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신문부수공사 ABC협회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 정부가 ABC협회의 부수공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부터 새로운 지표에 의해 정부광고가 집행된다. 이제 유료부수 대신, 열독률·구독률 등 구독자 조사와 언론중재위·자율심의 결과 등 사회적 책임 지표를 바탕으로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 될 신문의 영향력을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8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ABC협회 사무검사 조치 권고사항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 정부광고제도 개편계획안’을 발표했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해 11월9일 “일간신문 공사결과 부정행위를 조사해야한다”는 내용의  ABC협회 내부 관계자 진정서가 접수되자 지난 3월까지 ABC협회 사무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문사의 부수보고 → 협회의 표본지국 선정·통보 및 공사원 배치 → 표본지국 공사(실사) → 보정자료 인정 및 인증위원회 운영’으로 이어지는 부수공사 과정 전반에서의 불투명한 업무 처리를 확인하고 3월16일 ABC부수공사의 투명성·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 조치 17건을 ABC협회에 권고했다. 그러면서 사무검사 권고사항이 6월30일까지 이행되지 않을 경우 ABC 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했다. 

문체부는 8일 “ABC협회가 6월30일 제출한 최종 보고를 토대로 이행 여부를 점검한 결과, 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도개선 조치 권고사항 총 17건 중 불이행 10건, 이행 부진 5건, 이행 2건으로 제도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이행 결과나 의지가 미진해 종합적으로 조치 권고를 불이행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ABC협회의 최종 보고를 가리켜 “ABC부수공사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핵심적인 조치 권고사항인 지국 실사방식 개선, 이사회 등 거버넌스 개선 권고를 불이행했다”고 꼬집으며 “표면적인 이행 약속과는 달리, 협회 본연의 업무인 부수공사 제도를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적극적인 이행 노력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 ABC협회, ‘내부 폭로’부터 ‘정책적 활용 중단’까지. 디자인=안혜나 기자
▲ ABC협회, ‘내부 폭로’부터 ‘정책적 활용 중단’까지. 디자인=안혜나 기자

문체부가 구체적으로 밝힌 ABC협회의 제도개선 권고 불이행 주요 사례는 △표본지국 제3자 참관, 공사원 무작위 배치 권고에 대해 향후 2021년 하반기부터 시행 예정 답변(→현재 시점 불이행) △유가율·성실률 추가 파악을 위한 공동조사단 구성 및 추가조사 권고에 대해 조사단 구성 및 대상지국 방문 비협조(→불이행) △표본지국 실사 통보 시점 단축 등 공사방식의 근본적 개선 권고에 대해 2022년부터 제한적·단계적으로 시행 계획으로 매체사·지국 등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현재 시점 불이행) △신문협회, 광고주협회, 제3자가 동등한 비율로 이사회 참여토록 개선 권고에 대해, 협회 답변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행 의지 확인 불가로 불이행) 등이다. 

문체부는 특히 공동조사단 구성과 관련, “지국 유료독자를 확인하기 위한 전산자료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비협조한 것은, 그간 ABC협회 부수공사 과정상 불투명성과 부실이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더이상 ABC 부수공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아 그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고, 언론보조금 지원 기준에서 ABC 부수 기준 제외, ABC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ABC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잔액 약 45억 원 환수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금껏 ABC 부수공사 결과는 정부광고법에 근거, 약 2452억 원(2020년 기준)의 인쇄 매체 정부광고 집행에 정책적으로 활용되어왔다. 언론보조금 지원 기준 및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 조건 등으로도 사용되어왔다.

문체부는 “인쇄매체 정부 광고 집행 시 신문사 대상 조사였던 ‘부수’를 대체해 핵심지표로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구독자 조사’를 추진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 건수와 자율심의기구 참여 및 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관련 자료를 활용하도록 정부 광고 제도를 본격 개편할 것”이라 밝혔다. 구독자 조사는 전국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열독률(지난 1주간 열람한 신문), 구독률(정기구독) 등 대면조사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며, 정부광고 집행 대행을 맡고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수행한다. 

문체부는 “구독자 조사, 사회적 책임 등 핵심지표와 함께, 참고지표로서 포털제휴, 기본 현황, 인력 현황, 법령준수 여부 등의 객관적인 복수 지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체부의 판단에 따라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장했던 미디어바우처에 의한 정부광고 집행 기준 마련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미디어바우처는 새 기금 구성을 전제로 한 재논의가 필요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정부광고제도 개편방안 인포그래픽.
▲문화체육관광부 정부광고제도 개편방안 인포그래픽.

황희 문체부 장관은 “정부 광고 제도를 개편해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지표를 토대로 매체의 영향력을 파악하고, 연간 2452억 원에 달하는 인쇄 매체 정부 광고가 더욱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부광고법 개정은 신속히 이뤄질 전망이다. 문체부는 ABC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는 내용의 정부광고법 시행령을 오는 10월까지 개정하고 정부광고제도의 개편을 위한 정부광고법, 지역신문발전특별법 개정을 올해 12월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ABC부수공사·ABC협회 가입이 명시된 정부광고법 시행령 제5조(자료요청), 언론재단 정부광고 업무규정 제6조(자료확인) 및 지역신문법 제16조 등에서 ABC 규정이 삭제될 전망이다. 지자체 조례에서도 ABC가입 여부나 부수를 명시한 사례가 있어 정책적 활용 중단을 안내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불신’하는 ABC협회의 부수 공사결과는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287개사 회원사에 불과했던 ABC협회는 2009년 정부광고 훈령에 “ABC협회의 발행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에 정부광고 우선배정” 규정을 신설하면서 2010년 731개사, 2011년 1096개사로 회원사가 대폭 증가해 2021년 3월 현재 1591개사의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 

문체부는 ABC협회를 두고 “정책적으로 활용되는 만큼 신뢰성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부수공사 과정이 투명하게 운용되었어야 하나, 운영상 내부 갈등과 신뢰성 문제제기가 지속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부수를 정부광고 집행 시 참고자료로 활용함에 따라 부수 부풀리기 등 정확한 부수 산정이 어렵도록 하는 구조적 유인이 존재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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