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소동이 이제는 가석방론으로까지 옮겨 붙으며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는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부회장의 반도체와 백신 역할을 기대하는 재계와 언론의 반복적인 여론몰이에 문재인 정부가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경제살리기와 반도체 백신 전도사라는 허황된 가설에 휩쓸려 문재인 정부가 경제와 사법정의를 맞바꾸는 사법거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등에 따르면,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한 법조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사면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지만 가석방은 법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한데, 가석방의 요건이 갖춰진다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박 장관은 문 대통령의 ‘국민적 공감대’, ‘형평성’, ‘반도체 산업에 관한 문제’, ‘전례’ 등 네 가지 요소를 언급한 것을 들어 “가석방과 관련된 우리 형집행법이나 이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종합하면 가석방과 관련돼 고려될 수 있는 것 중에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국민적 공감대와 유사한 표현이 있다”며 “사회의 감정통념과 정상참작의 여지 등 가석방 심사에 동원되는 용어들을 종합하면 국민의 법감정, 공감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재용씨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석방 요건이 되는 형기와 관련 형법에는 3분의 1을 채워야 가능한데, 하위 법류인 장관예규상 복역률 65%, 현실적으로는 80%를 채워야 가능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박 장관은 “(법률상) 가석방이라는 게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가능한데 예규에 의해 커트라인을 만드는게 합당한가 의문을 가졌고. 취임하자마자 수차례 회의를 통해 예규상 65%, 실무상 80%로 돼 있는 것을 5%정도 완화해 60%로 완화하는 방안을 오늘 결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3·4동 지하대강당에서 법조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3·4동 지하대강당에서 법조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법무부

 

또한 그는 “가석방 절차는 교도소장이 신청하면 심사위원회가 열린다”며 “심사위원회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고, 교도소장의 가석방 신청 자체도 객관적으로 잘 이뤄지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가석방률을 높여야 한다는 건 취임 전부터 가졌던 철학”이라며 “이재용씨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용씨가 60% 복역율 요건을 갖춘다 해도 가석방 심사는 교도소장의 신청이 있어야 하며, 그건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뉴스는 13일자 ‘이재용, 사면 대신 '가석방' 될까...법무부, 다음주 514명 가석방’에서 “박 장관이 원칙적으로 장관의 개입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여론’과 ‘교도소장 자체 판단’이라는 가능성은 열어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문은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반도체 전쟁과 백신 외교 등에 이 부회장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면 찬성론이 일고 있다”며 “사면이 부담스러울 경우 가석방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고 추측했다.

이 신문은 “특히 석가탄신일 다음날인 20일에는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에 호출됐고, 그 다음날인 21일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이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어 떠보기식 사면 여론몰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14일 논평에서 박 장관의 발언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혹은 가석방을 암시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가 이러한 ‘떠보기식’ 이재용 부회장 사면 여론 몰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이재용 사면 논의가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로움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안 맞고, 촛불정부와도 모순적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재용 사면 움직임은 과거 재벌총수들의 경제범죄 때도 있어 왔다. 문 대통령도 “반도체 경쟁이 격화돼 우리도 반도체 산업 대한 경쟁력을 더욱더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반도체 투자 결단이 늦춰지고 있다고 연일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는 2009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2015년 최태원 SK 회장은 사면 직후 반도체 공장에 거액을 투자한 점에 주목했다. 재벌총수들이 마치 자신의 석방과 투자를 거래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뿌리뽑혀야 할 관행이라는 비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형이 확정되는 날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형이 확정되는 날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참여연대는 “지금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언행은 행정부가 나서서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전자가 당연히 집행해야 할 투자에 제동이 걸린다면 이는 총수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과 사익추구에 따라 경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재벌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삼성그룹과 문재인 정부는 더이상의 부끄러운 사법거래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행정부는 사법부의 법적 판단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관여를 멈추라”며 “재벌총수가 행정부의 수장에게 뇌물을 주어 감옥에 가도 투자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경제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석방이 가능하다면 다음에 또 다른 국정농단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고 성토했다. 재판이 진행중인 점을 들어 재판에 영향을 주는 언동을 자제하라고도 했다. 참여연대는 “지금이라도 사면론을 없던 일로 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일벌백계하라”며 “가진 자만 특혜받는 나라가 이 정부의 국정철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비판에 박범계 장관과 법무부는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 장관은 14일 저녁 참여연대의 이 같은 비판에 대한 견해를 물었으나 아직 답변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 대변인도 14일 SNS메신저를 통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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