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6일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지난 5일 100일을 맞았다. 백신 접종 전 1.79%였던 치명률(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은 접종 이후 0.7%(6월4일 기준)로 급감했다. 백신 접종자 수(1차 기준)는 100일 만에 759만 명을 기록했으며, 상반기 내 1400만 명이 백신을 1차례 이상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언론의 보도행태가 달라졌다. 조선일보 5월27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우리도 백신 맞읍시다’였다. 이날은 65세 이상 고령층 백신 접종 시작일이었다. 같은 날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AZ 접종 기피 심한데 노마스크 당근 통할까’였다. 중앙일보는 전날 발표한 정부의 백신 접종 인센티브를 비판적으로 다루며 “60~74세가 접종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고 썼는데, 조선일보가 먼저 ‘태세 전환’에 나선 것. 연일 정부와 날을 세우며 보수층을 대변하는 조선의 1면이 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았다. 

박은호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은 지난 4일 ‘백신 접종이 정파 따질 일인가’라는 칼럼에서 “보수 일각에서 조선일보가 왜 이러나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백신을 접종받자고 말하면 문재인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백신은 과학이다”라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빨리 백신을 맞자고 제안 드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안전이 정파나 편 가르기에 휘둘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 백신 관련 보도에 대해선 “백신 접종이 본격 시작되기 전 안전성, 효능 문제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5월27일자 1면.
▲조선일보 5월27일자 1면.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 보도가 ‘검증’의 영역이었는지는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은 지난 1월29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효능이 노인층에게 8%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검증하면서 “(사실과 다른) 이런 내용을 가장 앞장서서 제기한 측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2월26일 백신 접종 시작 당일 지면에서 ‘독일선 아스트라 불신에 재고 쌓여…공무원·경찰이 맞는다’란 기사를 싣고 “국내 첫 접종 코로나 예방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백신과 사망 간 무분별한 인과관계 프레임으로 대중에게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신뢰도 하락을 유도했다. 한국경제는 3월3일 ‘고양서 AZ 접종 50대 심장발작·호흡곤란…끝내 사망’이란 기사를 냈고 이데일리는 3월8일 ‘“백신 맞고 4일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란 기사를 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접종 후 사망을 포함해 백신 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라고 밝혔지만 보도 행태는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5월9일 ‘태권도 前챔피언, AZ 맞은 후 다리 절단… “붓더니 다리 폭발”’이란 기사를 냈다. 그가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 세 개를 이미 절단한 사실은 드러내지 않은 채 백신 부작용 사례로 둔갑시킨 기사였다. 중앙일보는 3월16일 ‘백신 맞은 의사 “이까지 덜덜 떨려, 병동 전체 불바다 됐다”’라는 선정적 제목의 기사를 냈다. 

한국경제는 3월17일 ‘“당혹스럽다” 서울대 출신 의사들이 호소하는 AZ 부작용’이란 기사에서 자신을 의사라고 밝힌 익명의 누리꾼이 올린 경험담이라며 “백신을 맞고 발기가 되지 않아 성생활을 못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4월8일 ‘AZ백신 접종 사실상 재개…“국민 목숨 걸고 게임 하나”’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행태를 두고 “한국은 어떻게든 백신 못 맞게 하는데 인생 건 기자들이 많은 것 같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조선일보는 4월1일 ‘아스트라 맞은 20·30대 의료진 85%서 이상반응’이란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은 “아스트라 백신을 맞고 이상 반응이 발생하는 경우는 화이자 백신보다 7.2배 더 많은 것으로 계산됐다”고 보도했는데 막연한 공포를 일으키는 보도였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표본이 532명이었던 대한백신학회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보도했는데 이상 반응 대부분이 근육통과 발열 같은 경증이라는 점은 부각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백신 앞에서 어떤 과학자도 ‘100%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지만, 이 확률이 바이러스로 사망할 확률보다 훨씬 낮아서 백신 접종이 합리적”이라고 반복할 뿐이다. 이는 코로나를 포함한 모든 백신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가 언론을 거치면서 왜곡돼 불안감을 증폭시켜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계속되고, 주변 사람들의 백신 접종 후기가 늘어나면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여론이 형성됐다. 특히 잔여 백신에 한해 일반인 예약이 가능해지자 네이버와 카카오앱을 통해 예약에 나서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여론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일에는 미국에서 제공한 얀센 백신 90만 명분이 16시간 만에 예약 완료되는 순간도 목격했다. 이에 ‘백신 접종 후 사망’ 같은 보도로 되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판단을 언론 스스로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이 촉이 제일 빠르다. 조선일보에서 백신 맞자고 한 보도가 일종의 신호탄 같았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상한 것 같다”면서 “백신 수급 현황도 좋고, 바이든이 보낸 백신도 있고, 코로나 잔여 백신은 나도 매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팩트에 더해 인식까지 넘어간 걸 기자들도 알게 된 것 같다. 일종의 밴드왜건(편승)효과가 더해져 이제는 가만히 있는 게 마이너스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또한 “언론이 여론의 흐름을 읽은 것 같다. 여론에 맞춰서 방향을 다시 재정립한 것 같다”고 평가한 뒤 “언론은 그동안 백신 보도가 잘 되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저주하는 듯한 기사들”을 일일이 바로잡아온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변한 건 고마운데, 그것도 정파적 이익 때문인 것 같다. 계속해서 반대하다가는 후폭풍 맞을 것 같으니까 태세 전환한 것 아닌가. 지금의 태도가 4월부터는 있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변했다”고 평했다. 

이 교수는 애초 언론이 “정치적이면 안 되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다룬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며 “과거의 보도가 대안 있는 비평이었다면 지금 돌아서는 게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백신) 이상 반응이 늘면 또 태세 전환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