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과 빚투

한국 증시의 2020년 시가총액 증가율은 45.6%로 G20 국가 가운데 중국(45.9%) 다음으로 높았다. 2020년 한 해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1000만 개 이상의 신규 주식거래 계좌를 개설했고, 2020년 전체 주식 거래 중 개인 비중이 20%로 2019년의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새롭게 주식투자에 뛰어든 신규 참가자의 28%는 20대가 차지했다. 26%인 30대까지 포함하면 20대와 30대가 절반 이상(54%)이다.

지난해 3월 이후 가계 금융투자액 중 주식 비중은 2016~2019년 평균 9.8%에서 지난해 38.2%로 28.4%P 급증했고 주식 비중은 4배 가까이 늘어났다. 2020년 저축은행과 여신전문회사 같은 비은행 가계대출 증가액 23.7조원 중 신용융자와 신용대출이 각각 10조원, 9조50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증가액의 82.7%를 차지했다. 특히 증권사의 주식 신용융자의 경우 2019년 -2.1%에서 2020년 108.7%로 급증했다.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로 청년들 중심으로 증권사 신용융자와 저축은행 신용대출로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했다.

▲ 가계 빚(신용)이 또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발표된 5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금융기관에 전세 자금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은행이 5월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765조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다.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생활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대출로 투자) 등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 연합뉴스
▲ 가계 빚(신용)이 또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발표된 5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금융기관에 전세 자금대출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은행이 5월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765조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다.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생활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대출로 투자) 등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 연합뉴스

또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시장이 요동치면서 국내 암호화폐 하루 거래대금은 25조원 수준을 기록, 국내 주식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아로와나토큰(ARW)은 상장 직후 50원에 거래를 시작했는데, 30분 만에 5만3800원까지 치솟았다. 단 30분 만에 10만%, 1000배가 상승한 것이다. 도지코인은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6개월간 2만5000% 상승했다가 하루에 100%씩 등락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렇게 코인 시장이 롤러코스터도 아닌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구 밖을 넘나들게 되면서 코인 시장에 신규 참가자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신규 가입자는 249만5289명에 이른다. 신규 가입자 중 20대는 81.6만명(32.7%), 30대는 76.8만명(30.8%)으로 10명 중 6명은 2030세대(MZ세대)다. 특히 3명 중 2명은 코인 투자를 시작한 지 불과 6개월이 안 된다.

영끌 끝은 부채와 불평등

▲ 주식 누적수익률 추이. 그래프 출처=자본시장연구원
▲ 주식 누적수익률 추이. 그래프 출처=자본시장연구원

그렇다면 이런 신규 개미투자자들은 얼마나 이득을 봤을까? 지난해 3월 이후(폭락장에서 바닥을 친 이후) 처음 증권시장에 뛰어든 신규 투자자 중 62%는 상승장에서도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투자자는 거래 비용(거래세, 수수료)을 제하면 누적 수익률이 –1.2%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본인 자금이 아니라 대출을 받아 투자했다면 이자까지 공제해야 하므로 손실은 더 늘어난다. 또한 코인 시장은 물론 주식시장도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 조짐을 보이면 바로 폭락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산시장은 가치가 새롭게 창출되는 것은 아닌 오직 재분배만 일어나는 완전한 제로섬 게임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주가가 천장을 뚫고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이 가격이 GDP(국내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산시장 규모가 경제성장에 맞춰 커진다면, 전체 이윤(잉여가치)에서 자산이 차지하는 이자 규모에 맞게 분배된다. 이 경우 대부분 자산시장 내부에서 재분배가 일어나 자산시장 내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그러나 자산시장이 실물경제와 괴리돼 실물경제는 악화 상태인데 자산시장만 커지고 있으면 어디선가 자산시장으로 돈(타인의 부채=나의 부)이 계속 더 들어왔다는 얘기다. 국민 부채로 내 배를 채운다.

양적완화는 통화량 증가를 의미하는데,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발행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이는 중앙은행의 부채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름 아닌 국민이 갚아야 하는 부채 증가를 말한다. 미국 등 기축통화국의 양적완화는 금융 시스템을 통해 이런 부채를 신흥국으로 전가할 수 있지만,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양적완화는 국내 가계의 부채 증가로 그대로 받아야 한다. 또한 중앙은행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채(MBS 등)를 화폐와 교환하기 때문에 은행에는 현금인 화폐가 공급되고 이를 바탕으로 신용창조(=부채창조)가 일어난다. 다시 시중에 통화가 공급되면서 가계부채가 증가한다.

자산시장은 이처럼 신용창조와 부채창조를 통해 확대된 유동성에 기반해 재분배가 일어나는 시장이다. 결국 이런 금융화 대가는 금융소득이 아니라 전대미문으로 팽창해 있는 엄청난 부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10년 동안에 2배 넘게 증가했는데, 2021년 1분기 가계신용 잔액(가계부채)은 1765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3.6조원(9.5%) 늘어났고 증가 폭으로는 역대 최대다. 특히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71.4조원(10.8%) 늘었다. 앞서와 같이 (빚내서) 주식, 코인 투자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생활자금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 가계신용 잔액. 그래프 출처=한국은행
▲ 가계신용 잔액. 그래프 출처=한국은행

불평등, 자본주의 구조 문제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면 돈 없고 자본 없는 사람들이 자산을 형성할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만 심화시켜 자산 불평등을 더 확산시킨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산 불평등은 더 확대했다.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도 대다수 국가의 자산시장은 회복을 넘어 폭발적 성장을 했다. 이 때문에 자산가들의 자산 가격은 치솟았고 빈부격차와 불평등 지수도 역사적 고점을 형성했다.

미국 정책연구소(IPS)는 미국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 651명의 재산이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간 1.1조 달러(1200조 원)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의 소득은 급감했다. 8000만명이 실업 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인데,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져 소득 하위계층의 임금소득이 대폭 삭감됐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2∼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 감소율은 17.1%로 다른 소득 분위 가구보다 3~12배까지 웃돌았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여성 가구주의 경우 소득 감소율은 23.1%에 이르렀다.

이런 소득 불평등은 자산가격 상승으로 자산 불평등으로도 이어졌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가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로 높아졌고, 순자산 상위 10% 가구의 점유율도 41.8%에서 43.7%로 높아졌다. 순자산 기준 5분위 가구(상위 20%)는 1분위 가구(하위 20%)의 37배나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과 소득 불평등은 개인별 투자 기회의 불공정이나 세대 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산업 부문에서는 과잉생산과 과잉경쟁으로 이윤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고 임금은 오르지 않고 소득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과잉유동성으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역사적으로 치솟아 있고 자산 불평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OECD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 현황 및 세대 간 사회이동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의 소득 하위 10%에 속한 가구가 평균 소득 가구로 이동하는데 다섯 세대가 걸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 세대가 30년이라고 한다면, 빈곤 가구가 중간 소득 가구가 되는데 최소 15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 1인당 생애주기적자. 그래프 출처=통계청(2017년 국민이전 계정(2020.12))
▲ 1인당 생애주기적자. 그래프 출처=통계청(2017년 국민이전 계정(2020.12))

평균 가구로 이동했다고 빈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젊어서 번 노동소득만으로는 평생 ‘적자 인생’을 면하기 어렵다. 통계청 발표(2017년 국민이전계정)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생애주기상 28세부터 흑자로 돌아서 45세 때 소득 흑자 정점을 찍고 59세부터는 적자다. 28세 이전은 부모로부터 받는 소득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임금소득이나 자영업소득 등 젊었을 때 번 노동소득만으로는 노년을 빈곤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압도적 1위를 못 벗어나는 이유다.

평생 일해도 100세 시대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적자로 살아야 하고 결국 적자로 인생을 마감한다. 심지어 이건 평균적인 이야기다. 순자산(자산-부채) 기준 상위 20%의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63%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가구와 개인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도 적절한 지원을 하지 못하고 본인도 평생 빚에 허덕이다 빚으로 생을 마감한다.

제2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그런데, 청년들이 영끌까지 해서 코인에 몰두하고 동학개미운동을 벌이는 것이 빈곤과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인 것을 알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위기가 오는 시기, 시장이 혼란스럽고 요동칠 때를 기회라고 인식한다. 노동소득만으로는 어차피 평생 빚을 지고 살아야 하고 부자도 아닌 중간소득 계층으로 오르는 데만 150년이나 걸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임금자산 축적과는 달리 롤러코스터를 탄 금융시장을 자산축적의 유일한 기회로 보고 나만 못하면 이러다가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금융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다른 한편, 영끌과 빚투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극복할 마땅한 구조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시장은 통제되지 않았고 월가는 양적완화와 금융화를 앞세워 오히려 더 승승장구했다.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 ‘포용성장론’ 등 자본주의적 대안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조차 전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생산성과 성장률은 더 떨어졌고 디지털 전환으로 직접적으로 일자리가 줄 거나 산업전환을 유발해 구조조정으로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 대신 플랫폼이나 더 유연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어 노동조건은 더 불안정해졌고 임금은 줄어들었다.

▲ 2011년 10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시위 사진. 사진=flickr
▲ 2011년 10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시위 사진. 사진=flickr

결국 영끌과 빚투, 동학개미운동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구조적, 대안적 대응이 아니라 이에 순응한 자본주의적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들의 반발은 표면적으로는 임금자산 축적의 현재 조건에 대한 불공정을 문제 삼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평생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 처지를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반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행위가 영끌과 빚투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금융시장의 투기적 조건에서 영끌과 빚투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을지 또는 자산을 모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코인을 포함한 모든 금융시장은 미래 이윤의 수취에 기반해 있고, 노동자와 청년이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이윤의 기초가 자신의 노동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수탈’, 셀프 수탈과 같다(임금 외에 추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임금의 일부로 주어지는 퇴직연금, 우리사주, 자사주도 마찬가지다). 운 좋은 몇몇은 이득을 보겠지만 대부분은 투자한 만큼의 이득을 보기도 어렵고 오히려 손실을 보고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지게 된다. 경기 상황이 악화하거나 유동성이 축소돼 거품이 꺼지면 더 큰 손실과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경제 위기가 반복되고 금융시장이 요동칠수록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더 커지는 이유다.

그러므로 기성세대, 기득권, 자산계층에 영끌과 빚투로 대응하며 각자도생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이런 구조적 모순을 야기한 책임을 묻고 이를 넘어설 구조적 대안 요구해야 한다. 비록 한계가 많았지만,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졌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에서 오히려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불평등 체제를 종식하기 위해 금융자본을 통제하고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제 제2의 점령운동이 시작돼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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