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가 없나요”라고 한 발언을 두고 상반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상급 회담의 질의응답 시간임에도 질문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며 한국 기자를 탓하는 반응과 굳이 대통령이 ‘여성 기자’를 콕 짚은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

첫 질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ABC 기자를 지목해 이뤄졌다. 다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바라본 자리를 기준으로 “우리 한국 기자, 왼쪽에서 두 번째”라고 지목해 연합뉴스TV 기자가 질문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CBS 기자를 지목한 뒤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논란이 된 발언은 한국 기자의 질의 시간이 돌아오면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여성 기자들은 손들지 않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앞서 한국 남성 기자와 미국 여성 기자 2명이 질문하자 한국 여성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 발언에 6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 문 대통령은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들이 없나요”라고 되물었다. 이후에도 10초 넘게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코리아헤럴드 ‘여성 기자’가 백신과 관련해 질문했다.

정상급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 하나가 바로 뉴스가 될 수 있고, 전 세계적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 언론 기자의 질문 기회가 왔음에도 정적이 흘렀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공동기자회견 후 정적이 흐른 상황을 논평한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주목을 받은 것은 <외신기자 당혹케한 文질문 “우리 여기자는 왜 손 안드나요”>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보도였다.

중앙일보는 기자회견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하면서 여성 기자를 찾았던 문 대통령의 발언을 다룬 AFP통신 기자와 CBS 기자의 트윗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문 대통령 말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미국에서는 공개 석상에서 특정 성별을 언급하는 게 매우 낯설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성을 우대하는 것도 대놓고 하면 성차별주의(sexism)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에서 여성 기자 두명이 질문한 것을 보고 한국 여성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질문할 기자를 미리 정하지 않은 가운데 “문 대통령이 두 번째 질문 기회를 여성에게 주는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하지만 즉흥적으로 나온 문 대통령 발언은 자칫하면 한국 여성, 특히 한국 여성 기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소극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기자회견을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심어줄 위험이 있다”고 논평했다.

관련 보도는 포털에서 많이 읽은 기사 1위에 오르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댓글 반응은 극과극이다. 정적이 흘렀던 상황은 한국 기자들이 질문 준비를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며 기자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중앙일보 논평대로 특정 성을 굳이 언급해 질문 기회를 준 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질문을 준비해온 한국 ‘여성 기자’가 없어 정적이 흘렀던 건데 대통령 발언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성별로 나눠 기자를 지칭한 건 의도를 떠나 성차별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실수’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 한미정상 공동기자회견 모습.
▲ 한미정상 공동기자회견 모습.

이에 대해 한 일간지 한 기자는 “공동기자회견에 들어간 기자들이 자신들끼리 질문 내용과 질문할 기자들을 선정했는지 등 정보와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질문 준비가 안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워낙 중요한 행사라서 청와대 풀기자단 안에서 질문할 기자와 내용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며 “청와대는 기존에도 사전에 지정해놓고 질문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문 대통령이 큰 의도 없이 두번째 질문자로 여성 기자를 지목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기자회견에 들어간 청와대 풀기자단이 손을 들어 질문할 기자를 정해놨는데 이런 사정을 모르는 문 대통령이 ‘여성 기자’를 지목하면서 벌어진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매체는 코리아헤럴드, 머니투데이, 문화일보, 서울경제, 뉴스1, 연합뉴스TV 등 6개 매체였고, 이중 여성 기자는 2명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 동행한 청와대 풀기자단은 12명이었고, 여성 기자는 3명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기자는 “기자회견이라는 현장에서 기자는 취재원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중이 필요로 하는 질문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시 정적으로 인해 한국 기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겼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좋은 질문을 하지 못한 현장기자에게 있지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공동기자회견 일정은 미리 공지된 일정이었고, 풀기자단 선정 역시 진작 이뤄진 일이었기 때문에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은 모두 예비질문들을 준비했을 것”이라며 “기사 마감과 시차, 체력 고갈로 인해 질문이 생각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질문이 없었다면 준비한 질문이 이미 다 나왔기 때문에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성 기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기자의 준비성’과 ‘체력관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기자의 소속과 이름을 부르고 지목한 반면, 문 대통령이 처음엔 자리를 기준으로 기자를 지목하고 다음 ‘여성 기자’를 지목한 것도 대조된다. 청와대 출입 기자에 따르면 백악관 출입기자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정석에 앉고 대통령과 질의 기회가 많은 만큼 대통령이 기자 이름을 부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경우 질의응답 기회가 적고 기자회견이 열리더라도 백 명이 넘는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질문자를 정해놓지 않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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