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를 통해 문화예술노동자 전체 요구 및 각 문화예술 현장의 요구를 드러냈습니다. 그 중 영화, 음악, 방송작가, 게임, 웹툰, 공연, 예술강사 들의 노동 현실과 구체적 요구를 연속기고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편집자 주

매출액에 비해 노동자 임금이 지나칠 정도로 낮다는 비판을 들어온 게임업계에도 급여 인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 넥슨이 노조와 임단협을 진행하다 일방적으로 꺼내 든 연봉 800만원 인상을 시작으로, 넷마블, NC소프트, 크래프톤 등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연봉 인상 선언이 줄을 이었고, 게임 외 IT산업의 연봉 인상으로도 이어졌다. 

물론 1차적으로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처럼 기본적으로 게임회사의 연봉은 매출 및 영업이익 규모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낮다. 성과급 또한 타 산업과는 달리 팀 별로 매출에 대한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비율이 높다. 2017년 NC에서 ‘리니지m’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로 전 사원에게 지급한 300만원 성과급이 사실상 업계 최초의 전사 성과급이었다.

이런 개선이 이뤄지기 전에는 대기업에서도 포괄임금제를 빌미로 공짜 노동이 만연했다. 회사는 큰 당기순이익을 달성해도 실적을 낸 ‘팀’ 외에는 성과급이나 유의미한 임금 인상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일부의 성공을 미끼로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을 산업 내 문화처럼 정착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은 업계 경영진이 아니라 노동계와 정치계 일각이었다.

▲넥슨 로고
▲넥슨 로고

게임업계는 지금까지 ‘자체적인 계획’과 ‘선한 의도’만을 가지고 노동환경을 개선한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와 국회의 개입이 있고 나서야 추가근로에 대한 체불 임금을 지급하고,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지속적 문제제기를 해야만 임금 수준이 인상된 전례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아직도 게임 산업에 대한 제도적 감시가 느슨하기만 한 상황에서는 이런 연봉인상이 과연 올바른 시장자율적 해결일 것인지까지 걱정해 보아야만 한다.

희망적으로만 보자면 지금까지 대기업이 꼭 쥐고 있던 이익잉여금을 산업 종사자들이 나누어 받으면서 분배가 개선될 수 있고, 추가노동 비용이 증가하면서 연장근로를 기피하게 되면 고용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임금 인상이 고용 확대와 결합하면 산업 종사자의 총 임금 규모가 상승하면서 관련 업계의 소비가 증가되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으며, 우선 기본적으로 우수 인력의 유출이 방지되고 신규 인력 채용이 증가하면서 산업의 기초 역량이 상승해 ‘아웃풋’의 질이 상승할 것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대표 안명희)는 지난해 8월21일 오후 2시 서울 당산동 ‘경험과 상상’ 극장에서 9차 예술노동포럼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문화예술노동연대(대표 안명희)는 지난해 8월21일 오후 2시 서울 당산동 ‘경험과 상상’ 극장에서 9차 예술노동포럼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게임업계 회사 주도 임금인상 바람, 긍정적이기만 할까

긍정적 예측은 이처럼 쉽지만 그 이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란 좀 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측하기 어렵다고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시장질서 쪽만 따져봐도 사측이 임금 인상을 일종의 비용으로 간주하고, 다른 비용을 절감하여 예년과 같은 수준의 순이익률을 맞추려 하는 상황을 쉽게 가정할 수 있다. 하청 쥐어짜기와 계열사 쥐어짜기, 퍼블리싱 계약 시의 불공정 계약이 바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결과 중소기업의 재무 구조가 악화된다면 이후 인수의 기회비용이 저하될 것이다.

임금 인상이 회사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 또한 우려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합의 테이블을 벗어나 회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이상 노조의 협상력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며 산업 전반적으로 노조 결성의 동력이 저해될 수 있다. 회사가 잘 해준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노사 양방의 관계가 균형을 잃게 되면 당장은 뒤로 숨겨졌던 부당행위도 순식간에 표면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노동 문제에 집중하면 고임금을 빌미로 저성과자 낙인 및 통제가 강화될 점도 우려된다. 산업 내에서 이미 저성과자에게 가혹한 인사 시스템 및 계약 조건 변경 강제 등이 문제된 경우가 있으며, 특히 임금 인상안을 공개하면서 ‘개발 직군’과 ‘비개발직군’을 분명히 나누고, 프로그래밍 직군 외에는 전부 비개발직군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직군 별 갈등을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또한 지우기 어렵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저성과자를 퇴출하고 조직 내에서 마찰이 있는 인물은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나, 다수의 노동 생산성 연구를 봤을 때 조직 내에 어느 정도의 반대 의견이 보장되고, 저성과자의 저성과 이유를 회사가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해야 전체적인 생산성이 원만히 증대되고 유지된다는 가설이 설득력이 높다. 또한 반대 의션이 전혀 없다면 고임금을 빌미로 하는 충성 강요가 산업 전반의 문화로 확대되고, 매출 위주의 획일적 개발 장르 편성으로 인한 다양성 악화나 유저를 쥐어짜는 모델이 내부적으로 묵인 및 장려되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3월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2021년 문화예술계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3월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2021년 문화예술계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최근 확률 공개에 대한 게임 업계의 부정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산업 생태계적 위기로 이어지리란 우려가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게임이 문화예술산업이라면 단순히 회사 매출을 신성시하기보다는 결국 사회, 소비자와 상호공생할 수 있도록 시장 생태계가 발전해야만 한다.

각종 문화예술, 게임에 사용되는 순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감시가 필요하다. 우선 게임을 문화예술산업으로 확실히 인정하고,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적극적 노동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이번 임금인상의 사례에서도 대부분 회사는 프로그래머만을 ‘개발직군’이라고 단정하고, 그 외 종사자들은’ 비개발직군’으로 분리함으로써 프로그래머의 존재가 차별적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다. 게임 산업의 성장이 일차적으로는 자본의 배불리기에 그치고, 그 뒤로도 자본가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자의 급을 나누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산업의 성숙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임이 일각의 반복된 주장처럼 멀티미디어이고 복합문화예술이라면 프로그래머 외의 산업 종사자들도 개발 직군일 수밖에 없다. 기획, 시나리오, 레벨 디자인, 일러스트, 모델링, 애니메이션, 효과 연출, 음성, 음악, QA 등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직군은 굉장히 많고, 이들이 없이는 게임이 완성되기 어렵다. 아울러 온라인 서비스가 중추인 우리 게임 산업의 특성상 게임 운영, 고객센터 등 개발 보조 인력으로 보아야 하는 관련 종사자는 수없이 많으며, 더 넓게 보자면 비평가, 기자 등도 게임 산업에 종사하며 게임을 문화로 가꿔나가고 있는 일원이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이 견인하는 것이 게임 산업의 문화적 특징이고, 일각의 주장처럼 유튜브 스트리머도 게임 크레이에이터라고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 추세라면 결국 모든 게임 산업 종사자들은 문화예술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일러스트, 시나리오, 음악, 육성 연기 등 기존 산업에서는 예술로 인정받아 온 부분들조차 ‘게임에 사용되는 순간’ 문화예술 종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이 게임을 규제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을 때를 제외하면 게임은 문화예술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게발자연대 로고
▲게임게발자연대 로고

단순히 프로그래머가 더 나은 대우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기술적 역량이 높은 인력의 채용에는 그만큼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업계는 저임금으로 높은 영업이익을 달성해 온 지금까지의 방법을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덜 중요한’ 직군일수록 고용 적정 인원을 더 적게 책정하고, 초과근로를 만성화시켜 온 문화 또한 보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 사이의 계급을 나누면서도, 52시간제를 우회하기 위한 탄력근로제 등의 도입에는 개발, 비개발 직군의 예외를 두지 않는 산업계의 모습에서는 ‘반성과 개혁’의 다짐을 전혀 읽어낼 수 없다.

거대 자본의 독점 구조 또한 계속 감시당하고 규제당해야만 한다. 게임 산업은 첨단 IT 산업이자 복합 문화예술 산업이다. 단일 대기업이 연 1조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한 배경에는 노동자와 중소기업, 게임 이용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지금까지도, 지금도 작은 회사나 개발 스튜디오에 대한 불공정행위는 빈번하고,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이용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와 기망행위가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처지다. 그럼에도 게임은 문화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성이 높고 사회적 가치를 핵심에 두고 있어도 다른 예술작품들처럼 장려받을 변변한 기회도 받지 못한 채 대기업의 자본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게임 산업의 양적 팽창에만 골몰한 나머지 대기업의 전횡을 제때 손보지 못했고, 게임을 문화보다는 산업의 관점에서만 바라봤다는 실책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라도 게임을 말뿐이 아닌 진정한 문화예술산업으로 인정하고, 산업과 이용자 등 게임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여야 한다.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창작물을 개발하고 공개하고 싶은 개인 또는 소규모 개발팀도 문화예술 다양성의 측면에서 더 지원받고. 소비자들도 게임회사의 약탈적 사업모델, 게임 사용자 문화를 빙자한 차별, 폭력, 위협 등에서 보다 자유롭게 게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오히려 적기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계속 방치하기보다는 이제라도 나서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의 편견과는 달리, 단순한 시장논리와 차별, 혐오가 게임 산업의 질적 발전을 붙잡고 있음을, 다양성과 예술성, 자유와 평등이 게임 문화의 핵심 가치로 자리잡을 때 게임 산업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음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정부가 게임을 ‘산업’이 아닌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현명한 정책을 입안할 것을 이 지면을 빌어 간절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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