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에 이렇게 탄압 당할 줄 몰랐어요. 그것도 제가 당하게 될 줄은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누군가를 죽이려는 시도로 바라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요.”

30대인 임지훈(가명)씨는 9년차 현대HCN 케이블 노동자다. 경북 상주와 칠곡 북삼지역 현대HCN 서비스센터에서 가입자의 인터넷과 케이블을 설치‧수리한다. 그는 지난해 말 노동조합에 처음 가입했다. 그리고 현재 자동차로 다녀야 할 출퇴근길 20km를 전동킥보드로 “목숨 걸고” 다니고 있다. 

지난달 노조원만 출퇴근 차량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가 “왜 노조원들만 본래 출근시간보다 일찍, 퇴근시간보다 늦게 가야 하느냐”고 물은 뒤 강등‧전보 조치까지 받으면서다. 발단을 묻자 임씨는 “사연이 길다”며 웃었다. 불과 6개월 사이의 일이다.

▲ 임지훈씨가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측은 지난 3월 노조원에만 출퇴근 차량지원을 거뒀다. 임씨가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 대우를 항의한 날 사측은 그를 강등 조치하고 상주에서 북삼으로 발령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 임지훈씨가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측은 지난 3월 노조원에만 출퇴근 차량지원을 거뒀다. 임씨가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 대우를 항의한 날 사측은 그를 강등 조치하고 상주에서 북삼으로 발령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임씨는 현대HCN과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서비스센터) 소속으로,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현대HCN은 전국 서울, 부산, 대구경북과 충북 지역에서 가입자 132만 8000여명을 둔 복수종합유선방송사(MSO)다. 원-하청업체 간 위탁계약이 1~2년마다 갱신되면 임씨의 근속연수도 함께 갈아치워진다. 현대HCN의 케이블 설치·수리·철거·망 관리 노동자들은 임씨와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거나 일부는 근로계약 없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그와 동료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건 현대HCN이 매각에 들어가면서다.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개인 힘으로 ‘최저수준인 월급을 올려달라, 수당을 지급하라’ 얘기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우리 회사(현대HCN)가 팔리게 되면서 고용불안이 확실해지니 위기감이 커졌어요. 직원들 모두 지금보다 ‘더 하청’이 될 거란 위기감요.” 위성방송사업자인 KT 스카이라이프가 현대HCN를 인수하기로 해 현재 기업결합 심사 중이다. 

▲KT스카이라이프와 현대HCN 로고
▲KT스카이라이프와 현대HCN 로고
▲케이블·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케이블·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기사와 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KT스카이라이프는 매각 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언급하지 않았다. 위성과 케이블, 인터넷 TV 모두 같은 유료방송이라 서비스가 겹치는 상황에 ‘가입자 빼가기’를 위한 인수 절차라는 우려가 커졌다. 동종업계에서 인수를 겪은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 티브로드, 딜라이브, CJ헬로(LG헬로)의 경우도 설치‧수리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요구에 나서면서 2017년부터 속속 근로계약이 없던 개입사업자에서 원청 아닌 외주업체와 ‘1~2년 단위 근로계약’ 맺거나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됐다.

무엇보다 상주센터 외 일부 현대HCN 서비스센터는 설치‧수리 일부를 불법으로 도급을 준다. 정보통신공사업법상 건물외벽, 옥상, 전봇대 작업은 기간통신사업자(원청)나 정보통신공사업 등록을 한 사업자(하청업체)만 해야 하는데, 업체가 고용의무를 피해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두는 것이다. 임금과 근속 체계도 엉망이었다. 그의 동료인 3년차 직원은 지금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회사에 다시 들어온 지 4년차인 그와 선임 노동자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 외 임금은 ‘수당’으로 들어오는데 명목이 매번 다르다. 노동하는 만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에 세워진 함께살자함께HCN지부 창립멤버가 됐다. 상주센터에 근무하는 센터장을 뺀 직원 모두가 그랬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은 HCN 포항남구센터 해고 철회와 고용보장, 노동조건 개선 등을 걸고 서울 상암 KT스카이라이프 사옥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은 HCN 포항남구센터 해고 철회와 고용보장, 노동조건 개선 등을 걸고 서울 상암 KT스카이라이프 사옥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노동조합 흔들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하청업체 사장은 3월 중순 상주와 칠곡 센터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전격 폐업을 선언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센터 폐업은 직원들에게 실직을 의미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러자 센터 내 직급 높은 직원 2명이 ‘사장은 노동조합 때문에 힘들어서 폐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둘은 며칠 뒤 노조를 탈퇴했다. 

조합원들은 동요했다. 줄줄이 탈퇴가 이어졌다. 2주 뒤 21명이던 조합원이 4명으로 줄었다. 사장은 그제서야 다시 조회를 소집하더니 “내가 실수를 했다”며 폐업 선언을 거뒀다. 임씨는 “그가 원하는 대로 됐구나. 우릴 바보로 보고 속였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시 가입할 줄 알았던 조합원들은 다시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후 사측은 출퇴근 시간부터 차량지원까지 일상 속 작은 것부터 노조원 차별 정책을 세웠다. 사측은 지난 3월 “다음달엔 비노조원만 9시에 출근, 6시 퇴근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업체는 본래 업무시간 9시~18시와 달리 8시45분 출근, 6시10분 퇴근을 지시해왔는데, 비노조원에게만 이를 고치겠다는 얘기다. 3회 이상 지각자는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단체톡방에서 사측이 노조원에게만 오전 8시45분부터 저녁 6시10분까지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왼쪽)과 임지훈씨가 사유서 제출 요구에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 대우를 항의하는 내용. 희망연대노조 제공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단체톡방에서 사측이 노조원에게만 오전 8시45분부터 저녁 6시10분까지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왼쪽)과 임지훈씨가 사유서 제출 요구에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 대우를 항의하는 내용. 이날 항의한 임씨는 같은 날 강등·전보 조치됐고, 사측은 5월1일부로 노조원과 비노조원 출퇴근 시간을 통일한다고 공지했다. 희망연대노조 제공

임씨는 비노조원들보다 일찍 도착하고도 ‘상습지각자’가 됐다. “제가 구미에 사는데,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고 사무실에 가면 아무리 빨라도 8시45분 턱걸이였어요. 비노조원들은 당연히 45분 넘어서 왔고요.” 당일 아침 사측은 직원 단톡방에서 그에게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그는 “왜 우리만 45분 넘으면 지각이냐, 차별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사측은 그날 오후 그를 과장에서 대리로 강등 조치했다. 근무지도 상주에서 57km 거리인 칠곡 북삼으로 발령냈다.

차량지원도 사라졌다. ‘노조 가입자는 차량지원 없다’는 사내 공지가 3월 말 내려왔다. 업체는 직원들 편의를 위해 회사 차량으로 자택과 근무 현장을 출퇴근하도록 했는데, 노조원에게만 사무실로 출퇴근, 차량을 픽업하고 반납하라고 했다. 기본급 최저임금 수준에 수당은 불안정한 형편에 택시를 탈 순 없었다. 그는 “급하게 차량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되고, 버스도 세 번 갈아타는 길이었다. 결국 100만원을 주고 전동킥보드를 사 목숨 걸고 13km를 출근하고 있다”며 “처음엔 자전거 타고 가다 감기 걸렸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측이 임지훈씨에게 차량 지원 거부를 재확인하는 메시지. 희망연대노조 제공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맡는 위탁업체 측이 임지훈씨에게 차량 지원 거부를 재확인하는 메시지. 희망연대노조 제공

희망연대노동조합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임씨에 대한 부당인사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라도 간접 고용이다. 근속도 없고, 일자리가 불안한 건 변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자에게 미래란 없다”며 “원청의 인수 국면에서 노동자가 목소리를 모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직영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하루파업을 했다 해고 당한 설치·수리 노동자들도 있다. 경북 포항지역 현대HCN 노동자들은 지난달 27일 설치·철거 업무 담당자 정규직 전환과 업무비·자재비 회사 지원, 인수에 따른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다음날 센터는 참여자 19명 중 18명에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현대HCN비정규직지부는 8일 서울 상암동 KT스카이라이프사옥 앞에 원청 인수기업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현대HCN 상주서비스센터를 위탁운영하는 ㄷ업체의 ㄱ 사장은 노조원 차별 지적에 “노조원들의 무리한 요구로 임·단협이 결렬돼 비노조원들에게만 변경된 사규를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업체 측은 지난 3월부터 ‘노조 요구서를 아직 못 봤다’거나 ‘시간이 없다’며 교섭을 해태해왔다.

ㄱ 사장은 “임씨를 북삼센터에 발령한 건 영업을 잘해서”라고 말했고 강등 조치에는 “임씨가 과장이었던 적이 없고 원래 대리”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임씨 재직증명서와 북삼 발령 공지문을 비롯한 사측 문서는 임씨의 종전 직급을 ‘과장’(직책 팀장)으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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