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는 ICT(정보통신기술)정책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현 정부 방송통신위원회가 구성한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에서 방송규제체계 개선 담당 1분과 소속으로 활동했던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가 ‘큰 그림’을 내놨다. 

지난 16일 미디어미래연구소가 주최한 ‘차기정부 ICT 정책 아젠다’ 미디어리더스포럼에서 정준희 교수는 차기 정부 5대 ICT 정책 아젠다로 △통합미디어법 제정 및 정보통신연관법제 정비(1순위) △미디어 정보통신 거버넌스 재정비(2순위)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3순위) △스마트 공공서비스 고도화와 디지털 신뢰 구축(4순위) △정보 무질서 환경에 대한 대응(5순위)을 꼽았다. 

1순위와 2순위 아젠다는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떠오른 ‘방송법 해체’와 ‘부처 통합’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법 중심의 현 규제체계는 “매체 기술과 역무의 한계를 경직된 방식으로 규정하며 역효과를 내고 있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적과 더불어 ‘창조적 해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되어있는 정보통신미디어 관련 정책 부처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현재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놓고도 사실상 세 가지 정책이 등장하는 상황이다. 과기부의 경우 장기적 R&D 목적의 과학기술 부문과 정보통신 분야를 포괄하는 이질적 구조를 박근혜정부시절부터 이어오고 있다. 

정준희 교수는 이날 “미디어로 되어 있는 것들이 여러 법·제도에 산재 되어 있고 규제상 문제들이 나오고 있다”며 “방통위가 추진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이 유럽 사례를 참고한 것인데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차기 정부가 신문법·방송법·IPTV법 등을 통합한 미디어법을 제정하거나, 네트워크·콘텐츠·플랫폼을 통합한 커뮤니케이션법 형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제언하면서 동시에 공공서비스미디어를 위한 별도 법령 제정이 필요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올해 하반기 중 “방송과 OTT 서비스를 통합적이고 일관되게 규율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 법을 통해 공공영역은 고품질 공적서비스 제공책무를 부여하고, 민간영역은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 중심으로 전환하고 OTT 서비스는 최소규제 원칙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거버넌스 재정비의 경우 “크게는 정보통신미디어 부문 일반을 포괄하고, 작게는 내용적 차원인 미디어 부문을 포함하거나 내부의 독립위원회를 통해 규율하는 독임제 부처의 수립을 토대로 정보통신 기술 및 전자상거래, 미디어 부문에 관련된 정책 거버넌스를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합 미디어 부처는 기존의 방통위 같은 합의제 기구가 아닌 독임제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 상징적이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TBS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TBS

정준희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어떻게 공정경쟁 공정거래 질서로 유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이를 차기정부 ICT정책 3순위로 꼽았다. 정 교수는 “바이든 정부 이후 (미국에서)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율 움직임이 있다. 유럽의 디지털마켓법도 그러한 (규율) 목적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해외 온라인 플랫폼을 상대로) 법인세·디지털세를 해결하려면 정책적 목적이 확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미디어와 연관된 온라인 플랫폼의 공정경쟁 질서를 잡아주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과방위에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보호법’(전혜숙 의원안)이, 정무위에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공정거래위원회안)이 발의되어 있는데 공정위에서 관련 입법에 나선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 교수는 멀티호밍 차단, 최혜대우 강요, 불공정약관 등에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관련된 논의를 전면화·세밀화하는 한편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역차별 및 조세회피 등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정책 공조에도 상당히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준희 교수는 4순위 아젠다로 스마트 공공서비스 고도화를 꼽으며 공공부문이 혁신적 스마트 서비스의 표본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관장하는 공공박물관·미술관·공연장·공영방송 등의 문화적 콘텐츠를 디지털화하고 서로 연계되도록 해서 공공부문에서의 비대면 서비스 표본을 만들어 일종의 ‘창의적 공유지(creative commons)’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날 “공공서비스미디어는 단순히 수신료를 올리고 법을 만들거나 없애거나 거버넌스를 바꾸는 문제에서 벗어났다. 핵심은 공공서비스미디어가 새로운 기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다. 예전처럼 독과점구조에서 좋은 프로그램 만드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공공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좋은 프로그램과 좋은 보도만큼 디지털 영역에서 공공서비스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대안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과 실제 세계에서 유연하게 누릴 수 있는 연계적 서비스 혁신이 공공서비스가 살길이라는 의미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앞서 그는 지난 3월 방송학회 세미나에서 “(국내) 공공적 미디어는 여전히 많은 편이나 점차 비공공적인 것에 의해 포위되고 있다. KBS와 MBC가 (자신들의 영역을) 잃어버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우려하면서 “산업의 무질서가 정보의 무질서를 낳는 악순환에서 미디어 공공성은 재구성돼야 하고 핵심 주체는 재편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 교수는 다섯번째 아젠다로 디지털 범죄, 차별, 혐오, 배타성을 조장하는 일련의 정보 무질서 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거버넌스와 집행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투자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는 정보교란 시도에 대응하는 사이버보안 정책과 연결되며,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윤리성 제고 정책,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보역량 및 이용자 윤리의식 확보를 위한 리터러시 교육 정책과도 연계된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정보 무질서는 지금껏 가짜뉴스 규제 문제로 이야기됐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가짜뉴스 몇 개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허위·악의·혐오 정보들이 적극적으로 생성되고 공유되는 것”이라며 “이곳에선 생산자와 유포자가 혼재되어 있다. 사이버 보완, 이용자 보호, 이용자 교육 관련 문제와 연결되는 정보 무질서 대응체계로서의 정책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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