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서 여성은 기어 나왔다…묻지마 폭행 충격 장면 [영상]”
“나체시신 몸무게는 34kg였다… 오피스텔에 친구 가둔 악마들”
“‘처녀막 볼 수 있나’ 수술대 위 마취 여환자 회음부 만진 그놈”
“숙소서 성폭행 당한 女… 에어비앤비 ‘비밀합의금 79억’ 줬다”
“잠든 남편에 끓는 설탕물 부었다…부부싸움 직후 잔혹 살인”
“18개월째 희귀병 투병 이봉주 수술…‘30분이라도 뛰고 싶다’”

지난 17일 오후 8시 중앙일보 네이버 언론사 뉴스페이지 모바일 화면에 걸린 기사들이다. 6개의 기사 중 1개의 기사를 제외하곤 여성, 나체시신, 처녀막, 성폭행, 살인 등이 키워드다. 언론사들은 네이버에서 보이는 자신들의 언론사 페이지 기사 6개를 직접 편집할 수 있다.

▲지난 17일 오후 8시 중앙일보 네이버 언론사 뉴스페이지 모바일 화면에 걸린 기사들.
▲지난 17일 오후 8시 중앙일보 네이버 언론사 뉴스페이지 모바일 화면에 걸린 기사들.

자극적 키워드를 가지고 기사를 양산하는 건 중앙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들은 국제 소식을 빙자한 자극적 이슈, 남녀갈등, 여성 관련 자극적 이슈, 극단적인 이혼 이슈, 성폭행 등의 주제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널린 시신, 들개들 먹이가 됐다… 코로나 지옥 인도 처참 [영상]” (뉴스1, 6월1일) “‘건장한 남자들이 왜 먼저냐’… 일각서 얀센 접종 ‘남녀차별’ 불만” (뉴시스, 6월1일) “8년간 ‘인육 케밥 판매’ 30대女 체포… 아이 납치·남성 유혹 후 살해” (머니투데이, 6월14일) “34세 초등 여교사 결혼의 조건… ‘연봉 1억·자가 있으신 분’” (중앙일보, 6월15일) “터키 여행 한국인 남성, 함께 간 여성 성고문… 징역 46년 구형” (뉴스1, 6월16일) “2030 커플 데이트비, 더치페이 35%에 그쳐… ‘남성이 더 내야’ 10.6%” (세계일보, 6월21일) “‘여자 시체가 떠다녀요’ 경찰·구급차 총출동했더니… 리얼돌” (중앙일보, 6월22일). 관련 기사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피해자 사진이 아닌 일반 여성 사진을 가져다 기사에 사진을 게재해 논란이 된 뉴스1 기사. 현재는 피해자의 항의를 받고 사진이 교체됐다. 댓글에는 기사와 무관한 사진을 썼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사진=뉴스1 페이지화면 갈무리.
▲피해자 사진이 아닌 일반 여성 사진을 가져다 기사에 사진을 게재해 논란이 된 뉴스1 기사. 현재는 피해자의 항의를 받고 사진이 교체됐다. 댓글에는 기사와 무관한 사진을 썼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사진=뉴스1 페이지화면 갈무리.

자극적 보도만 문제가 아니다. 트래픽 대응을 위해 하루에 많게는 수십 건의 기사를 쓰다 보니 사고로 이어진다. 지난 16일 뉴스1이 쓴 터키 관련 기사는 기사 본문에 실제 여성 피해자가 아닌 사건과 무관한 일반 여성의 사진을 기사에 게재했다. 피해자의 사진을 기사에 싣는 행위도 해선 안 되지만 이 사건과 관련 없는 여성은 자신의 사진이 기사에 사용된 걸 알고 항의했다. 이후 사진은 교체됐다.

언론사, 왜 자극적 보도에 목매나

언론사는 왜 자극적 보도에 목을 맬까. 자극적인 기사들이 최근 들어 갑자기 나온 건 아니다. 점점 늘고 있는 게 문제다. 포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국내 1위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는 지난해 4월부터 제휴 언론사에 지급하던 뉴스 전재료(플랫폼 기업이 언론사에 지급하는 뉴스 사용료)를 폐지하고 기사로 생기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에 배분하고 있다. 네이버 정책에 따라 현재 광고 수익은 언론사들이 생산하는 기사들의 트래픽에 따라 배분되고 있다. 기사 트래픽이 언론사 수익에 직접 연결되자 너도나도 트래픽이 많이 나오는 자극적인 뉴스 양산에 나선 것. 바뀐 포털 정책에 따라 자극적 뉴스를 제작하는 현상은 점점 더 체계화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네이버에서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기사를 보는 언론사다. 지난 2월 중앙일보노동조합(위원장 김도년)이 발행한 ‘중앙노보’에 따르면 페이지뷰(PV) 확보 경쟁이 심화하면서 ‘단독’ 명패를 단 기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중엔 제목만 봐도 저널리즘 가치가 떨어지는 이른바 ‘단독을 주장하는 단독’도 많다고 중앙일보 조합원들은 지적했다.

▲자극적 소재로 작성된 기사들은 포털 네이버와 다음에서 최소 80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많게는 5100개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자극적 소재로 작성된 기사들은 포털 네이버와 다음에서 최소 80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많게는 5100개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지난해 3월부터 편집국 각 부서에서 속보 등의 온라인뉴스를 생산하는 ‘724팀’을 만들었다. ‘724팀’은 10명 안팎의 팀원으로 구성됐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724팀을 해체하고 이슈 대응 매체 ‘조선NS’를 만든다고 밝혔다. 인원은 데스크 3명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돼 가동된다. 장상진 조선NS 대표는 중앙일보와 한국경제, 국민일보 등에서 포털 전송 기사 노출 빈도수가 월등히 많은 온라인뉴스를 써온 기자들을 영입했고, 추가로 다른 매체에서도 기자들을 영입할 예정이다. 조선일보는 최근 편집국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는데, 트래픽 관련 정보를 내부 전광판에 띄울 예정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올해 3월부터 편집국 디지털 전환 추진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편집국에서는 신문제작 부문을 떼 내고 온라인 콘텐츠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자칫 저널리즘과 동떨어진 ‘조회수 일변도’로 흐르지는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경향신문은 속보 대응팀을 신설하려다 현장 기자들의 반대 의사를 확인한 뒤 추진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최종적으로 ‘조회수 방어’ 전담부서를 두지 않기로 했다.

기자들 “트래픽 돈과 직접 연관되자 윗선 조회수 압박 심해져”

민영뉴스통신사 A언론사 전직 데스크는 “경영진 쪽에서 매출과 연결해 데스크에게 압박을 가하면 트래픽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트래픽이 나오도록 기자들을 쪼게 된다”고 말한 뒤 “인사고과 항목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사 건수, 트래픽 등이 평가 기준으로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온라인 뉴스콘텐츠 공급 자회사인 조선NS 채용 공고.
▲조선일보 온라인 뉴스콘텐츠 공급 자회사인 조선NS 채용 공고.

실제로 논란이 되는 기사들이 작성되는 언론사에 재직하는 기자들은 “윗선의 조회 수 압박이 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B언론사 기자는 “데스크가 무리한 주문을 계속한다. 최근 들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취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일단 10~20분 안에 쓰라고 한다. 너무 말초적인 아이템을 쓰라고 지시하는 경향이 크다”며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지 않은 기자들조차 ‘과하다’ ‘나 사표 쓸 것 같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경제매체 C언론사 기자는 “남녀갈등, 자극적 국제뉴스 등의 기사는 트래픽 때문에 쓰는 기사다. 이런 기사 우리도 안 쓰고 싶다. 온라인뉴스팀에 있을 때 실험을 해봤다. 트래픽이 안 나와서 외신 사이트에 들어가 성폭행, 불륜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기사를 썼는데 조회 수가 터지더라. 이런 기사가 쓸 수밖에 없는 건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 정보성 기사보다 말초적인 기사에 반응하고 욕하려고 클릭한다. 좋은 기사를 써봤자 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트래픽을 위해 기사를 쪼개기도 한다고 했다. C언론사 기자는 “남녀갈등 기사를 쓴다고 하자. 원래는 어떤 현상이 있다면 더 취재하고 반론도 듣고 써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트래픽을 위해 일단 현상을 쓴다. 반론을 또 따로 쓴다. 묶어서 종합으로 또 따로 쓴다. 트래픽이 세 배가 된다. 하나만 쓰는 언론사는 바보다”라고 말했다. B언론사 기자도 “일단 현상 기사를 하나 쓰고, 한 문단 더 붙여 ‘종합’으로 쓰라고 한다. 기사를 쪼개고 쪼개서 4개까지 쓰는 곳도 봤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언론사에 속한 기자들은 기자들 개개인에게 페이지뷰가 공지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종합일간지의 D언론사 기자는 “페이지뷰를 높여야 한다고 회사에서 강조한다. 자극적인 국제뉴스를 쓰는 팀이 따로 있긴 한데 왜 저런 기사를 양산하는지 모르겠다”며 “PV가 팀별로 공지된다. 전사적으로 공지되지는 않는다. 조회 수가 수입으로 연결되니까 이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털 정책 변하고, 언론사도 자정작용 해야”

종합일간지의 E언론사 디지털 전략 담당자는 “광고 수익 배분은 100% 트래픽에 따라 결정된다. 정량적인 평가나 항목이 없고 눈에 보이는 건 트래픽”이라고 말한 뒤 “온라인 대응팀을 자꾸 키워놓으니까 이렇게 된 거다. 조회 수 많이 나오면 칭찬해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이어 “판이 네이버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트래픽이라는 성과를 양산하는 팀이 언론사마다 자꾸 커지고 있다. 바꾸자고 한다고 유턴이 바로 되겠나.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에서 아예 손을 뗐으면 좋겠다. 정책을 바꿀 때마다 뉴스소비량이 휘청거린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로고. 사진=미디어오늘.
▲네이버와 카카오 로고. 사진=미디어오늘.

네이버가 광고 수익을 트래픽에 따라 준다고 정책을 바꿨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포털이 그나마 제휴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잘한 일이 어뷰징 개선인데, 이제 언론사가 주도하는 어뷰징 생태계가 조성됐다. 돈의 노예가 돼버렸다. 기자협회 등 언론 단체에서 나서 자정작용을 해야 한다. 포털에서 수익을 얻으려고 하니까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신미희 민언련 사무처장은 “언론이 클릭의 늪에 빠졌다. 트래픽이 이익과 연결이 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나 맥락에 관심 없이 자극적인 뉴스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뉴스1, 뉴시스, 머니투데이, 한경닷컴, 중앙일보, 서울신문 등이 심하다. 언론 스스로가 자정작용을 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수익은 나겠지만, 나중에 회복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말한 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업자들이 알고리즘으로 어뷰징 기사뿐만 아니라 자극적 기사들도 잘 노출되지 않게 막아야 한다. 현재의 악영향을 인지했다면 포털 사업자들도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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