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고 있다. 노인과 가난한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아 죽고, 동물도 각종 재해에 대량 폐사되거나 멸종한다. 탄소 배출 비율이 낮은 가난한 나라 주민임에도 이례적인 태풍·수해에 수천 명씩 죽는다. 땅이 물에 잠기거나, 부족한 자원 때문에 분쟁이 격화돼 난민도 생겼다. 필리핀, 수단, 시리아 등이 예다.

한국도 매년 징후가 나타난다. 지난해 54일의 긴 장마는 최근 사례다. 홍수로 총 4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8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산사태, 농경지 침수, 가축 52여만 마리 폐사까지 합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크다. 앞으로 폭염, 혹한, 장마, 가뭄, 산불, 해양 산성화 등 이상 현상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정확한 예측도 어렵다. 

‘탄소 예산’이 바닥나기까진 6년하고 218일(28일 기준) 남았다. 탄소 예산은 2050년 ‘탄소배출 0’을 이루기 위해 인류에게 배출이 허용된 탄소 총량이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1.5℃ 넘게 오르면 위기는 돌이킬 수 없다. 2018년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총회가 전원 합의한 결론이다. 이마저 보수적인 셈법이다. 영구 동토층의 메탄 분출 등 불확실한 메커니즘의 영향은 배제했고 목표 달성 확률도 66% 수준으로 잡았다. 확률을 80~90%대로 올린다면 탄소 예산은 더 줄어든다. 이 경우 예산은 5년 안에 고갈된다. 

▲5월17일 단식에 돌입한 이은호 위원장 기자회견 당시 모습. 사진=녹색당
▲5월17일 단식에 돌입한 이은호 위원장 기자회견 당시 모습. 사진=녹색당

한국 정부 ‘조삼모사’ 탄소 저감 계획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현재 12일째 단식 중인 이은호(31)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은 절박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도 위기를 막을 수 없는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어서다. 석탄화력발전소 증설이 가장 큰 이유다. 개수만 10개소다. 베트남 붕앙-2호기, 인도네시아 자와9·10호기, 국내 7기(강릉 2개, 고성 2개, 삼척 2개, 서천 1개) 등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단식 중인 이 위원장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석탄발전소 철회 없는 탈석탄 선언은 녹색 분칠”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화석연료는 기후위기의 주범이다. 1800년대 후반 산업화 시기부터 땅속에 묻힌 석유·석탄을 대량으로 태워오며 지금의 이산화탄소량이 누적됐다. 100여년 전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현재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더해지면 수십 년 후엔 또 다른 위기가 들이닥치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 위원장이 단식에 돌입한 이유다. 

그가 생각하는 기후 문제는 위기보다 재앙에 가깝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석탄은 없다”며 ‘생태학살’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는 “현재 돌아가는 화력발전소 58기를 꺼도 모자랄 판에 10기를 새로 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10기 전면 백지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이은호 위원장이 DDP 앞 단식농성장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26일 이은호 위원장이 DDP 앞 단식농성장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 지난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은호 위원장. 그레타 툰베리 책을 꺼내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지난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은호 위원장. 그레타 툰베리 책을 꺼내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 위원장은 정부의 이율배반을 베트남 붕앙 2기를 들어 설명했다. “붕앙2 석탄화력 사업은 베트남 북동부 하띤성에 600㎿(메가와트)급 2기의 화력발전소를 짓는 거다. 연간 660만톤 탄소 배출이 예상된다. 정부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1229만톤 감축 목표를 세웠다. 붕앙 2기가 2년 가동하면 상쇄된다. 발전소 수명은 30~40년이 될 거다. 한국의 7기는 합쳐서 (온실가스가) 연간 5100만톤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게 탄소 중립인가?”

단식 농성장인 DDP는 오는 30~31일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P4G(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최장소다. 세계 각국 정상, 국제기구 정상, 기업 대표, 학계 및 시민단체 인사 등이 참석 대상이다. 이 위원장은 “정부는 P4G 홍보 영상에서 국민들에게 물 아껴 쓰고, 쓰레기 줍고, 자전거 타라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정작 수백, 수천 배 되는 탄소배출 사업들은 차근차근 추진한다”며 “기만적인 P4G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는 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탄소 예산'이 동나기까지 남은 시간 예측 시계. 5월28일 기준 6년 218일 남았다. IPCC 2018년 '1.5도 특별보고서'가 정한 2050년 '탄소배출 0' 목표에 따른 것이다. 사진=climateclock 사이트 갈무리.
▲'탄소 예산'이 동나기까지 남은 시간 예측 시계. 5월28일 기준 6년 218일 남았다. IPCC 2018년 '1.5도 특별보고서'가 정한 2050년 '탄소배출 0' 목표에 따른 것이다. 사진=climateclock 사이트 갈무리.

 

‘지금 당장 행동해라’ 아시아 청년들 규합 중 

이 위원장의 관심사는 개인이 아닌 구조다. 그는 “‘지구야 아프지마’ ‘내가 변할게’ 등의 문구를 싫어한다”며 “작은 실천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만으로 지구를 살릴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전면적으로 논의할 의제엔 소극적으로 임하며, 변화의 책임을 시민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프레임이라고도 했다. 

언론은 기후위기를 잘 조명하고 있을까. 이 위원장은 “북극곰이 위태롭다거나 빙하가 녹고, 섬나라가 침수됐다는,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보도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며 “이 경우 시민들은 ‘텀블러 쓴다고 북극곰이 안 죽겠어?’ ‘위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네’ 등의 무력감을 느낀다. 이들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탄소 배출의 진실과 위기 현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타겟(책임 소재)을 지적해주면 좋겠다”며 언론에 당부했다. “시민들이 어디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문제 해결까지 제시하는 솔루션 저널리즘도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늑장 대응에 기후운동 진영의 직접 행동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경기도 분당의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 앞 조형물이 녹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뒤덮이는 시위가 벌어졌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2명의 기습 시위로, 이 위원장이 둘 중 한 명이었다. 두산중공업은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붕앙 2기 건설에 참여한다. 재물손괴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정식 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3월15일 멸종저항 서울 활동가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를 점거한 당시 모습. 사진=멸종저항 서울 SNS
▲3월15일 멸종저항 서울 활동가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를 점거한 당시 모습. 사진=멸종저항 서울 SNS
▲지난해 7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2050 LEDS(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단상 위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사진=청년기후긴급행동 SNS
▲지난해 7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2050 LEDS(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단상 위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사진=청년기후긴급행동 SNS

 

기후 불복종 운동을 천명한 ‘멸종저항 서울’ 활동가들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로 진입해 1층 현관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1층 지붕 위로 올라가 ‘기후파괴당 민주당, 가덕도 신공항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펼쳤다. 이들은 곧장 현장에서 체포돼 경찰에 연행됐다. 2년 전부터 영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멸종저항 운동은 지구의 생태적 몰락 등을 막기 위해 은행 등 금융기관을 봉쇄하고, 공항에서 비행기의 이륙을 몸으로 막는 등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운동이 시작됐다. 

‘기후정의’란 가치 아래 아시아 청년 활동가들도 모이고 있다. 당장 한국의 베트남·인도네시아 화력발전소 건설에만 3개 국가가 관여한데다 피해는 아시아권역을 너머 지구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지난 24일 DDP 앞에서 개최한 “국내외 석탄발전소 10기 철회요구” 기자회견에는 인도네시아 기후단체(Extinction Rebellion Youth Indonesia, 350.org Indonesia, Pena masyarakat), 베트남 기후단체(CHANGE), 베트남 기후활동가(Hang Tran Thi Thanh, Dzung Hoang) 등이 연대했다. 이들은 ‘아시아 기후 운동’의 방향성을 모색 중이다. 

녹색당은 매일 10시 DDP 입구 인근에 농성장을 설치해 저녁 8시 거둔다. 이 위원장은 쇠한 기력에도 기후위기를 어떻게 공론화해나갈지 다른 활동가들과 기획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정부부처는 숫자와 통계를 좋아하지 않느냐. 근데 기후위기와 관련해선 관계부처가 위기 대응에 얼만큼의 비용이 드는지 제대로 분석해놓은 게 없다”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편지를 보낼 것이다. 앞으로 국민이 입을 피해, 수산업·농업 등이 입을 피해, 난민·안보 문제에 드는 비용, 국민 복지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경제적 분석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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