’ ‘요즘 애 답지 않은 청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다. 혹은 닭장 속에 있는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줄도 모르는 ‘닭’처럼 본다거나. 사실 이것은 미디어나 언론, 또는 기성세대만의 프레임은 아니다. 같은 청년세대를 지나치고 있는 이들끼리도 서로를 향한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

여행 안가도 괜찮아, 부캐 없어도 괜찮아, MZ답지 않아도 괜찮아

여성에게 여성성을 부여하고 남성에게 남성성을 부여한 결과로 마음이 다친 청년들이 많듯, 청년들에게 어떤 청년다움을 부여하는 것은 한 개인을 낙오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이 양극화되어 있고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는 흑백 논리가 만연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야만 리듬감 넘치고 흥 넘치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모두가 ‘나’로써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부캐 없으면 어떻고 세계 여행 안가면 어떤가. 공정을 부르짖을 수 없는 상황이면 또 어떤가. 그래도 그들은, 우리는 모두 청년이다.

 

이혜원은 다큐멘터리를 전공하며 자유롭고 틀에 갇히지 않은 시선으로 20대 청년들의 삶과 세상을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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