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

지난 1년간 인권단체들이, 아니 시민들 마음 속에 있던 말이 아닌가. 코로나신종감염바이러스(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사회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줬다. 코로나19의 위험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헤어 나오기 힘든 가난과 죽음의 굴레를 목격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묻혔다. 재난지원에서부터 백신까지 장애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성소수자. 여성 등 코로나에 대한 대체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으로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일은 꾸준히 이어졌다.

불평등 심화시킨 코로나의 고통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은 자살자가 20대 여성이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취업 불평등과 성폭력 등은 여성들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코로나 확산 이후 가장 많이 실업을 겪는 사람들이 그녀들이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도 수많은 성차별적 채용비리에서 드러났듯, 여성들은 남성보다 불리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해야 했다. 여성들이 대부분 작은 사업장에서 불안하게 일한다. 그 결과 임금격차는 여전하다. 남성의 64%만 받고 일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는 남성들에게 “여성들을 빼면 너희들의 일자리는 가능해”라며 유혹한다. 자본은 남성 일부에게 특권을 줌으로써 이윤과 노동자를 관리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퍼지는 여성혐오는 특권에 대한 욕망과 연결돼 있다.

▲지난 3월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3월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런 현실을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코로나와 여성노동자 인권’이라는 꼭지로 조사하고 있다. 3월에 조사한 학습지 노동자들은 필수 대면 노동을 하지만 안전을 위한 장치도 생계를 위한 지원도 기업과 정부로부터 받지 못했다. 소득감소 경험자가 81.67%, 감염 위험 경험자가 73.66%였다. 또 다른 특수고용노동자인 방과 후 교사는 월평균 수입 2만7000원, 전체 응답자 가운데 월평균 수입이 0원인 이의 비율 95.8%.이다. 이렇듯 비정규직 제도와 성 불평등은 얽혀있다. 많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이거나 특수고용노동자다.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도 박탈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를 풀고, 여성에게 몰리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사회가 책임지고 남성들이 하도록 하는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남성중심적 성차별 사회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고용구조만이 아니다. 작년 ‘코로나와 위험불평등’을 조사하면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나 집에서나 제대로 된 조치도 받지 못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장애인은 4%에 불과하지만 사망자는 21%다. 작년 12월에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에서 나온 자료다.

전체 사망자 556명 중 117명이 장애인인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인들이 대부분 시설에 갇혀있거나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나 방역조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확진되거나 격리가 필요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안조차 없는 상황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죽는 것이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자가격리를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함으로써, 다른 원인으로 인한 죽음의 위험도 높인다. 코로나 대책에서 ‘비장애인이 기본값’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이미 의료제도나 방역제도가 장애인을 고려 대상에 두지 않았기에 발생한 죽음이다.

특정한 사회적 소수집단의 죽음에는 여러 구조적 불평등이 원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죽음이 마치 그 개인이나 해당 집단이 취약해서 생긴 비극인 양 말한다. 그들이 취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취약하게 만들어서 발생한 죽음이다.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한 공정은 차별을 강화할 뿐

코로나가 드러낸 불평등은 생명과 건강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재택학습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조용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없다면 학습의 효과는 어떨까. 코로나로 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것도 어려웠던 이들에게, 가난과 주거불평등은 학습과 취업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학업성적과 취업시험 준비도 ‘노오력을 안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관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정문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장애인수용시설 신아원 '긴급탈시설' 이행 촉구 천막 농성"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장애여성공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관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정문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장애인수용시설 신아원 '긴급탈시설' 이행 촉구 천막 농성"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장애여성공감

 

이렇듯 ‘시험’만이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구조적 불평등을 도외시한 공정은 차별을 강화할 뿐이다. 작년 12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19~34세 청년 2011명을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졸자, 대졸이나 전문대학교 중퇴자, 대학 비진학자, 고등학교 비진학자일수록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었다. 비정규직이거나 특수고용노동자일수록 실업을 더 겪어야 했다.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된다. 권리를 박탈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책임을 ‘무능한 개인의 문제’로 왜곡한다. ‘네가 노력을 안 해서 비정규직’이라거나 ‘능력이 없으면 비정규직이지’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다. 1998년 비정규직 제도를 만든 이래 대기업의 부는 늘어갔고, 비정규직의 삶은 피폐해졌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대기업은 사람을 뽑지 않고 하청업체에 일을 맡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벌어졌고 그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격차도 심해졌다. 위자료에 보듯이 청년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여서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청년세대 전체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비정규직 제도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아닌가.

비정규직이 확산되기 전까지 학력이나 시험과 관계 없이 ‘정규직’으로 일했다. 정규직이란 안정된 일자리가 능력자의 자리가 된 것은 경제체제의 변화,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른 것이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는 모든 사람이 보장받을 노동에 대한 권리임에도 국가는 이를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으로 변질시켰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이하 너머서울) 관계자들이 5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주거권 보장과 기후위기 대응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이하 너머서울) 관계자들이 5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주거권 보장과 기후위기 대응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차별을 정당화하는 공정담론에서 벗어나야

대표적으로 최저임금법에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최저임금법 7조 예외조항은 어떠한가.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 평가에서 발생하는 차별임에도 ‘장애인=무능력’으로 왜곡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차별받아도 “장애인이어서 자격이 없거나 무능력한 거야”라며 자책하게 만들었다.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개인화해 심리적 패배감까지 줬다. 비장애인은 존재 자체가 ‘능력자’인가. 비장애인중심의 사회가 만든 비장애인의 특권에 대해 숨겼다.

결국 사람들이 말하는 ‘청년의 표상’조차 주류의 모습이란 뜻이다. 비장애인 청년, 비성소수자 청년, 남성 청년, 고학력 청년만이 청년인 셈이다. 차별받는 집단은 청년의 표상조차 얻기 힘들다. 그런데도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차별이고 불공정한 것으로 다룬다면 불평등의 구조는 더 공고해질 뿐이다. 성차별, 장애인차별 둥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장애인의무고용, 여성할당제, 지역인재 선발 등을 ‘불공정’이라고 비난한다면,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밖에 없다. 보편적 권리가 소수의 능력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되어 버렸다. 경쟁체제가 공정체제로 둔갑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권리를 줬다. 특권의식과 경쟁의식을 ‘공정’으로 포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불공정한 일인 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공채가 아닌 방식으로는 절대 정규직화가 될 수 없다며 비정규직 차별을 유지하라고 외쳤다. 그렇게 비정규직 차별을 정당화했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이가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이렇듯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공정은 차별을 정당화할 뿐이다. ‘차별을 용인하는 공정’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이다. 차별을 수용한 상태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특권을 누리기 위해 줄을 서는 차별주의에 편승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자. 비정규직 제도라는 장벽, 성차별과 장애인차별이라는 장벽을 부수는 불평등에 맞서는 싸움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니 코로나이후의 세계가 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

재난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려는 지금, 코로나이후 평등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차별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뜯기보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평등을 위해 어깨를 거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연재 순서>
① 우리는 왜 세대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가-김건수 (청년학생 시국선언 집행위원)
② 청년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시장의 불공정, 불평등-김태훈(한국지엠비정규직 청년노동자)
③ 능력주의는 장애인차별에 왜 무력한가-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청년장애인)
④ 학력주의에 기반 한 공정담론이 청년의 이해를 대변 못하는 이유-김정래 (투명가방끈)
⑤ 공정담론은 여성의 안전한 삶과 평등한 일자리에 대안이 되지 못 하는가-안지완 (인천대 페미니즘 학생모임 젠장)
⑥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⑦ 정상성을 기준으로 한 능력주의는 차별을 막기 어렵다-한빛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⑧ 시대의 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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