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영화 ‘랑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또 영화 해석은 기자 개인의 관점입니다.

영화 ‘곡성’의 나홍진 프로듀서와 반조 피산다나쿤 감독이 만든 영화 ‘랑종’(제공 배급 쇼박스)이 개봉 첫 주 55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첫날 13만 관객 동원, 개봉 4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최단 기록을 세웠다.

다만 영화 평은 갈리고 있다. 특히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쓴 만큼 ‘곡성’과 주제 의식이 겹치거나 몇몇 장면들은 이미 ‘곡성’에서 활용한 기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악령에 빙의되는 주인공 밍(나릴야 군몽콘켓 배우)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극적이고, 아무리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했다지만 지나치게 관음적 연출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카메라로 주인공을 쫓는 형식을 통해 도덕적 비판을 피하려 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랑종이 결국 ‘무력한 선’을 이야기한다는 점도 회자된다. 실제로 랑종은 허무할 만큼 선을 무력하게 그려낸다.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말로, 바얀신을 믿고 따르는 태국의 한 마을에서 바얀신에 빙의된 한 무당과 그 무당 가족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서 바얀신은 ‘선’을 의미한다. 이 마을을 돌봐주고 악을 처단해야 하는 선의 역할로서 신이며, 초반에는 선한 바얀신에 빙의된 ‘님’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하다.

▲영화 '랑종' 포스터.
▲영화 '랑종' 포스터.

‘님’은 평생 지극 정성으로 바얀신을 모신다. 동네 사람들은 이름 모를 병에 걸리면 님을 찾아 치유하기도 한다. 문제는 님의 조카 밍이 신병에 걸리면서부터다. 밍은 지나치게 생리를 오래 하기도 하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아이들과 노인을 때리는 등 이상 행동을 한다.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밍을 비춘다는 지적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장면은, 밍이 생리처럼 몸에 피를 흘리는 순간 화장실까지 쫓아와 밍을 찍는 다큐팀 카메라의 화면이다. 카메라는 밍이 신에 빙의되는 장면을 찍을 수도 있다며 더더욱 촬영에 집착하게 된다. 영화가 이러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영화 후반부 카메라 감독들에 대한 응징 서사를 위한 복선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해당 장면이 불쾌함을 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밍은 이후 악령처럼 보이는 것들에 빙의돼 매우 기괴한 행동을 연속한다. 선한 신을 대리하는 님은 밍의 악령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님은 밍에 빙의된 정체를 찾는 듯하고, 또 다른 퇴마사와 함께 퇴마 의식을 준비한다. 그러나 님은 너무나 허무하게 퇴마식 전날 죽어버린다. 이러한 전개 때문에 무력한 선이 대두되고, 허무한 선의 모습과는 달리 ‘악’은 매일 구체적으로 기괴한 일들을 벌인다.

영화 후반부 퇴마식에서 벌어지는 황당할 정도로 긴 악령의 악행은 무력한 선을 더 강조한다. 결국 악이 모든 것을 점령해버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악이 어디서 왔는지 보여주는 힌트를 찾아가다보면, 이 영화는 선과 악 이야기라기보다 피해와 가해 이야기로 전환된다.

▲영화 '랑종'의 퇴마식 장면.
▲영화 '랑종'의 퇴마식 장면.

영화 초반부 밍의 아버지가 죽을 때, 님은 “‘아싼티야’ 남자(밍의 부계 가문)들은 모두 이상하게 죽는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밍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에 일부러 불을 내서 보험금을 타내려고 하다가 자살을 했다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로 님은 밍이 실종됐을 당시 폐공장에 가서 밍을 찾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퇴마식이 거행되는 곳도 폐공장이다. 또한 영화 마지막 ‘아싼티야’라고 쓰인 저주 인형 모습까지 비추는 걸 보면 밍은 결국 공장에서 불 속에서 죽어간 이들의 악령과 그 유가족들이 내린 저주에 의해 악령이 씌인 것이라 해석된다.

결국 ‘악’의 근원은 아싼티야 가족에게 당한 억울한 이들의 혼이 모인 것이다. 그 공장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유가족, 그곳에서 죽어간 짐승들의 모든 것들이 모인 커다란 악령이 밍에 빙의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악령은 자신의 엄마-노이-를 불태워 죽인다. 피해자들이 죽은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밍의 엄마인 노이는 선한 바얀신을 거부하고, 바얀신을 속여 자신의 동생 님에게 바얀신 모시는 것을 대리하게 했다. 또한 자신의 시어머니가 하던 일을 물려받아 태국에서 금지된 개고기를 파는 사람이다. 밍이 악령에 빙의됐을 때 행하는 행동 가운데 노이의 애완견을 먹는 악명 높은 장면 역시 노이가 개고기를 파는 것에 대한 복수로 볼 수 있다.

퇴마식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좀비극처럼 보이는 몸을 뜯어먹는 행위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이의 오빠, 즉 밍의 삼촌에 대해서도, 밍의 삼촌이 젊은 여성을 임신시켜 아기를 낳게한 것에 대한 복수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노이와, 노이와 결혼한 남자 가문이 행한 악행들을 똑같이 행하는 피해자 악령의 복수인 것이다.

밍에 빙의된 피해자 악령의 복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관음적으로 쫓아다닌 카메라맨에게도 똑같은 응징을 한다. 피가 난무하는 실패한 퇴마식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카메라맨은 결국 악령에게 몸을 뜯어먹히고 만다. 그때 밍은 묻는다. “내가 찍어줄까?” 결국 카메라맨 역시 자신이 밍을 관음한 것처럼 가장 끔찍하게 관음을 당한다. 페이크 다큐 속 “찍지 마세요”를 자주 말하던 밍은 가장 잔인하게 카메라맨을 관음한다. 무당에 대한 호기심, 이를 지나칠 정도로 관음하고 콘텐츠로 팔려는 카메라맨들은 결국 잔인하게 ‘보여짐’ 당하고 만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영화 '랑종'의 한 장면.

영화는 관념적 선과 악 대립이 아닌, 피해와 가해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선과 악을 비튼다. 피해자와 가해자 관점으로 보면, 이 영화는 비틀어진 권선징악이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당한 것과 똑같이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관념적 ‘선’을 믿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 님의 인터뷰는 관념적 선은 없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 피해자 복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적 선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악에 가깝다고 짚는다. 종종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를 선이라는 개념과 등치하는데, 영화를 이를 비틀면서 이렇게 묻는다. 피해자의 악령이 행한 악을 정말 악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렇게 랑종은 선과 악 구도를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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