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이 5·18 때 항명은커녕 사표라도 던져본 검사가 있었냐며 그러면서 검사라는 이름을 감당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을 독재에 항거한 역사라고 평가한 언론 인터뷰 내용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임 연구관은 “한심하고 개탄스럽다”고도 했다.

이밖에 윤 전 총장이 5·18 정신을 언급한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은 5·18은 전유물이 아니라며 문재인 정부 비판의 도구로 사용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정희, 전두환과 그 후예들이 반성과 단죄없이 계승한다고 하면 5·18 영령들이 통탄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임은정 연구관은 1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신이 몇 주 전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녀온 경험을 들어 “굴곡진 현대사 굽이굽이를 펼쳐 읽다 보면 씁쓸할 때가 많다”며 “4·3도 그러하고 5·18도 그러하고 이웃 경찰에는 위법한 명령을 명백히 거부한 사례가 없지 않고 심지어 파면되고, 고문까지 당하는데, 검사들은 항명은커녕 사표 던진 사례도 잘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러고도 검사라는 이름을 감당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임 연구관은 “한심하고 개탄스럽기 그지없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관은 현충원에서 “5·18 경찰 영웅인 고 안병하 치안감님이 계시다”라며 “전남경찰국장으로 신군부의 지시를 거부하셨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쫓겨났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관은 “공무원은 상사나 조직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함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한 공직자의 사표라, 그 앞에 한동안 묵념을 하고 왔다”고 전했다. 그는 “안병하 치안감님 앞에, 또한,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5·18 영령들 앞에 한참을 묵념하며 ‘나라면, 그때 어떤 선택을 하였을지’, 그리고, ‘지금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지’를 곱씹으며 다짐하고 돌아왔다”고 반성했다.

5·18 정신 계승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윤석열 전 총장이다. 그는 지난 16일 “5·18은 독재에 대한 저항이자 현재도 살아있는 역사”라는 메시지를 머니투데이 조선일보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5·18 정신을 배신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이 지난 3월29일 법무부·대검, 합동감찰 첫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에 도착, 법무부로 들어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이 지난 3월29일 법무부·대검, 합동감찰 첫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에 도착, 법무부로 들어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5·18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만들고자 했던 세상, 시민들이 꿈꿨던 세상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며 “앞에서는 5·18정신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뒤로는 내로남불 삶을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5·18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신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옛날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 자신들의 반민주적 행태와 독재가 용인될 수는 없다”며 “5·18은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와 공화의 헌법가치를 지키지 못한 문재인 정권은 5·18의 영령들 앞에 반성해야 한다”며 “평생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에 취해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킨 점에 대해 참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 역사의 소중한 교훈들은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위대한 국민의 몫”이라고도 했다.

이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다. 정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5·18은 국민 누구나 계승해야 할 소중한 민주주의 정신”이라면서도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과 그 후예들이 반성과 단죄없이 계승한다고 하면 하늘에 계신 5·18 영령들이 통탄할 일”이라고 두 당 인사들을 비판했다. 정 의원은 “얼굴에 분칠한다고 그 얼굴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분식회계가 불법이듯이 속다르고 겉다른 분식정치도 국민정서상 불법이고 역사적 죄악”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총장을 두고도 정 의원은 “윤석열씨, 비겁하게 숨어서 메세지나 날리지 말고 당당하게 링에 올라와라”라며 “굳이 나서겠다면 상대해줄 사람 많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4일 총장직에서 사퇴하면서 직원들에 격려의 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4일 총장직에서 사퇴하면서 직원들에 격려의 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당의 김남국 의원도 페이스북 반박 글을 통해 지난해 12월 ‘윤석열 검찰’이 수십 년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폄훼한 지만원씨를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김 의원은 “당시 자유한국당이 개최한 국회 공청회에서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고 말하며 사자 명예훼손을 한 혐의에 대한 것”이라며 “지씨의 발언은 5·18의 역사적 사실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왜곡했다”고 썼다. 김 의원은 “수차례 처벌을 받았는데도, 반성없이 수십년 동안 계속해서 역사를 왜곡해 온 지씨에 사법적 단죄 대신 윤석열 검찰은 무혐의 봐주기 처분을 했다”며 “이런 뻔히 보이는 봐주기 처분을 한 윤석열 전 총장은 5·18 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5·18 정신을 독점했다는 유 전 의원 등의 주장에 김 의원은 “그 어떤 정치인도 5·18 정신을 자기 정치에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며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함께 슬퍼하고 조용히 위로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5·18정신 메시지로 정부를 돌려까기 하려는 정치인은 처음인 것 같다”며 “다시는 5·18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