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 회장 추모기사 헤드라인에 나타난 언어 분석을 통해 한국 언론이 △일류주의 △기술중심주의 △글로벌 지향 주의 △혁신과 도전정신의 관점으로 이건희의 죽음을 바라봤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 언론이 이건희 전 회장을 기사로 쓸 때 ‘세계 초일류’, ‘반도체’, ‘혁신’ 등의 긍정 키워드를 많이 사용했고 부정 키워드로는 ‘무노조 경영’을 사용했다는 연구결과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지, 보수신문, 진보신문 성향에 관계없이 나타났고 한국 언론이 추모 기사 헤드라인에서는 고인에 대해 긍정 평가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18일 여수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봄철학술대회를 통해 ‘삼성 이건희는 어떻게 기억되어지는가: 추모기사 언어 분석을 통해’라는 연구가 발표됐다. 해당 연구는 이완수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 최명일 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 교수가 진행했다.

이완수 교수는 “이건희 전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삼성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알렸으며, 초일류 기업으로 세계기술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듣는 반면에, 정경유착의 오명을 들었으며, 노조탄압을 방치했으며, 불법 경영승계로 지탄을 받았다는 점에서 명암이 뚜렷이 엇갈리는 인물”이라며 “그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크고 복잡해서 여러 사회과학적 접근분석을 통해 다면적인 평가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 동기를 밝혔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 날리는 삼성 사기.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 날리는 삼성 사기. ⓒ연합뉴스

이 연구는 2020년 10월25일 사망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간신문 추모기사에 나타난 언어 분석을 시도했다. 연구 대상이 된 신문 기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매일경제, 한국경제였다. 2020년 10월26일부터 10월29일까지 일간신문에 보도된 158건 추모기사를 전수조사했다. 이 기간에 보도된 이건희 추모기사는 경제일간지 60건(37.97%), 보수일간지 73건(46.2%), 그리고 진보일간지 25건(15.82%)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기사의 주제목과 부제목을 대상으로 3200개 단어를 대상으로 최종적으로 의미있는 2405단어를 골라 분석했다. 이건희 회장 사망 보도에서 주로 사용된 핵심어를 살펴보면, 삼성(75건), 이건희(61건), 회장(44건), 기업(37건), 세계(31건), 반도체(27건), 초일류(27건), 혁신(23건), 글로벌(16건), 경영(13건)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완수 교수는 이 연구에서 “선정한 92개 핵심어에 대해서 언론사별 연결망 구조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언론사의 성향에 따른 차이는 없었다”며 “이러한 결과는 언론사의 성향과 관계없이 이건희 기억에 동원된 핵심어 사이의 연결망 구조가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비슷한 보도 경향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이건희에 대한 언론의 기억은 매우 긍정적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야박하게 폄하하기는 어렵겠지만, 이건희에 대한 추모 기억은 긍정적 언어로 나타났다”며 “추모기사에 나타난 기억만 놓고 보면 공(功)은 부각되었고, 과(過)는 묻혔다는 평가를 할 만 하다”고 밝혔다.

▲
▲이건희 추모기사에 나타난 핵심어 사이의 연결 관계. 사진출처=한국방송학회 이완수 교수 발제문. 

이 교수는 추모 기사의 핵심 관점은 △일류주의 △기술중심주의 △글로벌 지향주의 △혁신과 도전정신이라 정리했다. 이 교수는 “한국 언론들이 글로벌, 일류, 혁신, 도전, 미래와 같은 선택적 언어를 통해 이건희를 평가한 것은 한국 기업이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핵심적 가치와 요소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며 “이에 반해 정경유착, 비자금 조성, 노조탄압, 불법 경영권 승계와 같은 그간의 부정적이고 일탈적인 언어는 드물게 언급함으로써 망각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두고 이 교수는 “언론은 어떤 죽음을 추모할 때 부정적 언어로 평가하기 보다는 주로 긍정적 언어로 평가한다”며 “언론은 대체로 망자의 흠결 대신에 성취를 중심으로 추모하는 보도 관행을 보였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언론의 이념성이 이건희에 대한 기억과정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았다”며 “경제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와 진보신문 모두 주 광고주인 삼성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왔던 그동안의 상업주의적 보도 관행이 고려되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언론들이 그동안 보여 왔던 정치적 기억 편향성이 왜 이건희 삼성 전회장의 죽음 기록에서만 유독 잘 드러나지 않는지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 언론들이 기업인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정치적 가치보다 경제적 이득을 보다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바람직한 공적 가치를 강조하는 반면에, 가족관계, 개인의 취향, 친구 관계, 삶의 일상적 회고와 같은 개인적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미디어에 비춰진 이건희에 대한 기억 언어가 주로 상징과 신화를 강조하거나 규범적이고 집단적인 가치를 드러내는데 맞춰짐으로써 개인의 일상적인 회고나 기억은 사회적 기억망으로 포섭되지 못했다”고 짚었다.

다만 이 교수는 이 연구의 한계로 본문기사 내용을 살펴보지 못한 점을 짚었다. 이 교수는 “추모기사 헤드라인은 망자의 몇 가지 긍정적 측면을 선별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읽어내기 어렵다”고 스스로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