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 공동 기자회견 당시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기자 질문 차례가 오자 “여성 기자들은 손들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정적이 흐르자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가 없나요?”라고 되물었다. 우리 언론은 대통령의 ‘여성’ 기자 발언에 주목했지만 정작 왜 한국 기자들은 정적이 흐를 정도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는지, 즉 ‘질문력 논란’에 대해선 회피했다.

질문력 논란 배경엔 정부의 소통 의지, 언론 환경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여성 기자 발언 이전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한국 기자, 왼쪽에서 두 번째”라고 지목한 것과 바이든 대통령이 ABC와 CBS 기자 이름을 직접 불러 질문자로 지목한 것을 비교해보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자국 백악관 출입 기자 이름을 불렀지만, 집권 4년 차 문 대통령은 미국 순방 청와대 풀 기자단이 12명에 불과했는데도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평소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 사이 접촉이 빈번하고 소통이 활발했다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5월22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5월22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청와대

백악관과 청와대 대변인이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어떨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거의 매일 전쟁을 치르듯 기자들의 온갖 질문에 답한다. 백악관 정례브리핑은 보통 30분 이상 진행된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은 일방의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지난 4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 배포에 대한 모욕죄 처벌 관련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전단 살포자에 대해 모욕죄 처벌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한다는 내용으로 언론 관심이 집중됐다. 박 대변인은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이번 사안에 대한 처벌 의사 철회를 지시한 것”이라면서도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어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뒤따라오는 기자들 질문은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박 대변인 말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날 방송을 보면 박 대변인 얼굴을 비추고 메시지 발표 내용을 담으면서도, ‘신중히 판단하겠다’라는 박 대변인 답변의 진의를 묻는 기자들의 두 차례에 걸친 질문에 대한 답은 청와대 관계자 발언으로 인용 처리했다.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 질의응답은 “관계자 인용 보도” 처리한다는 지침 때문이다. 청와대 브리핑 질의응답조차 관계자 인용 처리가 관성인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통령 공식 기자회견 횟수가 적다는 비판과 별개로 청와대와 기자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브리핑 실명제’라도 해야 할 판이다.

문 대통령이 아는 기자 이름은 BBC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 기자뿐이라는 얘기도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다. 로라 비커 기자는 문 대통령과 인터뷰는 물론 대담까지 한 외신을 대표하는 기자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은 자리를 기준으로 ‘몇 번째’로 불렸지만 문 대통령은 로라 비커 기자를 지목할 때 “외신 쪽에도 우리 기회를 한번 드릴까요? 우리 BBC의 로라 비커 기자님”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기자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보통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100명이 넘는다. 과거 정부는 질문할 기자를 미리 선정해 연출 논란을 빚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회견 현장에서 바로 질문자를 지정한다. 사실상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몇 번째’라고 불리는 이유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그럼에도 청와대는 기자들과 접촉하는 자리를 ‘신년 기자회견’이라는 대형 이벤트로만 축소하는 등 소통 의지가 퇴색된 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밝힐 이슈와 정책 사안이 있을 때 수시로 브리핑을 열어 소통 폭을 넓혀야 한다.

물론 소통이 활발하지 못한 환경 탓만 할 수 없다. 기자 스스로도 평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거나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질문력’에 대해 기자들도 성찰해야 한다.

당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관한 대통령 의중이 국민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직접 국민에게 답변할 의무가 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도 사면이든 사면 불가든 문 대통령 입장을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국민을 대신한 질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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