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성적 수치심’과 ‘성희롱’이라는 표현을 각각 ‘성적 불쾌감’과 ‘성적 괴롭힘’으로 바꾸는 법률 개정안이 나왔다. 끔찍한 성범죄를 축소하거나 잘못된 통념에 기초한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 등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을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치심은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하다는’는 뜻으로 분노·공포·무력감을 경험하는 성희롱 피해자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표현인데 현행법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 등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권 의원은 이러한 용어가 성희롱 등 성비위와 관련된 잘못된 통념에서 비롯된 용어로 가해자나 조사자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권인숙 의원실
▲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권인숙 의원실

 

권 의원은 최근 대검찰청이 소관 훈령 및 예규에 적힌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해 지난달 25일 ‘대검찰청 공무직 등 근로자 관리지침’에서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개정·시행하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또한 ‘아동학대사건 처리 및 피해자지원에 관한 지침’과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지침’, ‘성폭력사건 처리 및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지침’에 도 ‘성적 수치심'도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는 과정에 있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식의 잘못된 통념을 강화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바로잡음으로써 성희롱 피해자들이 느낀 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어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도 이날 용어를 개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현행법상 통용되는 성범죄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해 ‘성희롱’을 ‘성적 괴롭힘’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 ‘양성평등기본법’, ‘여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사진=국민의힘
▲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사진=국민의힘

 

현행법에선 성희롱을 “‘직위를 이용’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희롱’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리는 것’으로 범죄 특성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미국·프랑스·독일은 동 성범죄를 각각 ‘sexual harassment, harcèlement sexuel, sexuelle Belästigung’, 즉 ‘성적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학대의 개념을 포함한다. 

이에 김 의원은 “성범죄는 영혼을 죽이는 범죄라고 할 만큼 피해가 심각하나 모호한 법률용어로 성범죄의 실체가 축소·경시되고, 이로 인해 2차·3차 가해까지 야기될 우려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 사회가 성범죄의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해당 법안을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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