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부광고는 국민의 구독 결과에 따라 집행할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부수조작’ 논란에 휩싸인 ABC협회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8일 ABC협회의 부수공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료부수 대신, 구독자 조사와 사회적 책임 지표를 바탕으로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 될 신문의 영향력을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껏 ABC 부수공사 결과는 정부광고법에 따라 2452억 원(2020년 기준)의 인쇄 매체 정부광고 집행에 정책적으로 활용되어왔다. ABC부수공사에 참여해야 정부광고를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부수공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정부 광고를 받을 수 있다. 문체부는 언론보조금 지원 기준에서 ABC 부수 기준을 제외하고 ABC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ABC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잔액 약 45억 원 환수까지 추진한다고 밝혔다.

관건은 ‘대안’이다. 문체부는 “‘부수’를 대체하는 핵심지표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구독자 조사’를 추진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 건수와 자율심의기구 참여 및 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관련 자료를 활용하도록 정부 광고 제도를 본격 개편할 것”이라 밝혔다. 구독자 조사는 전국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열독률(지난 1주간 열람한 신문), 구독률(정기구독) 등 대면조사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수행한다.

언론중재위에 직권조정 결정이 등장한 1996년부터 2019년까지 직권조정 결정 비율은 전체 청구 건수의 4.3% 수준이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실이 문체부를 통해 확인한 2020년 주요 일간지 직권조정 건수는 조선일보(조선닷컴 포함)가 9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앙일보·경향신문·한국경제가 각각 2건이었다. 자율심의의 경우 신문윤리위원회의 심의 결정 등이 활용될 수 있다. 

문체부는 “구독자 조사, 사회적 책임 등 핵심지표와 함께, 참고지표로서 포털제휴, 기본 현황, 인력 현황, 법령준수 여부 등의 객관적인 복수 지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체부 판단에 따라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장했던 미디어바우처에 의한 정부광고 집행 기준 마련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ABC협회가 광고주에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면서 “문체부는 ABC협회라는 정부광고 진입 규제를 없애고 대체적 지표를 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광고주들은 지금껏 광고 집행 기준으로 크게 △이용행태조사(구독률·열독률) △도달률(유료부수 등) △신뢰도 등을 참고해왔는데, ABC협회가 독점으로 내놓았던 도달률은 이제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지난 8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서울정부청사에서 ABC협회의 정책적 활용 중단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서울정부청사에서 ABC협회의 정책적 활용 중단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5월 9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 5월 9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문체부 안을 두고서는 여러 지적이 나온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열독률·구독률을 기준으로 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조중동 중심으로 광고를 집행할 또 다른 근거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년 언론수용자 조사’의 신문사 열독 점유율은 조선일보 26%, 동아일보 12.4%, 중앙일보 11.3%, 매일경제 4.5%, 한겨레 3.6% 순이었다. 김 의원은 문체부의 기존 여론집중도 조사를 개편·활용하면서 조사 대상의 △신뢰도 △영향력 등을 포함하자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역시 “신문재벌 언론사가 인지도와 영향력으로 신문시장을 과점하는데, 구독자 조사에도 이런 기울어진 지형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언론중재나 자율심의 대상 보도가 권력·자본 감시·비판 성격이라면, 보도 위축 효과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포털 제휴 지표는 포털의 영향력 강화는 물론 포털 입점 언론사와 미입점 언론사 간 차별·형평성 시비를 일으킬 것”이라 우려하며 “사회적 책임 부분에 편집위원회, 편집규약 설치 의무화 여부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부수 인증 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은 필요하지만 급하게 추진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신문산업의 공적인 평가·지원 제도를 새롭게 수립하기 위한 토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구독자 조사는 일종의 샘플링인데, 5만 명으로 올린다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할지 의문”이라면서 “각각의 대안 지표들 가운데 어떤 것이 주요 지표가 되고 보조 지표가 될지 논의해야 한다. 현업 종사자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조선일보는 “정부가 언론 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동아일보는 “새로운 기준 지표가 모호하고 부정확해 언론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주장하며 문체부를 비판했다. 이와 관련 김대현 문체부 미디어정책국장은 “ABC협회에 충분히 기회를 줬지만 (개선을) 거부했다. 미디어바우처·여론집중도조사 등 여러 대안이 있지만 구독자 조사가 가장 객관적이라고 판단했다. 5000명 표본의 기존 언론수용자조사보다 표본이 10배 늘어난다. 당연히 더 정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현 국장은 이어 “여론조사에 우리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원칙을 가지고 할 뿐이다. 특정 신문사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정책을 마련하진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지역신문 등 구독자 조사만으로 지표가 부족한 경우엔 사회적 책임·검색 제휴 등 지표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적 책임 지표에서 언론중재위 시정권고까지 포함 시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며 “향후 정부광고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좋은 의견을 주면 얼마든지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ABC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는 내용의 정부광고법 시행령을 오는 10월까지 개정하고 정부광고제도의 개편을 위한 정부광고법, 지역신문발전특별법 개정을 올해 12월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자체 조례에서도 ABC협회 가입 여부나 부수를 명시한 사례가 있어 정책적 활용 중단을 안내한다는 방침이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도달률 지표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ABC협회와 신문사들은 신뢰 회복을 위해 투명성 강화를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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