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죄가 언론 보도를 제약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여수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김문환(고려대 박사과정)은 ‘공인에 대한 피의사실공표 보도와 알권리 논쟁’이라는 글을 통해 “언론 자유와 국민 알권리, 민주주의 발전 측면에서 공인에 대한 피의사실공표 금지와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126조에 규정된 조항으로 지난 1953년 제정됐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취득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돼있지만 관련 법 규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어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는 공인에 대한 수사로 인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쟁점이 돼 왔다.

대표적으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 당시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에 대한 여론이 거셌다. 김문환은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수사 때 최순실과 딸 정유라의 피의사실이나 수사내용은 대거 언론에 노출됐다”며 “만약 그때 피의사실공표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 혁명이 가능했을까”라고 반문했다.

2016년 당시 특검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에 대하여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는 최순실 특검법에 따라 수사 내용을 알렸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하지만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특별한 경우를 예외로 인정해 특검법에 따라 피의사실 내용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김문환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 때와 비교해 “사안 별로 확연히 다른 잣대가 보인다”며 피의사실공표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남겼다.

조국 전 장관 당시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진 것은 2019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서울대, 부산대 등 20곳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펼치고 TV조선이 부산대 교수 컴퓨터에 담긴 내용을 뉴스 화면에 내보내면서다. 여권에선 검찰이 언론에 흘러준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 최서원(최순실)씨. ⓒ연합뉴스
▲ 최서원(최순실)씨. ⓒ연합뉴스

김문환은 피의사실공표죄 논쟁점 중 언론자유 측면에서 국민 알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국내 신문 사건 80%가 넘는 기사가 재판 전 단계 기사라는 통계가 있다며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으면 신문사회면 사건기사의 80%는 사라진다는 의미”라며 “선정적이고 시시콜콜한 사건기사까지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피의사실공표죄를 법대로 적용할 경우 공적기능을 갖는 언론의 표현의 자유, 즉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책 토론회(2019년 9월 18일 법무부 형사기획과 소속 한지혁 검사 발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연방 법무부 규정과 연방검찰 메뉴얼 등 공보활동 지침이 있다. 검찰 수사 브리핑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앞선 두가지 기준에 따라 허용된다.

영국은 수사브리핑 지침을 운영하고 독일은 공소장 문서를 원문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 규제를 둔다. 공소장 그대로 발표하는 수사기관도 없고 공소장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도 없다고 한다.

프랑스는 수사 업무 종사자의 일반적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 일본은 공익상 필요한 경우 소송서류를 공파 전 공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김문혁은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들어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수사상황을 알려주는 데 대한 특별한 규제조항을 두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각국 사례의 경우 문화적 차이가 크고, 사건별 적용에 있어서 제한 규정에 대한 심층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김문혁은 “그동안 피의사실공표죄를 둘러싼 논쟁은 다분히 정략적으로 전개돼왔다. 자기 진영에 유리하면 부추기고, 불리하면 비판했다”며 “공인에 대한 피의사실이나 수사내용 공표 금지는 마치 환자에게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하는 대신 환자의 증상을 외부로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와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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