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구성원들이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서울신문 지분을 호반건설에 팔지 여부를 총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서울신문 구성원 사이에선 호반건설의 제안을 수용하는 대가가 무엇인지가 관건으로 떠오른 가운데, 호반건설의 지분 인수에 반대하는 내부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오는 19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호반건설의 우리사주조합 지분 인수 제안에 대한 협상 착수 동의의 건’을 총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투표는 19~23일 나흘간 진행된다. 우리사주조합은 “총투표에 부친 뒤 가결될 경우, 제안 조건의 적정성 등을 감안해 후속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일 발의된 우리사주조합 이사회(이사장 박록삼) 해임 건 투표도 함께 진행된다.

호반건설은 지난 7일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서울신문 주식 전량을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매입대금으로는 총 510억원을 제시했다. 우리사주조합이 지닌 238만 1370주에 300억원을 매겼다. 1주당 1만 2598원 꼴이다. 또 각 임직원에 특별위로금 5000만원, 총 21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지분 19.4%를 지닌 3대 주주이고, 우리사주조합은 28.63%를 지닌 2대 주주다. 호반건설이 우리사주조합 주식을 전량 매입하게 되면 호반건설은 48.03% 지분으로 서울신문 대주주로 올라선다. 대기업이 신문 주식의 5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는 신문법도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의결권 기준으로는 호반건설이 53.6% 지분을 손에 넣는다. 의결권이 없는 자기주식을 제외한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은 31.8%, 호반건설은 21.55%다. 

호반건설의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호반건설은 지난 2019년 9월에도 유사한 조건으로 지분 인수를 제의했다. 호반건설은 당시 사주조합이 택한 복수 회계법인의 평가를 거쳐 그 중 높은 가격으로 매매가를 정하고 임직원에 5000만원씩 특별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 사주조합은 당시 이사회 결정으로 제의를 즉각 거부했다. 이듬해 우리사주조합은 1대 주주인 기획재정부가 서울신문 지분 공개매각 뜻을 밝힌 뒤 ‘호반건설 대주주’ 우려가 일자 공매 저지 안건을 조합원 85%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이후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건설에 제안해 호반이 소유한 서울신문 지분을 매입하기로 합의했으나 지난달 이를 위한 대출과 상환계획안이 조합원 투표로 부결됐다. 이 직후 호반건설이 거꾸로 역제안을 하고 나섰다. 기존 우리사주조합 집행부가 주도한 투표가 부결되고 불신임 여론이 커진 시점에 서울신문 구성원들을 향해 ‘호반건설 대주주 시나리오’를 재차 묻고 나선 셈이다.

▲2021년 3월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서울신문 소유구조 현황
▲2021년 3월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서울신문 소유구조 현황

호반건설이 주식 매매대금과 조합원 특별위로금을 따로 제시한 데에는 사주 조합원마다 주식 소유 현황이 다르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2001년 이전 입사한 시니어 조합원들은 그해 우리사주조합이 설립되면서 사들인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2001년 이전 입사자들은 평균 1만 주 정도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 이후부터 2018년까지 사주조합은 퇴사자 주식을 사들이지 않고 자사주로 넘겼다. 2018년 들어선 11기 사주조합 집행부부터 다시 퇴사자 주식 매입을 시작했다. 호반의 ‘특별위로금’은 조합원 입사 시기별로 주식 소유 현황이 다른 상황에서 모든 조합원에 이른바 ‘당근’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호반은 이외에도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고 내년 임금을 10% 인상한 뒤 점진적으로 중앙일간지 수준 급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복지제도도 호반그룹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인사 차별과 ‘인위적’ 구조조정을 일절 하지 않고, 매년 25억원을 디지털 인프라와 해외지사·특파원 확대, 취재환경 개선 등에 쓰겠다고 했다. 매년 20억 홍보비 집행과 서울신문사 차입금(1200억원) 조기 상환 노력 등도 확약한다고 했다.

현재 서울신문 내부 분위기를 쉽사리 단언할 수는 없다. 미디어오늘이 취재한 복수의 서울신문 구성원은 “조합원 개인별로 의견이 갈린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사내 편집국 안팎에선 호반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내용의 성명이 기수와 직능별로 연이어 나오고 있다. 향후 투표 결과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건설에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해도, 개별 조합원이 거부하면 이는 사유재산권의 영역이므로 조합 차원에서 강제하기는 어렵다. 

▲서울신문 사옥인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인 서울 프레스센터

지난 8일 2012년 입사한 편집국 47기 구성원은 공동성명을 내고 “호반이 이 시점에 이 같은 제안을 해 온 것은 비용 합의 문제로 상처를 입은 조합과 사원들을 다시 분열시키려는 의도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며 “지난해 2월10일 ‘서울신문 지분 매각을 위해 노력하고 독립 언론을 지지, 존중한다’는 약정 내용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호반건설은 과거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KBC광주방송을 동원해 지자체가 반대한 주상복합 건설을 밀어붙였다. 낙하산 인사로 내부를 장악함은 물론 이에 반발하면 인사 불이익을 줬다. KBC가 호반건설에 인수된 시점 이후 회장과 계열사 홍보 기사도 급증했다”며 “건설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자 모든 조합원이 대응해야 할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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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관리국 구성원 8명도 공동명의로 “달콤한 열매 몇 개에 나무를 내어줄 수는 없다. 그 많던 자회사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앞날도 불을 보듯 뻔하다”며 “지분 매각에 반대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제작국 윤전부와 기술부 소속 구성원도 각각 호반건설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내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진 구성원으로 꼽히는 시니어 조합원도 호반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3개월 뒤 정년을 앞둔 강성남 기자(전 언론노조 위원장)는 사내 게시판에 “(호반의) 제안대로라면 아마 제가 사내에서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을 볼 것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억 단위”라고 전한 뒤 “그러나 호반 제의를 거부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싶다. 회사의 미래는 우리 힘으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반대 성명에 참여한 한 서울신문 구성원은 “호반이 서울신문을 사들이면 우리는 수천만원의 현금을 얻지만, 잃는 것은 훨씬 많다. 대주주가 될 호반의 편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각종 특혜의혹을 눈감아야 할 것이고, 사실상 구조조정으로 고용 안정성도 잃는다. 현재 수천억원인 프레스센터도 잃는다”고 말했다. 

이밖에 편집국 38기와 45기 구성원이 공동성명을 냈고, 10명 안팎의 사주 조합원도 개인 명의로 호반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반의 인수에 반대하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두고 일선 조합원들의 다수 여론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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