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보도에서 피해자를 놓지 못하는 보도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공군 내 성폭력 및 은폐 사건이 알려진 뒤 신중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를 사건명에 붙이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의 가장 기본이자 공통점은 ‘피해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의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2018년)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다”며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실제 보도행태는 정반대에 가깝다. 사건이 알려진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제목에 ‘공군’과 함께 ‘성추행, 성범죄, 성폭력, 성폭행 중 1개 이상’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438건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국내 신문·방송 54개 매체의 뉴스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피해자 직위인 ‘부사관’이 언급된 제목은 153건, ‘중사’의 경우 67건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해자를 지칭하는 ‘준위’ ‘상사’는 10건, ‘간부’는 18건 언급되는 데 그쳤다. 피해자를 드러낸 제목은 220건으로 50.2%, 가해자를 드러낸 제목은 28건으로 6.4%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이용해 지난 5월31일~6월15일 국내 54개 매체가 보도한 '공군 성추행' 관련 기사의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분석 대상 기사 1000건 기준)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이용해 지난 5월31일~6월15일 국내 54개 매체가 보도한 '공군 성추행' 기사의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분석 대상 기사 1000건 기준)

물론 피해자 유족의 호소로부터 시작된 사건의 특수성이 미친 영향일 수도 있다. 실제 지난달 31일 MBC(뉴스데스크)가 피해자의 유족과 변호인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사건을 최초 보도했고, 다음날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사랑하는 제 딸 공군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멈춰주세요)을 올리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느냐는 언론의 선택이다. 사건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부터 관심은 피해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중의 관심을 따르는 미디어 속성과 결부돼 ‘피해자의 이야기’를 나르는 기사가 대량 생산되는 결과로 이어져왔다. 공군이 내부의 성추행 사건을 얼마나 부실하게 처리했고, 어떻게 은폐하려 했는지는 한차원 뒤로 밀려나는 셈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번 사건을 ‘공군 성폭력 은폐사건’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11일 성명을 내어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여성 중사, 여성 부사관, 공군 부사관이라는 게 아니다. 군인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남성 중심 군대문화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군 조직의 조직적 은폐 시도”라며 “더 이상 관행을 이유로 변명하지 말고, 성폭력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사건 명명부터 똑바로 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군 내부의 또다른 성폭력 사건들은, 가해자의 ‘선정적 언행’을 부각하는 보도가 확인되고 있다. 성폭력 행위나 경위를 묘사하거나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을 여과없이 담는 등의 ‘따옴표 저널리즘’ 사례들이다. 언론인권센터는 10일 “2차 가해자의 발언을 따옴표로 처리해 기사 제목으로 내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자극적 내용으로 조회수를 높이기 위함”이라며 “포털과 언론은 악의적인 댓글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따옴표 저널리즘 행태를 멈추고, 피해자 보호 원칙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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