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건설업체가 있다. 1989년 광주에서 직원 5명으로 시작한 이곳은 2000년대 광주 전남권에서 사업을 확장하다 2005년 서울 역삼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기업 건설사들이 해외로 나간 국내 건설시장 공백은 기회였다. 전국 도처의 신도시 및 택지개발에 뛰어들었고, 역세권 도시개발지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건설업 뿐이 아니었다. 이 업체는 2011년 광주방송(kbc)을 인수했고 리조트와 골프장 등 레저사업과 농산물 유통업에도 뛰어들었다. 2017년 대기업 집단 지정 직후 상장(IPO)를 준비하는 등 행보가 더 넓어졌다. 결국 이 곳은 2019년 서울신문 지분 19.4%를 인수하고 2021년 올해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으로 지정됐다.

광주방송 매각이 ‘규제’ 때문인가

이 업체는 바로 호반건설이다. 호반건설이 약 17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한 배후에는 토목과 건설로 경기를 부양시켜 온 정부와 금융자본이 있었다. 광주방송을 인수했던 2011년은 호반건설의 급성장기였다. 사업 지역 내 지자체와 공기업에 영향력을 확보하고 호반건설과 김상열 회장 관련 이미지를 제고하며 신도시·택지 입찰의 지원 역할까지 떠 맡긴 곳이 광주방송이었다. 올해 4월, 자산총액 10조를 넘은 호반건설이 지상파 방송사 소유지분 제한을 적용받자 신속히 광주방송 지분을 매각한 이유는 ‘규제’ 때문이 아니었다. 지역방송의 유효기간은 끝났고 ‘대기업’에 걸맞는 또 다른 매체가 필요했다. 호반건설은 전자신문과 인터넷 경제신문인 EBN을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이 앞으로도 케이블 유료채널 세 곳을 더 인수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호반건설이 공격적인 미디어 업체 인수에 나선 것을 결코 ‘투자’로 볼 수 없다. 최근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나섰다가 역으로 2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을 전량 매입하겠다고 한다. 매각에서 매입으로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는 호반건설에게 서울신문의 역사와 언론사로서의 가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서울신문의 ‘중앙일간지’라는 영향력과 사옥의 자산가치만 중요할 뿐이다. 전자신문은 또 어떠한가. 신문의 편집권은 2대 주주에게 주되, 사옥을 역삼동 본사로 이전하고 ‘전자신문TV’와 같은 미디어사업부문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아파트 전망은 있으나 언론의 미래 전망은 없다

종합일간지, 경제 전문지, 인터넷 신문, 유료방송채널 등 외형만으로는 호반건설이 미디어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설업이 주력인 대기업에게, 기업 상장과 사회적 지위에 더 몰두하는 사주에게,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과 저널리즘 원칙이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광주방송 지분 보유와 서울신문 구성원과의 지분 협상은 이들에게 학습효과만을 주었다. 임금 인상, 인센티브 제공, 부채 상환, 사옥 이전 등의 ‘당근’을 줌으로써 언론으로서의 가치보다 자본으로서의 가치가 더 우월하다는 과시욕의 발현이 그것이다.

호반건설이 최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을 290억원에 매입할 대가로 임직원 특별 위로금 지급, 2022년 임금 10% 인상, 복지제도 개선, 편집권 독립 보장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자신문과 EBN을 인수할 때도 그랬듯, 경제적 보상만 있을 뿐 각 언론사가 거쳐온 역사와 지향할 가치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호반 베르디움, 호반 써밋 등 자사 브랜드에 내세우던 화려한 장밋빛 전망조차 미디어 부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저널리즘과 독자는 존재하지 않는 호반건설의 미래

결국 호반건설에게 지역방송, 중앙일간지, 유료방송, 인터넷 신문 등 어떤 미디어든 경제적 수익이 아닌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한 기회비용일 뿐이다. 언론 종사자·기자로서의 자존감과 가치는 불안한 생계와 미래에 대한 금전적 보상 앞에 언제라도 위태롭다. 그래서 호반건설의 ‘매력적 제안’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의 거래를 떠올리게 한다. 차라리 거대한 왕국을 주었던 메피스토텔레스가 더 나을지 모른다. 호반건설 뿐 아니라 한국 토건 재벌들이 보여줄 미래에 저널리즘과 독자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 호반건설, SM삼라 등 미디어 시장에 지분을 가진 사업자가 자산총액 10조원을 초과하니 규제를 완화하자는 정부부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순진한 발상이다. 노동자와 콘텐츠에 대한 투자 한 푼 없이 10조원의 자산을 이룩한 토건, 건설, IT 자본에게 미디어의 이용가치란 무엇인지 모르는 전형적인 관료의 상상일 뿐이다.

▲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지분의 호반건설 매각은 한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다. 10조원이든 그 이상이든 돈만 있다면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어떤 고민과 전망도 없는 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언론계의 암묵적 동의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가치란 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본의 유혹에 맞선 거부라는 행동, 바로 그 행동의 가치에서 저널리즘이 시작된다.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노동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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