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 자립형 사립학교. 정원의 30%가량이 서울대를 가는 학교. 하나금융그룹이 사학재단을 통해 설립했다. 한 해 등록금만 1600만 원 수준. 전교 1등도 입학하기 어렵다는 하나고에서 2014년 편입학 당시 일반전형 합격자는 단 한 명, 동아일보 사주의 딸이었다고 한다. 당시 재단 이사장은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기로 2012년부터 고려중앙학원 이사를 맡았다.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이다. 

MBC ‘PD수첩’이 지난 25일 방송에서 드러낸 입시 비리 정황은 매우 구체적이다. 일반전형 지원자 가운데 최종면접에 참여한 학생이 3명, 평가위원이었던 하나고 교사가 2명이었다. 면접점수는 수기로 작성한 뒤 엑셀 파일로 옮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면접점수가 바뀌었다. 학교 측은 잘못 적힌 면접점수를 변환표대로 바꿨다고 밝혔는데, 12점이었던 동아일보 사주 딸은 14점으로, 12점이었던 다른 학생 2명은 13점으로 바뀌었다. 소수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에서, ‘1점’을 얻었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이 하나고 편입학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하나고의 새 이사장으로 김각영씨가 등장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해 32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인사였다. 그가 취임하고 한 달여 만에, 서울서부지검은 하나고 관계자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점수를 잘못 입력한 건 맞지만 합격 여부에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9년 10월, 전교조는 서울중앙지검에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김승유 전 이사장을 고발했다. 

그리고 지난해 ‘결정적’ 증거가 등장했다. 평가위원의 필적이었다. 평가위원이 서류 평가표와 면접 평가표를 썼는데 서로 필적이 다르다는 것. 필적감정사도 “동일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면접관은 2명인데, 필체는 4명이라는 것. 제3의 필적은 어디에서 왔을까. 평가위원 당사자는 PD수첩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 사건은 서울서부지검으로 이송되었고, 현재 검찰은 관련 서류를 확보하고 수상한 필적 관련 조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그런데 수사를 담당한 서부지검 형사5부 결재 라인에, 2016년 하나고 관계자들을 불기소 처분한 검사가 있다. 현재 서부지검 차장 검사다. 수사 검사가 ‘서부지검 NO.2’ 선배 검사에게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와 문서위조 등 혐의에 따른 ‘기소 의견’으로 결재를 받을 수 있을까. 더욱이 하나고 편입학 비리 의혹의 공소시효는 오는 8월까지다. 시간마저 부족하다. 여기에 더해 주류언론은 마치 짠 것처럼 이 사안에 무관심하다. 

PD수첩 진행자 서정문 MBC PD는 유튜브채널 ‘PD수첩 코멘터리’에서 “이번 아이템에 대해 받아 써주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소위 메이저 언론사는 거의 안 받았다”고 전하면서 “하나고 입시 비리 의혹을 불기소 처분했던 검사도, 혹은 그 (불기소) 과정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며 공수처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사안을 취재한 조철영 PD는 “특권층의 특혜에 대한 수사 혹은 단죄,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흘러온 시간이 길다보니 (사안에 대한) 무력감이 굉장히 세다”고 전했다.

박미소 PD는 “검찰이 1년 동안 시간만 끌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 1년은 굉장히 중요했다”며 안타까움을 전한 뒤 “필체는 명확한데, 그 이후에 필체를 조작해서 정말 부정을 저질렀느냐, 어떤 세력이 관여됐나, 그 위까지 과연 (수사가)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하나고를 졸업한 동아일보 사주 딸 김새미(가명)는 지난해 공채로 동아일보 기자가 됐다. 동아일보는 김새미 채용에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동아일보 인턴기자를 형사고소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지난 25일 방송된 MBC 'PD수첩'의 한 장면.

김새미(가명) 외할아버지는 故 이한동 국무총리다. 이모부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이다. 숙모(작은어머니)는 삼성그룹 故 이건희 회장의 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다.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는 동아일보 일가. 이 사건은 거대한 권력이 줄기처럼 얽혀 있다. 드라마가 아니다. 현실이다. ‘비밀의 숲’에서 정의를 위해 조직과 맞섰던 서부지검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 같은 이가 등장해야 하는 국면이다. 황시목 검사를 현실로 소환하고자 한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PD수첩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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