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뉴스통신진흥회 구성을 다섯 달째 미루면서 진통이 가중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업무 공백에 더해 내년 대선 보도를 심의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구성도 시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이어서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 대주주이자 경영감독기구인 진흥회 신임 이사회 구성도 처음으로 사장 임기 만료일을 넘겨 지연되고 있다.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방통심의위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3인씩 추천한다. 국회의장 몫은 통상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여야 대표가 1명씩 추천한다. 과방위 몫은 여당이 1인, 야당이 2인을 각각 추천한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여야 6대3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난 1월29일 임기를 마친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왼쪽부터 민경중 사무총장, 심영섭 위원, 황성욱 상임위원, 허미숙 부위원장, 강상현 위원장, 박상수 위원, 이소영 위원, 강진숙 위원, 김재영 위원. 사진=방송통심신심의위원회.
▲지난 1월29일 임기를 마친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왼쪽부터 민경중 사무총장, 심영섭 위원, 황성욱 상임위원, 허미숙 부위원장, 강상현 위원장, 박상수 위원, 이소영 위원, 강진숙 위원, 김재영 위원. 사진=방송통심신심의위원회.

차기(5기) 방통심의위 위원장으로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국회의장 몫으로 추천되는 방심위 부위원장엔 김윤영 전 원주MBC 사장과 이장석 전 목포MBC 사장이 입길에 올랐다 논란으로 무산된 뒤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은 정민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와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를 추천했고 김유진 현 민언련 이사 등도 심의위원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의장 몫 심의위원으로 새롭게 거론되는 인사는 이광복 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비상임이사다. 이광복 비상임이사는 1978년 동양통신 외신부 기자로 입사했으며 동양통신이 신군부 언론 통폐합으로 폐간된 뒤 1982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외신부 기자로 다시 입사, 연합뉴스 정치부장, 전략사업본부 본부장, 논설주간, 이사 등을 역임한 뒤 2011년 퇴직했다.

이광복 이사는 8일 미디어오늘에 “아직 (추천 여부에) 확답을 받지는 않았다. 여야가 서로 명단을 내지 않고 있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이날 “아직 공식 추천이 안 됐다. 이 이사 추천 이야기는 현재로서는 추측”이라고 선을 그은 뒤 “과방위에서 여야 간 정리가 안 됐다”고 밝혔다.

진흥회의 경우도 정부와 야당이 이사 추천 순서를 미루고 있다. 진흥회 이사는 총 7인으로, 정부가 2인,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3인, 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각 1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5기 진흥회 임기가 2월 초 만료된 뒤 4개월째 차기 이사회 구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2인 몫 가운데 5기에 보궐로 들어와 유임키로 한 김인숙 이사 외 나머지 1인을 알리지 않고 있다. 국회 3인 몫 중 야당 1인 추천하는 국민의힘도 추천을 무기한 미루고 있다. 국회의장의 경우 전종구 전 중앙일보 중부사업본부장을, 민주당은 이준한 인천대 교수를 추천했다. 한국신문협회는 강홍준 현 신문협회 사무총장을, 한국방송협회는 임흥식 MBC C&I 대표이사를 명단에 올렸다.

정부는 야당 측 추천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8일 “인사 관련한 사항은 말씀드리기 힘들다”면서도 “대부분 준비는 다 끝났는데 야당 측에서 아예 추천을 안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본사 1층 로비에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붙인 현수막.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본사 1층 로비에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붙인 현수막. 사진=김예리 기자

국민의힘은 방통심의위와 진흥회 인선 모두 ‘정부가 먼저 패를 공개하라’는 입장이다. 과방위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8일 “내부적으로 선임 방향은 잡혀 있다. 그러나 여당과 청와대에서 먼저 추천 내역을 공개해야 정도를 맞춰 위원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청와대가 위원장을 정했는지 여부를 우리 당엔 알려온 적이 없다. 만약 정연주 전 사장이 내정됐다면 정파성 문제로 곤란하다고 본다”고 했다. 진흥회 이사 추천과 관련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현재 (진흥회 이사 추천 후보를) 논의 중에 있다”고 밝힌 뒤 추천 일정과 후보자 관련한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두 기관 모두 업무 공백과 혼선이 현실화된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방통심의위에 누적된 심의 건수는 약 13만 건에 이른다. 통신심의는 11만1227건, 방송심의는 7982건, 디지털성범죄는 9036건이다. 방통심의위는 내년 대선 선방심의위 출범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방통심의위는 내년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 8개월 전(240일)인 다음 달 12일까지 선거방송심의위를 구성해야 한다. 민경중 방통심의위 사무총장은 8일 “선방심의위는 정당 추천이 아닌 단체 추천이다. 선방심의위가 구성돼도 방통심의위가 전체회의에서 출범에 대한 의결을 해야 구성되는 건데, 위원회 구성마저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구성원들도 전에 없는 곤란을 겪고 있다. 뉴스통신진흥법상 현 진흥회가 신임 이사회 구성이 끝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가지만, 사장 선임을 비롯해 중요한 결정은 내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영진 인사와 조직개편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성부 사장과 이성한 편집총국장 임기는 지난 3월 끝났지만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박성민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장은 8일 “보도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인사가 만사인데 관련해 새로운 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니 다들 지치고 활력을 잃은 상태”라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스통신진흥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스통신진흥회.

이 가운데 부적절한 추천 시도도 반복됐다. 박병석 의장은 연일 학연·지연 논란을 빚고 있다. 방통심의위원에 대전고교 동문이자 세월호 보도개입 의혹을 받는 이장석 전 목포MBC 사장, 대전고 동문 김윤영 전 원주MBC 사장을 추천했다. 김 전 사장은 과거 방송 출연을 대가로 금품을 받아 유죄가 선고된 사실이 드러나 사퇴했다. 박 의장이 진흥회 이사로 추천한 전종구 전 본부장은 그의 대전고·성균관대·중앙일보사·정치입문 후배다. 박 의장실 관계자는 “의장님이 기본적으로 언론사 출신인 데다, 대전고가 충청에서 가장 명문이었다. 그래서 추천하는 것이지 특별히 동문 안에서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도 진흥회 이사 1인 몫으로 이백만 참여정부 당시 홍보수석을 추천했다 정치적 독립성 이유로 반발에 부딪힌 뒤 무산된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당내 이사 공모에 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장악 부역자로 지목되는 조복래 전 연합뉴스 상무와 이창섭 전 편집국장 대행이 지원한 사실이 알려진 뒤 지금껏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치권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데에는 국민의힘이 추천 명단을 확정하지 않은 이유가 결정적이다.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 않는 기조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방통심의위의 경우 정권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국민의힘 입장에선 추천을 차일피일 미루다 정부·여당으로서 추천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야당 위치에서 추천이 완료되면 만일 정권이 바뀔 경우 여당 추천 위원들이 다수인 방통심의위와 2년 이상을 함께 가야 한다. 방통심의위가 2008년 출범한 이래 방통심의위 구성은 늘 정부여당이 다수였다.

언론학계, 방통심의위, 진흥회 구성원들은 정치권이 반복되는 인선 논란과 출범 지연 문제에 손을 놓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앞서 4기 방통심의위 역시 3기 종료 7개월여 만에 ‘지각 출범’한 바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8일 “정치권에 위원 추천을 맡기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 지난 임기 방통심의위를 비롯해 위원 추천이 미뤄지면 기약 없이 활동이 멈추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해왔다”며 “정부와 국회도 작금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민 연합뉴스지부장은 “야당에 적격자를 빠른 시일 내에 추천하도록 촉구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진흥회 운영 책임을 지는 정부가 먼저 추천 내역을 밝히고 6인 체제라도 출범하길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준교 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장은 8일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여야가 싸우면서 우리와 연합뉴스가 힘든 상황이다. 선방심의위도 출범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삶과 맞닿아있는 디지털 성범죄와 불법·유해정보 심의 등을 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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