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윤석열 X파일과 윤석열 부인의 과거에 대한 많은 주류언론과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반응에는 분명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근거가 부족한 의혹들을 섣불리 공개하거나 문제 삼기는 어렵다’, ‘충분한 검증 없이 아니면 말고로 보도하고 의혹을 확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생활을 캐고 보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별적 편견에 근거한 도덕적 비난은 옳지 않고 당사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물론 공적인 인물과 가족이 공적 권한과 권력을 사적 이익과 비리에 이용한 문제를 존중받아야할 사생활과 섞어버리는 문제가 있지만, 누구도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고 프라이버시는 존중돼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에서 봐야할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심각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인권은 있고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이런 태도와 기준이 왜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에게는 적용돼지 않았었냐는 것에 있다. 2019년에 절정에 달했고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지속되는 사건들 속에서 조국 교수와 그 가족들이 당한 인권유린, 사생활 침해, 혐오, 낙인, 편견, 조롱, 따돌림, 스토킹, 조리돌림, 집단적 괴롭힘은 실로 역사에 남을 수준과 규모였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 ‘조국몰이’는 특수통 검사 70명과 수사관까지 총인원 100여명이 투입돼 100여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조국, 부인, 동생, 딸, 아들, 모친, 친척들로까지 확대돼 나갔다. 심지어 사망한 부친과 동생의 이혼한 전처까지 불려나왔다. 조국 가족은 2년 넘게 수십번의 소환조사와 재판 출석을 하고 있고, 정경심 씨는 지금도 감옥에 갇혀있다.

2019년 그 절정기에 무려 100만건이 넘는, 하루에도 수만 건의 관련기사들이 쏟아졌다. 온라인에는 온갖 허위사실, 가짜뉴스, 인격살해적 조롱과 욕설이 차고 넘쳤다. 검찰은 조국 부부의 PC를 압수해서 거기 담긴 모든 정보를 털었고, 부인과 딸의 일기장도 압수해 갔고, 부부와 가족 간의 사적인 문자메시지와 대화 녹음까지도 모두 들춰보고 일부는 공개했다.

언론은 이들 가족의 옷차림과 안경 브랜드, 식사 메뉴, 생활패턴, 부친의 묘비문구, 동생의 이혼 사유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스토킹하듯이 취재하고 보도했다. 딸의 주거지에 새벽에 찾아왔고, 지인과 친구들을 다 뒤지며 뒤를 캐고 다녔다. 딸이 면접만 봐도 ‘단독’ 기사가 쏟아졌다. 국립의료원에 불합격하자 2시간만에 48개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할 정도였다.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개혁 언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 연합뉴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 연합뉴스

우파 정치인과 논객들만이 아니라 진중권, 김경율, 서민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조국 교수와 그 가족에게 혐오와 편견, 적의와 살기까지 느껴지는 낙인을 찍었다. “위선”, “사기”, “구역질” 등의 날선 언어들이 사용됐고, 위키트리는 조국 교수를 조두순에 비유했다. 서민은 조국 교수를 “기생충”, “말라리아와 동급”이라고 했고, 그의 딸을 ‘연쇄살인마’에 비유했다. 최근 ‘조선일보 삽화 사건’은 우연이나 실수보다 이 맥락과 흐름이 낳은 구조적 필연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 인권에 대한 고려나 사생활 존중이란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조국 교수의 부인(정경심)과 딸(조민)이 주된 타겟이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과 친구들도 대부분 ‘손절’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조민 씨는 최근에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학창시절의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고, 증언도 거부했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정경심 씨가 전화해서 조언을 구했던 동양대 관계자는 그 통화를 매번 몰래 녹음해 그대로 검찰에 넘겼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욕하고,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곧 지옥이다. 그런 정신적 고통은 신체화되기 마련이다. 조국 교수의 부인은 뇌종양·뇌경색에 대한 진단을 받았고, 동생은 치아가 8개나 빠졌고, 모친은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상상하기도 힘든 그 고통은 「조국의 시간」에도 나와 있다.

“나와 내 가족은 괴물로 낙인찍힌 후 발가벗겨진 채 조리돌림을 받고 멍석말이를 당했다… 매일매일 또 무슨 기사가 실리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걱정해야 했다. 기사 하나하나가 몸에 박히는 표창같았다.” “수십 개의 칼날이 몸속으로 계속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족의 살과 뼈가 베이고 끊기고 피가 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하는 끔찍한 절통(切痛)이었다.” “광장에서 목에 칼을 차고 무릎이 꿇린 채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검찰에게 나와 내 가족이 사냥감이었다면, 기자들에게는 동물원의 원숭이였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잘못을 했던 간에 이러한 인권유린과 인격살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다수는 여기에 침묵했고, 이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감정이입하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해서 인권을 말하던 많은 진보좌파 진영까지 이것을 방관하거나 침묵했고, 심지어 일부는 공격에 가담했다. 왜 그랬을까?

‘기대를 져버린 조국 교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다. 진보적인 의제들을 지지하던 조국 교수가 실제 삶에서는 출신과 특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라 했다. 그러나 조국 교수는 원래부터 불평등한 구조 속에 혜택을 받으면서도 평등을 지향하는 ‘강남좌파’의 대명사였다. 본인도 이미 2010년에 쓴 글에서 ‘노후를 위해 펀드에 투자하고 자식이 명문대 가기를 기대하는’ 모순을 인정하며 자신이 “겉은 빨갛지만 속은 하얀 사과”라고 고백했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국 가족이 계급불평등과 공정의 문제를 드러냈기에 분명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가능한 설명이고 분명히 존재했던 요소이다. 그러나 ‘계급불평등과 공정’의 문제가 왜 나경원 자녀들의 특혜나, 동아일보 사장 딸의 입시채용 특혜나, 이준석의 부모찬스 등에서는 별로 의제가 되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계급불평등과 공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포착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왜 몇몇 개인들에 대한 반인권적 공격들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결국 문제의 핵심은 마녀사냥과 그것이 낳은 효과였다. 사실 ‘조국은 말과 삶이 다른 이중적 인물이고, 자녀 교육에서 그것이 드러난다’는 지적은 이명박근혜 시절의 국정원의 비밀문건에서 이미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국정원은 “이중성 공박에 주력”해서 “비판 여론 조성”의 “심리전 전개”를 주문했다.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통한 검찰개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검찰, 언론, 우파들이 총결집한 대대적 공격이 시작된 이유를 여기서부터 찾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엄청난 마녀사냥이 벌어졌고 거대한 혐오, 낙인, 편견이 부추겨졌다. 모든 마녀사냥이 그렇듯이 조국 교수의 가족은 당연히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희생양이 아니었고, 그러한 인간적 결함과 약점들은 마녀사냥의 불쏘시개가 됐다. 마녀사냥의 일반적 메커니즘은 분명하고 강력하게 작동했다.

압도적인 양의 기사와 보도들이 쏟아지자 여론은 거기에 동조하게 됐다.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자 사람들은 더욱 더 주류적 의견에 줄을 섰다. 혐오의 감정은 쉽게 전염됐고,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고립의 압박을 느껴서 침묵하거나 논쟁을 회피하게 됐다. 극단적 주장들이 더 힘을 얻게 됐고 그것에 어긋나는 입장은 걸러졌다. 편견이 더욱 강화되면서, 지나친 공격도 합리화되고 공격받는 사람의 고통에 사람들은 둔감해졌다.

물론 마녀사냥의 핵심에는 이것을 이용해 검찰개혁에 제동을 건 정치검사들, 여기에 편승해서 클릭장사로 돈을 번 언론사와 유튜버들, 이것을 우파 재결집과 개인적 출세와 경쟁자 제거의 기회로 여긴 정치인들이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압박에 적당히 굴복하고 타협하자는 세력이 힘을 얻었고, 진보좌파에서도 방관, 동조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의 경쟁상대이고 적이니 방어해줄 이유가 없다’는 잘못된 태도도 나타났다.

▲ 책 「조국의 시간」
▲ 책 「조국의 시간」

조국 가족이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고 표창장 위조를 했다는 게 침묵, 방관, 동조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명분이었다. 잘못한 게 있으니 당해도 싸다는 것이었다. 전과자도 차별과 혐오로부터는 방어받아야 하고, 나와 정치적 입장과 진영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보호받을 인권이 있다는 원칙은 대개 잊혀졌다. 더 큰 문제는 그 명분 자체의 근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조국 가족에 대한 마녀사냥의 핵심에는 뒤늦게 불거진 표창장보다는 사모펀드가 있었다. 이것은 정경심 씨가 실소유주인 ‘조국 가족 펀드’이며, ‘신종 정경유착’이자 ‘권력형 비리’라는 것이 초기에 검찰과 언론의 주장이었다. 당시의 주장을 보면 조국 부부는 마치 ‘브레이킹 베드’의 주인공처럼 평범한 교수와 주부로 보이지만, 뒤에서 엄청난 돈을 굴리며 작전을 설계하고 지휘하는 타짜였다.

그러나 이런 혐의는 지난 2년간 조범동의 1심, 2심, 대법원 판결 모두에서 전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됐다. 실소유주도, 정경유착도, 공모도, 권력형 비리도 없었다. 정경심 씨는 라임과 옵티머스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사기 당하고 손해만 본 다른 투자자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조범동도 몸통이 아니었다. 이 펀드의 몸통은 우회상장을 노리고 정경심 씨보다 몇 배가 더 넘은 투자를 하고 이익도 다 챙겨간 ‘익성’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익성’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대부분 언론은 이런 사실을 아직도 모른 척하고 있다.

물론 정경심 1심에서 유죄가 나온 표창장 위조의 문제가 있다. 이처럼 엄청난 비난과 처벌을 받을 문제인지 의문일 수 있지만 사실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반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경심 변호인단이 검찰과 똑같은 포렌식 설비를 직접 구입해 조사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검찰이 범행일시로 특정한 2013년 6월16일 문제의 PC도 프린터도 정경심 씨 방배동 자택에 있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1심 과정에서 검찰이 위법수집증거를 이용했고, 심지어 증거를 편집하거나 조작했고, 최성해와 거래하거나 증인들에게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해 원하는 판결을 받아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표창장 위조의 결정적 증거라는 PC가 발견되기도 전에 있었던 SBS의 예언 보도, 동양대의 사전 회의, 최성해와 국힘당의 접촉, 곽상도의 자료 요구 등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의혹을 낳고 있다.

그러면 이제 정경심 씨가 친구들과 차명으로 소소한 주식 투자를 한 것도 범죄이고, 자녀의 인턴기간 등을 (3일 해놓고 일주일했다고, 대충해놓고 열심히 했다는 식으로) 부풀렸고, 조국 교수가 자녀가 쪽지 시험볼 때 사실상 커닝을 도와 준 것이라는 문제 등이 남는다. 이 문제들에서 설사 검찰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쳐도, 이것이 지난 2년간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정당화한다고 본다면 이보다 더한 억지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드러나고 있는 이 사태의 실체에 대해, 이 사태 초기의 그 엄청난 광풍과 비교하면 관심도 보도도 미미하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이 가족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지길 기대하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 지난해 정경심 씨에 대한 1심판결 때는 검찰과 언론을 중심으로 ‘거봐라. 우리가 옳았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읽혔다. 이제 2심판결을 앞두고는 ‘혹시라도 결과가 뒤집히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읽힌다.

검찰, 언론, 그리고 마녀사냥이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정경심 씨는 ‘마녀’이고 그 가족은 ‘가족사기단’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함께한 그 인간사냥이 틀리지 않았고 그것에 침묵, 방관, 동조한 것이 부끄러운 행동이 아닌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누군가의 삶이 파괴되길 원하는 셈이다. 그러나 비난과 공격의 쓰나미에 휩쓸리는 이들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끝까지 철저하게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며 진실을 알아보려고 노력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 점에서 나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솔직히 나는 이 사건 초기부터 이건 뭔가 아니고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서 누군가가 광장의 십자가에 매달리고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을 맞고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대립하는 양쪽에서 나오는 방대한 자료와 정보들을 샅샅이 수집하고 추적하며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진실은 검찰과 언론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계속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거리를 뒀다. ‘위선적인 조국과 가족사기단을 편드는 상식과 양심도 없는 좀비같은 조빠, 조국기 부대’라는 낙인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보좌파 진영에서도 그런 사람과는 ‘손절’하는 분위기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언론-우파 카르텔에 대한 비판을 계속 하면서 의문을 표시하는 글을 써서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이 마녀사냥을 폭로하고 반대하지는 못했다. 2012~13년의 종북몰이 광풍 때의 비겁한 침묵과 방관을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내 결심은 빛이 바래고 말았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를 거쳐 온 한국사회는 주기적이고 구조적인 마녀사냥 체제이다. 전사회적인 혐오와 낙인의 표적이 되는 집단이나 대상은 매번 달랐고, 꼭 진보나 좌파 인사는 아니었다. 누구라도 크고 작은 마녀사냥의 표적이 돼 왔다. 대개 기득권 우파와 억압적 국가기구들이 그것을 주도했고, 언론이 앞장섰고, 중도세력과 진보진영까지 그것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패턴이었다. 혐오장사가 돈이 되면서 그 현상은 더욱 강화됐다.

2019년의 특징은 주류언론만이 아니라 뉴미디어까지 동참해서 희생자에게 더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는 것에 있다. 더욱 중요한 특징은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흐름이 거리의 행동과 운동으로 분출됐다는 것에 있다. 여기에 ‘검찰개혁 촛불’의 의의가 있다. 수백만 명이 동참한 그 촛불은 명백히 2016년 촛불의 연장이었다. 물론 이탈과 분열이 있었고, 모든 자발적 대중운동이 그렇듯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의식과 요구에는 모순과 혼란이 보였다.

그러나 2016년 촛불과 달리 주류언론, 정치권, 시민사회진영, 진보좌파 단체들, 지식인들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가운데도 주로 자발성에 의존해 그러한 운동이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민주당에 기대를 걸었던 이 운동이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검언카르텔의 마녀사냥으로 또다시 누군가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막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깎아내릴 수 없는 의미와 성과이다.

마녀사냥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 희생자와 선을 긋고 거리를 두도록 요구한다. ‘나는 그와 정치적 입장이나 지향이 다르지만’, ‘나도 그가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이런 어법은 결국 마녀사냥꾼들이 파고들 수 있는 틈이 되고, 그것이 바로 마녀사냥의 효과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에서 조국 교수와 내가 가진 정치적 차이나 이견 등을 별로 다루고 싶지 않다. 조국 교수가 지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그런 문제들을 부담없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조건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견만은 밝히고 싶다. 강남순 교수와 마찬가지로 “나를 밟고 전진하시길 바란다”는 조국 교수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궁지에 몰린 마녀사냥의 희생자들이 많이 해온 말이지만, 누군가를 밟고, 불쏘시개 삼아서 이루는 역사의 전진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그가 누구든 도구나 수단이 아니어야 한다. 더구나 조국 교수의 가족들은 도대체 무슨 죄로 이 어마무시한 소용돌이로 말려들어야 했단 말인가. 「조국의 시간」보다도 더 아프게 읽었던 것은 정경심 씨의 1심 최후진술이다.

“어느 한 순간,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물론 친정 식구와 시댁 식구까지 망라하는 온 가족이 수사대상 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와 가족 모두에 대한 컴퓨터 파일과 정보가 모두 검찰에게 압수되면서 예전 10여년 이상의 삶이 발가벗겨졌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가 배우자로 번지고 자식들에게 깊고도 날카로우며 광범위하게 겨눠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일순간 사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을 지탱한 것은 그 스스로가 살아온 삶에 대한 신뢰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희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현실에서 담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그동안 맺어온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저의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경심씨의 페이스북 프로필 이미지처럼, 갑자기 상상도 못하던 거대한 수렁에 휘말려 온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그 아픔이 느껴졌다. 정경심씨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제히 올라오던 언론 기사들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잠 못 이루다가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또 어떤 기사들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공격하는지 살펴보는 그 새벽의 슬픔과 공포로 가득한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그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한 비겁함에 대해 조국 교수와 그 가족, 특히 정경심 씨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조선일보 삽화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 가족을 ‘비인간적 취급을 당해도 마땅한 인간 이하의 존재들’로 악마화해 왔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사모펀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 가족에게 씌운 혐의가 얼마나 근거없는 것이었는지 보여 줬다.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세력에게는 큰 기대가 없다. 하지만 방관, 침묵, 동조했던 언론들, 세력들, 사람들 속에서는 이제 솔직하게 돌아보는 반성과 사과의 목소리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주기적이고 구조적인 혐오와 낙인의 마녀사냥 체제를 함께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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