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폭격은 언론을 침묵시켜 가자지구가 겪는 말도 안되는 학살의 고통을 은폐하는 것” (알자지라 미디어 네트워크 이사 Mostefa Souag 박사)

“고의로 언론 매체를 표적 삼는 건 전쟁 범죄다. 국제 형사 재판소에 조사 요청” (국경없는기자회)

“이스라엘의 불균형한 대응을 비난하고 이를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건 가자 지구의 동료들과 연대할 것을 국제 언론인들에 촉구한다. 언론 자유는 인권이다.” (언론사 'Middle East Eye' 성명)

8일째 이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맹폭 속에서 언론인이 체포되거나 매체 사무실이 폭파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각국의 언론인들이 “고의적인 언론 공격은 전쟁 범죄”라며 연대를 만들고 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 연합(Palestinian Journalists‘ Syndicate)에 따르면 17일 기준 25개 언론 기관 사무실이 이스라엘군 폭격에 파괴됐고 50명 넘는 언론인이 구타, 체포, 기물 파손 등의 피해를 입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 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취재하는 언론인 900여명이 가입한 직능 단체다. 

▲지난 15일 AP 통신, 알자지라, 미들이스트아이(Middle East Eye) 등 매체가 입주한 건물이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붕괴되는 모습. 사진=MME 보도 갈무리.
▲지난 15일 AP 통신, 알자지라, 미들이스트아이(Middle East Eye) 등 매체가 입주한 건물이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붕괴되는 모습. 사진=MME 보도 갈무리.

 

언론사가 입주한 건물 폭파는 지난 11일(현지시각)부터 15일까지 3차례 반복됐다. 11일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자지구의 알자하라(Al-Jawhara) 건물을 폭격했다. 12층 규모의 이 건물엔 9개가 넘는 언론사 및 유관 기관이 입주했다. Al-Araby TV, 팔레스타인 신문, Al-Etejah TV, Al-Kofiya TV, Al-Mamlaka, 뉴스 에이전시 Sabq24, Al-Bawaba 24, Watania News Agency, 팔레스타인 언론인 포럼 등이다. 

하루 뒤인 12일엔 최소 4개 매체의 입주가 확인된 알슈룩(Al-Shorouk) 건물이 이스라엘군 미사일에 폭파됐다. 하마스 계열 방송사인 Al-Aqsa TV 및 라디오, 미디어 제작사 PMP, 하마스 계열 방송사 Al-Quds Today, 신문사 Al-Hayat al-Jadida 등이 입주했다. 이 건물은 2014년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폭격 때도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5일 알자지라, AP 통신, 미들이스트 아이(Middle East Eye·이하 MEE) 등 다수 언론사가 입주한 건물까지 폭격으로 붕괴시켰다. 60여개 주거 공간과 사무실이 함께 입주한 가자지구의 알 자라(Al-Jalaa) 타워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폭격 1시간 전 건물 소유주에 폭파 계획을 통보했다. 소유주가 장비를 챙길 시간이 필요하다며 “10분 만이라도 더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 건물에 있던 MEE의 모하메드 알하자르(Mohammed al-Hajjar) 사진기자는 MEE에 “노트북은 두고 왔지만 하드 드라이브와 카메라는 겨우 챙길 수 있었다”며 “대피 상황은 충격과 혼돈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들었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새벽 자택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기자 Reema Saad 모습.
▲지난 12일 새벽 자택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기자 Reema Saad 방송 출연 모습.

 

임신 4개월 기자 폭격에 사망… 경찰에 두드려 맞기도

새벽 잠든 도중 폭격으로 사망한 기자도 있다. 12일 자택에서 두 아이와 사망한 리마 사드(Reema Saad·30) 기자다. 4살 난 아들은 그와 함께 숨졌고 2살짜리 딸은 잔해에 묻혀 실종 상태다. 남편만 유일하게 생존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기자는 사망 당시 임신 4개월 차였다. MEE는 딸 아이를 바랐던 그가 며칠 후에 있을 병원 검진을 부푼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업가 기질이 강했던 이 기자는 프리랜서들 구직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 프로젝트 추진도 준비 중이었다. 이같은 꿈은 12일 새벽 1시50분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이 그의 아파트를 폭격하며 사라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20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 정책으로 필요한 약을 공급받지 못해 숨졌다. 이모부는 1987~1993년 간 이어진 제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당시 이스라엘군에 살해됐다. 

총과 수류탄을 맞은 기자들도 적지 않다. 터키 소재 통신사 ’Anadolu Agency‘는 자사 중동 뉴스 편집자가 보도 중 이스라엘 경찰의 총격을 맞았다고 밝혔다. 사진기자 1명과 촬영기자 1명은 지난 13일 가자지구를 취재하던 중 경찰의 공격을 받고 병원에 후송됐다. 

▲지난 10일 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에서 이스라엘 경찰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한 한 기자의 모습. 사진=알자리라 자말 엘샤얄(Jamal Elshayyal) PD 트위터 갈무리.
▲지난 10일 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에서 이스라엘 경찰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한 한 기자의 모습. 사진=알자리라 자말 엘샤얄(Jamal Elshayyal) PD 트위터 갈무리.
▲터키 소재 통신사 ’Anadolu Agency‘가 트위터에 자사 기자 2명이 경찰 공격을 받은 후 병원에 후송됐다고 알렸다. 사진=Anadolu Agency 트위터 갈무리.
▲터키 소재 통신사 ’Anadolu Agency‘가 트위터에 자사 기자 2명이 경찰 공격을 받은 후 병원에 후송됐다고 알렸다. 사진=Anadolu Agency 트위터 갈무리.

 

기자가 경찰에게 두드려 맞는 영상도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됐다. 지난 10일 한 남성 기자가 잔뜩 웅크린 채 ‘알 아크샤 사원’을 진압하러 들어온 이스라엘 경찰에게 주먹으로 수차례 강타당한 후 끌려가는 영상이다. 알자지라의 자말 엘샤얄(Jamal Elshayyal) PD는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을 취재하는 파예즈 아부 라밀(Faiz Abu Ramila) 기자라고 전했다. 

알자지라, MEE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1~15일 간 알 아크샤 사원을 진압한 이스라엘 경찰들은 취재진에게 고의로 최루탄, 수류탄 등을 쐈다. MEE는 “이스라엘군이 군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술로 사용한 ‘스컹크 워터’를 언론인을 겨냥해서 썼고, 그들의 업무 수행을 방해했다”며 “스컹크 워터는 이스라엘 회사가 개발한 군중 제어 무기로 심한 메스꺼움을 일으키고 호흡을 방해해 격렬한 구토를 유발한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팔레스타인 언론인 연합은 지난달 27일 이후부터 언론인 27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또 50명이 넘는 언론인이 금속 탄환, 구타, 보도 금지, 위협, 장비 파괴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국제 언론인 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은 16일 30명 넘는 팔레스타인 취재진이 공격을 받거나 구금됐다고 확인했다. 

▲한 팔레스타인 청년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사진=알자지라 관련 보도 갈무리.
▲한 팔레스타인 청년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사진=알자지라 관련 보도 갈무리.

 

국경없는 기자회 “고의 명백한 전쟁 범죄… 국제형사재판소 조사해라”

중동 언론계의 반발심은 고조되고 있다. 먼저 AP통신, MEE, 알자지라 등 피해를 입은 매체들이 이스라엘을 강력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건물이 붕괴된 15일 알자지라는 “언론인들이 지상의 사건들을 보도하고 세상에 알리는 신성한 임무를 막기 위한 분명한 행동으로 간주한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알자지라 측 이사 Mostefa Souag 박사도 “이스라엘의 언론사 폭격은 노골적인 인권 침해이며 전쟁 범죄로 간주된다”며 “저널리즘은 범죄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의 군사 및 정보 인력이 해당 건물에 장비를 갖추고 있다’며 폭격을 정당화했다. AP통신은 이에 “이스라엘 정부에 증거를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우리는 15년 동안이 이 건물에 있었지만 하마스가 건물에 있거나 활동한다는 징후는 본 적 없다”며 “우리는 끔찍한 희생을 간신히 피했다. 12명의 AP 기자 및 프리랜서 기자가 건물 안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국제 단체 언론인 보호위원회(CPJ) 또한 11일 폭격된 알자하라 건물을 두고 “입주한 언론 기관들에서 이스라엘군이 공습과 관련해 발표한 정보들은 찾지 못했다”고 13일 성명에서 밝혔다. BBC는 자체 취재를 통해 이 건물 폭격으로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 사망이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규탄은 중동 밖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조사를 의뢰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고의로 언론 매체를 표적삼는 것은 전쟁 범죄”라고 단언했다. 기자회는 “언론에 대한 이스라엘의 첫 공격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하기 4일 전에 일어났다”며 ICC 소장에 가자지구의 20개 이상의 언론 매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제 언론인 연맹(IFJ)도 16일 낸 성명에서 이날 열린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 ‘가자지구 언론인을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표적삼는 것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해달라’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IFJ 안토니 벨린저(Anthony Bellanger) 사무총장은 “UN 안보리 결의안 1738은 국가가 분쟁 지역에서 일하는 언론인과 지원 인력을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은 국제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에 돌입한지 8일 째, 팔레스타인 복지부가 발표하는 사망자 통계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갱신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16일 기준, 192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이중 58명은 어린이고 34명은 여성이다. 부상자는 1235명에 달한다. 복지부는 “잔해 속에서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고 시신을 수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상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 밝혔다. 

팔레스타인 언론인 연합은 지난 12일부터 수차례 성명을 내며 해외의 언론인 노조와 유관 단체들이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향한 끔찍한 범죄에 연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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