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간 문화일보가 최순실씨(65)가 자신의 딸 정유라씨에게 쓴 편지를 지면에 보도했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으로 18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최씨는 문화일보 편집국장 앞으로 편지를 발송했다. 비록 최씨가 복역 중이지만, 문화일보는 내부 논의 과정을 거친 후 헌법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편지를 지면에 싣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는 14일자 27면 ‘사랑합니다’라는 코너에 “딸 정유라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실었다. 문화일보는 이 편지를 지면에 실은 이유를 밝혔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8면 “최순실, 본보에 독자 투고 보내… 의견 표현의 자유 인정해 게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근혜 정부 직권남용 사건으로 1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최순실(65·개명 후 최서원) 씨가 문화일보에 ‘사랑합니다’ 독자 투고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14일자 문화일보 27면.
▲14일자 문화일보 27면.

문화일보는 “14일 문화일보는 내부 검토를 거쳐 이날 독자면에 최씨 투고를 싣기로 결정했다. 편지는 5월5일 어린이날에 작성됐고 5월6일자 직인이 찍혀 본보 오승훈 편집국장을 수신인으로 보내졌다. 다양한 경로로 문의한 결과 최씨가 편지를 발송한 사실이 있음이 확인됐다. 최씨 변호인 측에도 문의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는 최씨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했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편집국 내부에서 견해가 엇갈렸지만 본보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의 인정 측면에서 지면에 싣기로 했다. 중대 범죄자라도 사상과 의견을 표명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판단을 내렸다. 또 미 연방대법원의 ‘1991년 메이슨 인용 오류’ 사건 판결에서 ‘피인용자가 언급한 내용이 모호한 경우 그 내용을 인용자 주관에 따라 해석해 인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실질적 진실 기준’ 원칙에 따라 전문 게재를 결정했다. 우리 대법원도 실질적 진실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14일자 문화일보 8면.
▲14일자 문화일보 8면.

문화일보는 편지 내용 중 일부를 ‘삭제’한 사실도 다음과 같이 밝혔다.

“투고 내용 중 ‘대회를 나갈 수는 없었지만, 그 시합을 보기 위해 일어섰던 너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단다. 그러면서 따낸 국가대표도 허망하게 빼앗기고’에서 ‘국가대표도 허망하게 빼앗기고’ 부분은 삭제하기로 했다. ‘틀린 의견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의견 특권 권리를 존중하더라도 사실이 아닌 주장 가능성이 있는 내용의 지면 게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과 미국 법원 판례는 ‘사실에 대한 거짓된 주장을 함축한다면, 의견은 보호받는 범위가 현저히 축소된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었다.”

문화일보는 “투고에서 ‘나쁜 어른’ ‘못된 어른’ ‘희생된’ 표현 등은 국정농단 사건의 통점을 바꾸는 내용은 아니라고 봤다. 다른 부분들은 한두 곳의 확실한 오·탈자만 수정하고 문맥상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그대로 게재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최순실이 딸 정유라에게 보낸 편지 전문.

딸 정유라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유라야! 엄마는 너에게 매일 글을 쓰면서,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어. 이 생애를 살면서, 너와 내가 같이 살았던 시간보다 헤어지고, 떨어져 있었던 순간이 더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을 것 같음에… 가슴 저리는 고통이 늘 엄마를 힘들게 해.

유라야! 넌 어릴 때부터 유난히 말을 사랑하고 동물을 너무 좋아하던 맑고, 깨끗한 아이였어. 언젠가 5살 때 마장에서 코치님이 말을 끌고, 그 위에서 놀라지도 않고, 재미있게 타던 너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가득히 남아 참으로 같이 가고 싶단다. 엄마는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너는 아빠랑 엄마 몰래 찍어놓았다가, 햄스터랑 거북이를 사 가지고 엄마에게 들켰다가 너를 눈물 빠지게 혼냈던 엄마가 이젠 후회스럽고 미안해. 너의 그 마음을 못 알아준 게 요즘은 왜 이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가 후회되는지 모르겠어.

유라야! 어린 나이에 마음에 상처만 준 나쁜 어른들 때문에 그 좋아하던 말을 못 타게 되고…. 네가 사랑하고, 그렇게 노력해왔던 말들을 떠나보내면서 얼마나 그 마음이 서럽고 아팠겠니! 그래도 우리 딸 엄마는 자랑스럽단다. 언젠가 과천에서 시합 때 말이 놀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너를 떨어뜨리려 할 때, 끝까지 버티다 떨어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도 너는 너의 말을 찾았지. 그런 너의 모습에서 엄마가 그때 얼마나 마음에 눈물을 흘렸는지 아니! 너의 고통보다 사랑하는 말을 걱정하는 네 마음에 그래도 넌 그걸 포기하지 않았어. 뼈가 으스러지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넌 대회를 나갈 수는 없었지만. 그 시합을 보기 위해 일어섰던 너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단다. 너의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다 잃어버린 네가. 그래도 살아있어 주고 버티고 있어 줌에 감사하단다. 어린 나이에, 엄마 없이 어린 네가 힘겹게 아이들을 키워주고 있는 너의 강인함에… 난 또 가슴 아파하며 너를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엄마가 미안하다.

유라야! 늘 철창 너머로 보이는 너와 우리 손주들을 보면서 그 순간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고 살아남고자 하는 존재의 이유야. 우리 딸! 언젠가 너의 사랑하는 말들과 다시 만나 훨훨 뛰어다니는 너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네가 그랬지? “이젠 말 근처도 가기 싫다”고. 못된 어른들의 잔인함에 희생된 너에게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우리 딸이 그 먼 길을 어린 손자들과 엄마를 찾아오는 그 발걸음이 고맙고, 항상 네 뒷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된단다. “우리 큰 손주가 할머니는 왜 만질 수가 없어”하고 철없이 물었을 때 너와 내가 얼마나 눈물을 감추고 가슴 아파 했니? 엄마 없이,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 이 매정하고 가혹한 세상의 허허벌판에서 너의 삶을 지키고 아이들을 잘 키워준 우리 딸! 앞으론, 이생의 남은 20대의 삶과 다가올 삶이 힘들더라도… 너를… 또 아이들을 사랑하며 소중히 살아주고 버텨주길 바라…. 이 생이 지나가면 다음 생은 없는 것이니까.

유라야! 그래도 세상은 너를 봐주는 소중한 아가들이 있고, 갇혀 있지만 너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는 걸 늘 가슴에 간직하고, 너의 남은 삶은 고통 속에서 희망으로 이겨내길 바랄게. 미안하고 사랑하는 소중한 우리 딸에게.

엄마 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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