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조차 없는, 주장만 남은 의견들이 미디어를 잠식하고 있는 시대다. 유튜브엔 선동가들이 넘쳐나고, 언론도 이런 시류에 편승해 정파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시기에 함께 읽고 싶은 두 편의 좋은 글이 있어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월간 신문과방송에 실린 남재일 경북대 교수의 ‘허술한 객관주의보다 진실 추구하는 의견이 백배 낫다’란 글과 안수찬 세명대 교수의 ‘의견 넘쳐나는 시대의 기자 임무는 사실 발굴과 검증 통한 진실 추구에 있어’란 글이다. 

의견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한쪽은 ‘충실한 의견’을, 또 한쪽은 의견보다는 기자의 전통적인 임무인 ‘사실 확인’을 강조하고 있어 언뜻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듯싶다. 글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남재일 교수는 “언론이 의견을 대하는 태도는 함께 있으면서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 즉 의견을 피력하면서 사실을 제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사실의 전달자’로서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언론이지만, 언론과 의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실제로 많은 지면이 의견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고, 언론은 “특정 사실을 선택하고 편집을 통해 강조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의견을 표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인용 보도는 ‘취재원의 말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기자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현시하는 객관주의 보도 관행’이지만, 우리 언론은 이 관행 속에서도 취재원 말을 자의적으로 선택해왔다. 그에 따르면, ‘받아쓰기 저널리즘’, ‘형식적 사실주의’란 비판에서 볼 수 있듯, 언론은 따옴표로 전달한 내용을 넘어선 사안 자체의 사실 검증은 소홀히 해왔다. 

남 교수는 “사실의 강조를 언론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적용해 온 언론의 직업적 태도는 이미 설득력을 다 잃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회는 더 풍부한 사실성과 더 설득력 있는 의견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우리 언론에 제안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지난 2019년 7월16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굽히지 않는 펜 제막식에서 조형물 제작을 맡은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16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굽히지 않는 펜 제막식에서 조형물 제작을 맡은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사실과 의견의 분리’라는 객관주의 관행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언론은 ‘사실의 권능’을 남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둘째, 정치적 입장을 투명하게 밝히고, 일관된 관점을 갖고 원칙에 근거한 편집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의견을 사실로 오인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논리적 절충의 기회를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입장을 투명하게 밝히자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보도 준칙을 어떤 형태의 뉴스든 그 본질을 ‘사실 전달을 방법론으로 하는 의견’으로 가정하고 점진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언론은 형식적 사실주의를 넘어, 사실 발굴을 통해 파묻힌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정치적 공론의 영역에선 규범적 중재자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안수찬 교수는 “(남 교수의 글이) 이미 ‘멸종의 위기’에 처한 사실 발굴과 검증의 역할을 한국 언론이 더 축소하거나 경시하는 근거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밝힌다. 그에 따르면, 한국 언론에는 의견을 우대하고 사실을 경시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 정권의 압력으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할 말을 하는’ 지사(志士)적 칼럼니스트가 기자들 사이에서 역할 모델로 존경받았고, 이러한 정서는 지금까지도 ‘초년 기자는 출입처 기사를 쓰고, 중견 기자는 칼럼을 쓴다’는 이상한 관행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 디지털 뉴스 환경이 ‘의견 표현의 경제성’을 극대화했는데, 한국 기자들은 “출입처 보도자료와 통신사 기사를 그대로 옮겨 쓰면서 각자의 해석과 생각을 덧입힌 ‘얄팍한 해설 기사’를 쓰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검증을 생략하고, 간편한 해석과 주장을 뉴스 차별화 요소로 쓰고 있다는 말이다.

안 교수는 “사회는 풍부한 사실성과 더 설득력 있는 의견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 언론 생태계에서 고갈에 이른 것은 설득력을 갖춘 의견이 아니라 의견을 뒷받침할 풍부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실과 의견의 명확한 구분 △기자는 ‘의견 제시’보단 ‘사실 발굴과 검증’의 역할에 집중할 것 △의견을 표현하는 기자의 자격에 대한 검토 등을 제안했다. 

해법은 다르지만, 두 글이 겨냥하고 있는 지점은 같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진실의 자리를 우리 언론이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척 허술한 기사를 써내는 게 아니라, 주장만 남은 의견의 범람에 언론도 함께 휩쓸리는 게 아니라, 언론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진실 추구’를 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의견은 검증된 진실을 근거로 하고, 그 진실을 검증하는 건 수많은 인력을 체계적 시스템 아래 투입하는 우리 언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두 학자의 글은, 얄팍한 의견에 진실의 자리를 내준 우리 언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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