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작’ 주장 이동훈에 한겨레 “근거 분명히 밝혀라”

100억원대 사기를 친 ‘가짜 수산업자’ 김모(43·구속)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이동훈 전 윤석열 검찰총장 대변인이자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지난 13일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8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취재진에게 “여권·정권의 사람이라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Y를 치고 우리를 도우면 없던 일로 만들어주겠다. 경찰과도 조율이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동훈 전 대변인은 이어 “저는 안 하겠다, 못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제 얼굴과 이름이 언론에 도배가 됐다. 윤 전 총장이 정치 참여를 선언한 그날”이라며 이번 사건은 여권의 공작이라는 ‘정치공작’설을 주장했다. 이 전 대변인의 발언은 정치 쟁점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14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14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14일 윤 전 총장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동훈 전 대변인의 ‘정치공작’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오대영 앵커가 “이동훈 전 대변인이 자신이 연루된 금품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서 여권의 공작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얘기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들으신 얘기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윤 전 총장에게 물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이동훈 대변인이 저와 열흘정도 일을 했다. 진상은 이제 더 규명돼야겠지만 이동훈 대변인이 없는 말 지어내서 할 사람도 아니라고 저는 보고 있고, 저에 대한 이런 공격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런 수사를 악용해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놀라웠다”고 답변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전 대변인이 ‘Y치고 여권 도우라’는 발언이 없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 것.

한겨레,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등은 이 전 대변인의 정치공작 주장의 근거가 뭔지 정확히 밝혀야 하고 실체가 없는 한 정치공작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15일자 한겨레 사설.
▲15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15일자 사설에서 “이 전 위원은 지난달 조선일보 논설위원에서 곧바로 윤 전 총장 대변인으로 변신했으나, 불과 열흘 만에 급작스레 대변인직을 사퇴한 인물이다. 그의 사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는데, 이후 금품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궁금증이 풀린 바 있다. 그런데 사퇴한 지 20여일이 지난 지금 시점에 갑자기 ‘정치 공작’을 주장하고 나섰으니, 그 주장의 진위와 배경을 두고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고 운을 뗐다.

한겨레는 이어 “이 전 위원의 ‘공작’ 주장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사실이라면 헌법 가치를 무너뜨리는 공작 정치’라고 비난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정권을 도우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를 했다니… 충격적인 사안’이라며 당 차원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했다. 만약 여권의 회유가 있었다면 그런 정치공작은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경찰 수사를 모면하려고 이씨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에 걸맞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씨 주장을 근거로 정치 공세를 펴는 윤 전 총장 쪽과 국민의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또 “이 전 위원은 불과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중견 언론인이었다. 그런 그가 고작 몇백만원어치 금품에 언론인 윤리를 내팽개친 혐의로 입건된 것도 모자라, 큰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주장을 불쑥 던지면서 아무런 사실 근거도 대지 않는 건 치졸하다”고 짚은 뒤 “이 전 위원은 이제라도 당장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누가 그에게 경찰 수사를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제안했는지 그 사람의 이름만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 뒤에 필요하다면 수사를 통해 낱낱이 진상을 규명하면 된다”고 했다.

▲15일자 세계일보 사설.
▲15일자 세계일보 사설.

세계일보도 사설에서 “의혹의 당사자인 이 전 위원은 여권 인사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자신의 주장에 걸맞은 근거도 제시하는 게 옳다. 그게 중견 언론인 출신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금품수수 의혹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면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책임이 따를 것이다. 경찰의 개입 의혹도 제기된 만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진상을 밝히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이다.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으로 대선이 오염되기 전에 서둘러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프채 빌렸다” 주장 이동훈, 한국일보 “수산업자 골프 못쳐” 보도

이 전 대변인은 지난 13일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입장문을 따로 내기도 했다. 그는 “언론은 제가 김태우로부터 수 백만원 상당의 골프채 세트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사실과 다르다. 지난해 8월15일 골프 때 김태우 소유의 캘러웨이 중고 골프채를 빌려 사용했다. 이후 저희집 창고에 아이언 세트만 보관되었습니다. 풀세트를 선물로 받은 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15일자 8면에 “1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김씨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평소 골프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 경찰은 골프를 하지 않는 김씨가 현직 검사와 사립대 전 이사장 등이 참여한 지난해 ‘광복절 골프 회동’에서 이 전 위원에게 골프채를 빌려줬을 개연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15일자 한국일보 8면.
▲15일자 한국일보 8면.

한국일보는 “김씨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직원은 ‘김씨는 운동의 ‘ㅇ’자도 싫어할 정도로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골프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10월31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김씨와 현직 검사, 사립대 전 이사장 등이 함께한 ‘핼러윈 파티’에도 동석했던 김씨의 최측근으로 꼽힌다”고 했다.

골프채의 가격도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일보는 “경찰은 이 전 위원이 김씨에게 새 골프채 세트를 받았다고 보고, 가격을 300만원 정도로 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경찰은 아이언 세트만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 전 위원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 골퍼들은 아이언 이외에 드라이버, 우드, 퍼터 등을 풀세트로 구성해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언 세트만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명숙 수사팀’ 감찰 결과 발표, 조선일보 1면에 반박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한명숙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한 법무부 대검 합동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에서 검찰은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도 참고인들(한신건영 대표 고 한만호씨와 함께 수감됐던 동료 재소자인 최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 등)이 검찰에 100회 이상 소환돼 증언할 내용을 미리 조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힌 뒤 “부적절한 ‘증언 연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증인의 기억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한 전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동료 재소자인 최씨는 지난해 4월 법무부에 “당시 검찰 수사팀으로부터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게 맞다’는 취지로 증언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한만호 사건은 검찰의 공작으로 날조됐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대검 감찰부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다. 대검은 지난 3월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수사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같은 달 박 장관의 재심 지시로 이뤄진 대검 부장 고검장 회의에서도 모해위증 의혹을 받는 최씨와 김씨 등에 대한 불기소 처분도 결정됐다.

▲15일자 조선일보 1면.
▲15일자 조선일보 1면.
▲15일자 조선일보 12면.
▲15일자 조선일보 12면.

조선일보는 박 장관의 법무부 감찰 결과 발표가 사법시스템을 흔들며 한명숙을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찰의 참고인들에 대한 100여회 소환 조사는 총 4명이 9개월간 조사받은 횟수를 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박범계, 사법시스템 흔들며 ‘한명숙 구하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조인들은 ‘2010년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대법원이 유죄 판단을 했을 리 없고, ‘위증 교사 의혹’도 전국 고검장들과 대검 간부들이 압도적 다수로 ‘무혐의’가 옳다고 했다’며 ‘이도 저도 안 되니 ‘감찰’이란 이름으로 ‘한명숙 사건’ 수사에 흠집을 내고 ‘한명숙 구하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한 전 총리에 대해 작동한 사법 체계를 사실상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날 박 장관은 ‘참고인들이 검찰에 총 100여회 소환돼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반복 소환과 강도 높은 참고인 조사는 부적절한 증언 연습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박 장관이 언급한 ‘100여회 소환’은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와 동료 재소자 3명 등 총 4명이 2010~2011년 9개월간 조사를 받은 횟수를 합한 것”이라며 박 장관의 말을 반박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한만호씨가 거의 매주 소환된 것은 맞는다. 전직 국무총리에게 9억원을 줬다고 하는데 그 정도 조사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15일자 한겨레 9면.
▲15일자 한겨레 9면.
▲15일자 한국일보 사설.
▲15일자 한국일보 사설.

반면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을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한명숙 증인 100회 소환한 검(檢), 지금은 달라졌나”라는 사설에서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 검찰 수사팀이 법정 출석이 예정된 증인을 100회가량 소환해 증언 연습을 시켰던 사실이 법무부 감찰을 통해 확인됐다. 사건 관계인을 반복 소환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했다면 모해위증을 교사한 명백한 범법행위다. 그러나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은 대검에서 최종 무혐의 결론이 났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다. 법무부와 검찰이 감찰 결과를 이 사건에 바로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구시대 수사관행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검찰조사에서 수사팀 행위를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더라도 감찰을 통해 검찰 수사관행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검찰개혁 차원에서 검사의 참고인 접촉이나 증인신문 절차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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