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제작사 8곳의 스태프 계약서를 살펴본 결과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과 불공정 거래 문제가 발견됐다.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확인한지 2년이 지났지만 근로계약을 체결한 제작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22일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 계약서’ 관련 법률 의견서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드라마 ‘꽃피면 달 생각하고’(KBS 방영), ‘보좌관’(JTBC), ‘사이코지만 괜찮아’(tvN), ‘설강화’(JTBC), ‘암행어사’(KBS), ‘우아한 친구들’(JTBC), ‘일의 기쁨과 슬픔’(KBS), ‘좀비탐정’(KBS) 등의 스태프 계약서를 검토했다. 관련 제작사는 스튜디오드래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래몽래인, 스튜디오앤뉴, 스토리티비,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아이윌미디어 등 8곳이다. 

근로기준법 위반 실태는 심각했다. △계약 기간 불특정 △포괄임금 △임금 지급 시기 미특정 △근로시간·휴게시간 미지정 △휴일·휴가 미지정 △제작사 일방 계약 해지권 △일방적 손해배상제 △4대 보험료 감독급 스태프에 전가 등의 문제가 동일하게 발견됐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고 이재학 PD 대책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은 22일 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고 이재학 PD 대책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은 22일 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의견서를 쓴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제작 현장 스태프는 기간을 정해 일을 하는 ‘기간제 근로자’로, 근로계약서에 계약 기간을 특정해 기재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프로젝트 종료시’라 정한 것을 계약 종료 시점을 불특정하게 정해 법 취지에 반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며 “그러나 모든 스태프 계약서가 종료 시점을 ‘프로그램 촬영 종료일’ 혹은 ‘당사자 의무가 모두 이행된 때’라고 정했다”고 밝혔다. 

법적 의무인 소정 근로시간,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 휴게 시간 등을 명시하지도 않았다. 대부분 ‘현장 집합 시간부터 현장 촬영 종료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정했다. 윤 변호사는 제작사들이 노동시간 계산부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판례상 이동부터 촬영 준비·정비시간 모두 노동시간임에도 드라마 현장은 유독 이 시간을 제외한다는 것이다. 
 
윤 변호사는 “1주 최대 68시간을 정한 계약서가 있으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 원칙이고 추가 연장엔 근로자 동의가 필요한데다 그 경우도 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며 “오는 6월30일까진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1주 68시간 노동이 가능하나 드라마 제작 스태프는 50명을 넘기에 이마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주 최대 52시간 노동이 가능한 ‘주 52시간제’는 7월1일부터 5인 이상이 고용된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된다. 

윤 변호사는 또 “유급휴일이나 연차 유급휴가를 정한 계약서는 하나도 없었다”며 “계약서 모두 (제작사의) 해지 통보 즉시, 또는 7일 후에 계약이 종료한다고 정한다. 모두 위법”이라고 밝혔다. 특히 근로기준법은 계약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정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정하지만 6개 제작사 계약서에서 관련 조항이 발견됐다. 

일부 제작사는 산업재해 보험 가입료를 감독급 스태프에 전가했다. 계약서로 팀원급 스태프의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경우가 있었다. 윤 변호사는 “감독급 스태프도 노동자인 이상 제작사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감독급 스태프에게 전가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감독급 스태프도 노동자인 이유로 “과장, 부장 등이 업무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아닌 이유”와 같다고 설명했다. 각 팀 내에서 재량권을 가질 뿐 전체 제작 상황에서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감독, 팀원 구분없이 근무시간, 장소, 휴게시간, 제작 현장에서의 협업 체계는 동일하고, 제작사 요구와 지시에 따라 전체 스태프들이 움직인다”고 밝혔다. 

▲드라마 스태프 제작 현장 업무 관계 도식화. 출처=고용노동부 보도자료.
▲드라마 스태프 제작 현장 업무 관계 도식화. 출처=고용노동부 보도자료.

‘하도급 거래’로 봐도 계약서 불법 투성이

스태프를 노동자로 보지 않아도 계약서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정상적 도급 관계라면 도급인(제작사)은 일의 완성물만 받아야지 작업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8개 제작사 계약서엔 ‘감독 스태프는 팀원 변경 시 제작사에 통지해야 한다’거나 ‘팀원이 이탈하거나, 정상적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제작사에 통지하고 대체인력을 수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을(수급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조항도 있었다. ‘본 계약에 명시된 용역료 이외에 일체 금액 혹은 현물의 급여를 요구할 수 없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윤 변호사는 “원사업자가 작업 내용을 변경해 발생하는 비용 등을 수급사업자에 부담시키는 약정은 부당 특약”이라며 “귀책사유나 사정을 따지지 않고 비용을 스태프에게 전가하는 규정은 모두 위법”이라고 비판했다. ‘우아한 친구들’, ‘보좌관’, ‘설강화’ 등의 드라마 스태프 계약서엔 “갑(제작사)은 을의 고의나 과실로 발생한 사고에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고 갑을 면책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제작사들은 스태프를 노동자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겸업’은 통제했다.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 ‘보좌관’ 등의 계약서엔 ‘을은 갑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다른 영상물 제작을 위해 본건과 유사한 용역을 제공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한편 방송스태프지부가 드라마 스태프 노동자성 인정을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한 지 이날로 57 째다. 방송스태프지부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고 이재학 PD 대책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과 22일 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J ENM, KBS, JTBC 등 방송사들은 드라마 현장의 불법 계약을 철회하고 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이날 “영화계는 (2014년)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통해 표준근로계약서 등을 도입했고, 4대 보험 가입률은 단 3년 내 70%에 이르렀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제작사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전에 사용자 의무를 다해야 한다. 여전히 방송·영화산업 내엔 영세 제작사가 홀로 설 수 없기에, 방송산업도 대자본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약이 절실하다”며 “한류 콘텐츠를 이끄는 CJ ENM, 공영방송 KBS 등은 하청 제작사에 전가하지 말고, 자본 주체로서 그 소임을 다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