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가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오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 남자친구로부터 폭력·협박을 겪은 뒤 망상장애·강박장애 등을 겪고 있는 이민경(오연서 분)과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노휘오(정우 분)가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로, 정신질환을 비롯해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여러 장면들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극 중 감옥에 있는 전 남친 어머니가 이민경을 찾아와 합의를 종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면 되냐”고 계속 채근한다. 민경이 합의를 거부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민경이 ‘상간녀’라는 악의적 비방글과 함께 민경의 얼굴과 사는 곳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올렸다. 맘카페를 통해 허위정보가 확산되고, 민경은 결국 동네를 떠나라는 부녀회의 요구를 받지만 오해가 풀려 부녀회 사람들이 전 남친 어머니를 찾아가 글을 지우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극 중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직접 찾아가서 작성자에게 글을 지우라고 하는 것밖에는 없을까. 민경은 맘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좌절하지만 민경은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의 임시조치 제도 때문이다. 민경이 ‘권리침해’를 주장하며 해당 게시글에 임시조치를 신청하면 포털사업자가 게시글을 30일간 차단한다. 게시자의 이의신청이 없으면 게시글은 30일 뒤 자동 삭제된다. 2007년 국내에 도입된 제도로, 만약 이의신청으로 분쟁이 발생하면 포털사업자 등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건 심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한국의 임시조치제도는 허위정보 관련 규제에 유용한 측면이 있지만 ‘사실’을 적어도 ‘권리침해’를 주장하며 누구든 임시조치를 요구할 수 있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포털이 직접 임시조치에 나서는 것을 두고 “일종의 사적 검열”이란 주장도 있어서 국회에서 이 같은 논란을 보완할 수 있는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어쨌든 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경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의 주인공 이민경(오연서 분). ⓒ카카오TV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의 주인공 이민경(오연서 분). ⓒ카카오TV

임시조치가 이뤄지더라도 전 남친 어머니가 다른 아이디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민경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 있다. 임시조치만으로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때는 주저하지 말고 경찰서로 가서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극 중 상황에선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또는 모욕 혐의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민경을 특정할 수 있게끔 하는 정보가 많을수록 전 남친 어머니에게 불리하다. 전 남친 어머니도 충분히 콩밥 드실 자격이 있다. 

만약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상간녀’ 사연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이미 노출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처럼 온라인 커뮤니티를 베껴 기사로 쓰는 시대에 충분히 현실에 있을법한 상황이다. 이때는 주저없이 언론중재위원회로 가야 한다. 언론중재위는 민사소송처럼 복잡하지 않고, 돈도 들지 않는다. 민경은 기사가 사실과 다르니 삭제해달라거나,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 현재 언론중재법상 기사삭제청구권이 없지만 오보의 정도에 따라 조정과정에서 기사삭제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던 사이인지 벌써 잊었나 보네.” 극 중 최악의 ‘쓰레기’인 민경의 전 남친은 동의 없이 민경을 몰래 촬영했고 영상을 빌미로 이별을 거부하고 협박하고 폭행했다. 전 남친이 만약 이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면? 이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경을 도와줄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불법 촬영물 등 디지털 성범죄 정보를 심의해 삭제·차단조치 하고 있다. 

방통심의위 산하 디지털성범죄 심의지원단이 2019년 9월 출범했다. 지원단은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며 국내외 사업자 요청 등 자율규제를 통해 삭제와 차단조치에 나서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전담대응팀이 신설됐으며, 지원단 출범 이후 현재 디지털성범죄 정보 대응 속도는 일주일 단위에서 실시간으로 단축됐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법제도는 주변에 휘오나 부녀회 사람들이 없는 수많은 ‘민경’을 위한 ‘호루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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