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한 스푼] 요지부동 편집국, 뉴욕타임스 부러워 할 자격 없다
[저널리즘 한 스푼] 요지부동 편집국, 뉴욕타임스 부러워 할 자격 없다

“역사의 증거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일입니다”

작년 7월, 뉴욕타임스의 연구·개발 조직인 R&D랩이 3차원 시각화와 웹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스토리텔링 기법을 소개했다. 이른바 ‘입체 저널리즘’이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9월1일 바하마 군도에 있는 아바코섬을 강타한 허리케인 도리안의 여파를 이 기법을 활용해 기록했다. 초강력 허리케인이 불어닥친 후, 아이티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샌드뱅크 지역은 돌만 굴러다니는 폐허가 됐다. 집들이 무너져 내렸고, 침수된 자동차들은 길가에 널브러졌다. 길바닥에 놓여있는 한 아이의 졸업사진은,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궜을 사람들의 일상을 짐작게 한다.

▲ 2019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공개한 ‘They Survived Hurricane Dorian’ 홈페이지 갈무리
▲ 2019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공개한 ‘They Survived Hurricane Dorian’ 홈페이지 갈무리

관련 사이트 :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They Survived Hurricane Dorian’ 홈페이지

2012년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인터랙티브 뉴스 ‘스노우폴’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66개의 모션그래픽과 사진, 지도, 비디오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가 워싱턴주 캐스케이드산맥을 덮친 눈사태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이런 저널리즘이 가능하구나’ 놀라면서도, ‘뉴욕타임스라서 가능한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 있지 않은가. 나와 비등한 상대가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경쟁심을 자극하지만, 나보다 훨씬 잘난 상대가 압도적인 결과물을 내놓으면 경외하게 되는, 그래서 싸울 마음도 들지 않고 포기하게 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입체 저널리즘’을 접하고 드는 마음도 꼭 그랬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스노우폴(snow-fall)’ 홈페이지

“뉴욕타임스처럼”이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건 그래서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한 해만 1억3243만달러(약 1457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R&D에 투자했다. 당장 입에 풀칠할 생계형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우리 언론에는 부럽기만 한 일이다. 멋진 시각화 기사를 맘먹고 만들어도,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에게 닿을 기사는 텍스트 기사 뿐이기도 하다. 포털은 이러한 3D나 모션그래픽 기술을 옮겨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독자들이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아가며 기사를 읽는 것도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뛰어난 퍼포먼스는 우리 한국 언론엔 오히려 독이다. “뉴욕타임스니까 가능한 일이야” 하며 체념하게 만드니 말이다.

스노우폴 같은 기사를 만들거나 입체 저널리즘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언론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럴 역량이 없다고 해서 독자들이 실망하고 떠나는 것도 아니다. 뉴욕타임스와 비교해 발견할 수 있는 큰 문제는 정작 다른 데 있다. 바로 ‘자세’다. 마땅한 전략 없이, 하던 걸 그대로 하려 하는 그 수동적 자세 말이다.

당장 기사 하나를 열어보자. 경제 동향을 분석하는 기사에 엑셀 도표 하나 없다. 자료가 있어도 기업이나 기관에서 던져준 보도자료를 복사 붙여넣기 한 수준이다. 해외 언론에선 가장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인용 링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기사에선 ‘~에 따르면’이라는 간단한 말로 갈음돼있어 원문을 확인하려면 독자가 따로 검색해봐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독자가 어떻게 기사를 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하나도 없다.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도 바꾸지 않고 관성적으로 기사를 쏟아만 내는 언론의 모습이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언론에 필요한 건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 쓰는 ‘일상적 변화’고, 이 일상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건 변하려는 자세다. 뉴욕타임스에 배워야 할 건 그들의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2012년 ‘스노우폴’ 이후 8년이 흐른 뒤에도 ‘입체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고 고민하는 그 자세다.

물론 변화 지향적인 조직으로 바뀌는 건 최첨단 기술을 저널리즘에 적용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일선 기자들은 매일 매일 쏟아지는 이슈를 처리하느라 바쁘고, 데스크들은 그 기사들을 봐주느라 바쁘다. 편집국 간부도 일상 업무에 매여있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언론계를 뒤흔들었던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도 “뉴스룸 리더가 일상 업무에 너무 몰두해 장기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오로지 ‘뉴스 전략’을 고민하는 부서를 만들었고, 연구·개발에 많은 자원을 할애했다.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이뤄낸 화려한 성과만 보느라 물밑의 끊임없는 발장구질을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 2014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혁신보고서 표지.
▲ 2014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혁신보고서 표지.

뉴욕타임스를 변화하게 만든 건, 저널리즘에선 1등이지만 디지털 분야에선 다른 경쟁자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었다. 우리 언론엔 그 반성이,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있는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상의 변화’도 귀찮다는 이유로 내팽개치지 않았는가. 그런 자세로는, 우리는 우등생의 성적을 남 일처럼 여기는 열등생의 위치를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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