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시장주의자도 사민주의자도 해답이 아니라면? 
[슬기로운 서평생활] 시장주의자도 사민주의자도 해답이 아니라면? 
[슬기로운 서평생활] 지식경제의 도래/ 로베르토 M.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다른백년 펴냄

불평등이 전 세계의 화두다. 기본소득이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도 심해지는 양극화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격차는 교육·기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복지체제로는 이러한 차이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양극화를 해소할 새로운 상상들이 조명받고 있다. 

토머스 스킷모어는 개인에게 재산의 종신보유권만 인정하고, 사망하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해 이를 후 세대에게 배정하자는 ‘사회적 상속이론’을 주장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도 개인적 상속제를 부인했다. 

이런 맥락에서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도 경제적 진보가 허용하는 한에서 사회상속제를 주장했다. 개인의 재산이 가족 단위로 상속(가족상속)되는데 이는 불평등이 되물림되는 원인이므로 대학입학이나 주택구입 등 인생의 주요 시점에 사회상속계좌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웅거는 브라질 유명한 정치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29살에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된 68세대 학자이면서 브라질에서 두 차례 장기계획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현실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나중엔 지지를 철회했지만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웅거의 많은 저서는 정치권에서 미시적인 제도의 찬반을 겨루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사회질서를 보여준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가 ‘민주주의를 넘어’, ‘지식경제의 도래’ 등 웅거의 저서 5권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현재 ‘미래의 종교’도 번역 중이다. 이 교수는 “이제 웅거의 사상을 국내에 충분히 소개했으니 이후 세대에서 이를 구체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지식경제의 도래/ 로베르토 M.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다른백년 펴냄
▲ 지식경제의 도래/ 로베르토 M.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다른백년 펴냄

 

웅거가 주장하는 사회상속세는 두 부분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개인이 사망했을 때 그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과 둘째, 그렇게 환원한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지원하는 과정이다.

이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지금의 상속세도 세대 간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의도에서 생겼는데 원리상으로 사회상속세라고 봐도 좋다”며 “개인에게 필요한 금액 이상을 상속세로 거두고, 이를 가난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두 과정의 연결고리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물론 상속세를 충분히 걷는 게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자산가들에게 가족상속을 할 때 필요한 부분을 빼놓고 기부하라면 저항이 클 것”이라며 “핵심은 가난한 사람도 사회생활을 할 때 어느정도 출발선을 만들어주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는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다. 대선을 앞두고 정기적으로 주는 기본소득, 한번에 목돈을 주는 기초(기본)자산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이 교수는 “웅거의 아이디어에선 양자택일이기보다는 사회 진입자들에게 사용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보고 큰 틀에서 논의한다”고 했다. 기본소득이나 기초자산제를 주장하는 이들도 여러 이유에서 해당 제도를 주장하고, 그 재원마련에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웅거가 강조한 부분은 가난하더라도 개인에게 필요한 재원을 사회가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웅거는 당연히 시장이 공정한 질서를 담보할 것이라는 시장주의자들을 비판하지만 사회민주주의자들도 비판했다. 사민주의는 이윤을 누가, 어떻게 올리느냐에는 큰 관심이 없고 이윤이 발생하면 조세를 걷어서 대상자들에게 복지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역시 보수적이고 표면적인 정의실현 방식이라고 본 것이다. 웅거는 취약계층도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지분공유자로 만드는 경제체제를 주장했다. 

국내에선 케인즈 정책이 곧 진보경제학으로 이해되지만 ‘국면적인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모두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역량이 고갈된 채 지원만 받도록 해선 안 된다는 게 웅거의 생각”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노동개혁에 대한 웅거의 생각도 기존의 좌·우파의 관점과 다르다. 보통 노동개혁하면 단체행동권과 등 노동법상 노동권 강화를 떠올린다. 이 교수는 “노동자는 항상 노동자라는 관념이 깔려있다”며 “노동자가 계속 노동자로 있는 한, 일자리에서 물러나면 삶이 끝난다. 기업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이런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현재 갈등 양상을 요약했다. 노동자가 정해진 임금으로만 수익을 얻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웅거는 높은 최저임금을 중요시하는데 경제성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적 요구라서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을 충분하게 주자는 주장은 국내에서도 익숙하고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추진 중이다. 

또한 “동일직종이면 비슷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연대임금제’를 말한다”고 했다.  연대임금제의 경우 일부 유럽에선 시도하지만 한국은 같은 일을 해도 기업별로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논의 자체가 나오기 어려운 분위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에 대해서는 “기업에게 모두 정규직을 뽑도록 할 순 없으니 비정규직을 용인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비슷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런 내용 역시 낯설지 않은 주장이다. 

이 교수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이윤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가 정해진 임금만 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올린 이윤의 일정 지분을 공유받는 개념이다. 영업이익이 많을 때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받거나 임원들이 스톡옵션을 받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보다 조금 더 공식적인 제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 교수는 “노동자가 평생 노동자로만 사는 게 어쩌면 노동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며 “노동자에게도 기업의 지분을 공유하고 일정 정도에 이르면 자립하기도 해야 한다는 게 웅거의 생각”이라고 했다. 

노동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도 지식경제의 확산 필요하다. 지식경제란 ‘과학과 기술 집약적 생산과 서비스’를 말한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자동차를 설계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가 지식경제다. 웅거는 지식경제가 섬처럼 고립돼 있다고 지적하는데 자동차연구소는 생산라인 노동자들과 철저하게 분리돼있다. 산업사회 대량생산체제에선 이러했다. 

그동안 노동은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노동의 결과물이 노동자와 무관한 이 상태인 ‘노동소외’를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인 것처럼 지적한다. 노동소외 역시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스스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을 무한정 반복한다면 어떨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분리된 이 상황을 허물어야 한다고 봤다. 관리자는 지시만 하고 생산라인의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부품을 조립하는 게 아니라 소통과 피드백 등을 통해 둘의 간격을 줄여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식경제가 경제전반으로 확산하면 다수가 각각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나 생산성 둔화와 같은 문제도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마르크스를 포함해 헤겔, 베버, 하버마스 등 기존 학자들은 인간의 노동을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우린 노동을 통해 의미를 찾기도 하고 사회적 존재가 된다. 지식경제의 확산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올리면 노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설계할 상상력, 혁신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요된 노동을 하며 착취를 당하는 노동은 없애고 극복해야 하지만 노동자체에서 해방된 삶은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경제질서의 변화는 정치변화와 연결돼 있다. 현재 점진적으로 보이는 변화가 급격하게 실현되려면 대중의 참여가 필요하고,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개혁이나 사회상속과 같은 제도로 만들 수 있다. 웅거는 형식·절차적으로만 민주적으로 보이는 제도들을 녹이고 다수의 적극적 참여를 유지하는 ‘고에너지 민주주의’라는 개념도 창안했다. 

▲ 민주주의를 넘어/ 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
▲ 민주주의를 넘어/ 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

 

이 교수는 웅거의 사상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소개받았다고 했다. 

곽 전 교육감은 이 교수가 번역한 웅거의 저서 ‘민주주의를 넘어’ 추천사에 “촛불혁명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실질적 확대와 심화가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진보진영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비전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웅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대해 급진민주적 재편비전과 핵심제도, 이행전략을 큰 붓으로 그려낸다”고 썼다. 

곽 전 교육감의 추천사처럼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웅거의 급진민주주의 프로젝트가 강렬한 영감과 자극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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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현 2021-07-16 16:08:29
이런 논의는 좋은 의견이지만, 현실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노동자도 자본을 소유하는 존재로 변화시켜는 제도를 언급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