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의 ‘독립언론’을 향한 여정이 새 국면을 맞았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건설의 서울신문 지분을 사들이면서 8부 능선을 넘었다. 명실상부 사원이 사주인 회사로 거듭나려면 이른바 ‘낙하산’ 사장 선임 구조를 바꾸고 구성원 뜻을 모아 새로운 경영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지난달 28일 호반건설의 지분 전량을 매입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구성원들은 가장 큰 위기는 넘겼다고 보고 있다. 호반건설이 지난 2019년 6월 사실상 정부 지분으로 여겨졌던 3대 주주 포스코의 서울신문 지분 19.4%를 사들이면서 최근까지 ‘건설자본 대주주설’이 계속됐다.

그러나 호반건설과의 매매 계약으로 서울신문이 건설자본 소유로 넘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을 뿐 아니라,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를 넘어 과점주주에 올라서게 됐다. 매입 뒤 사주조합 지분은 의결권 기준 53.4%다. 현재 서울신문 지분은 기획재정부 30.49%, 우리사주조합 28.73%, 호반건설 19.40%, 한국방송공사 8.08%, 자기주식 9.96% 등으로 구성됐다. 우리사주조합은 12일 조합원 투표 결과에 따라 호반건설과 매매 계약을 타결한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신문(왼쪽 사진)과 서초구 양재대로2길에 위치한 호반건설 신사옥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신문(왼쪽 사진)과 서초구 양재대로2길에 위치한 호반건설 신사옥

호반건설이 지분 매각을 결정한 데엔 여러 배경이 깔려 있다.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지분 매각 합의 직후 기존에 보유한 광주방송 지분(39.6%)도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반면 지난 7일엔 전자신문 지분 인수 움직임이 드러났다. 호반건설은 올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원 이상)에 지정되면서, 신문법과 방송법상 지상파 방송사 지분 10% 이상, 종합일간지 지분 50% 이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제한을 받게 됐다. 경영권 행사가 어려운 서울신문 지분을 계속 쥐고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가운데 언론사 소유라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주조합과 지분 매매 협상을 진행하던 기재부는 원위치에 놓였다. 기재부 국고국 관계자는 “당일에야 호반건설과의 합의 사실을 알아 당황했다”며 “기재부의 매각이 정부가 언론사 지분을 가지는 게 정당하느냐는 데서 출발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배당을 기대하기 어렵고 소수지분으로 전락해 매각을 해도 팔리지 않을 것 같다.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평가다. 우선 사장 선임 문제다. 고광헌 사장은 지난 5월2일로 공식 임기가 끝났지만 서울신문 지분 변화 문제로 새 사장 선출 논의가 미뤄져 왔다. ‘정부 낙하산’ 사장 인선 구조 해소는 서울신문 숙원이다. 현재 서울신문은 기재부와 KBS가 사추위 과반을 차지해, 정부 입김에 따라 사장을 선임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평가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기재부의 지분 매각 대응방안을 주제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7월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기재부의 지분 매각 대응방안을 주제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주조합 “사장직선제 가동할 것”


사주조합은 ‘사장 직선제’를 다시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신문이 민영화한 직후인 2002년부터 4년간 존재했던 제도로,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내부적으로 선출한 사장을 주주총회에서 추인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2006년 기재부가 사장 선출 방식 변경을 요구하고 포스코와 KBS가 동조하면서 당시 1대 주주가 사주조합이었지만 현행 정관으로 변경됐다. 박록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장은 “구성원들은 사장 직선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내부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사장 선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회사의 주인으로 거듭난 뒤엔 언론사 논조가 ‘진보’로 자리 잡을 여지가 크다. 언론학자들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사례처럼 사원주주형 소유구조를 가진 언론사들 논조가 진보 가치를 강조하는 한편, 서로 대립하는 입장을 모두 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주 외압을 둘러싼 갈등 요소가 적고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내며 업무수행의 자율성이 증가한다는 점이 소유구조에 따른 결정적 변화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그래픽=안혜나 기자

다만 경향신문의 경우 한화의 소유에서 사원주주로 대주주가 바뀐 뒤 임금수준과 취재여건 하락, 재정 불안을 겪은 전례가 있어서 서울신문 역시 기재부 그늘에서 벗어날 경우 경영난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서울신문은 2019년 중앙일간지 정부광고 집행 건수에서 1010건으로 조중동을 제치고 전체 1위였다. 과거 경향신문은 한화로부터 분리 이후 광고주가 편집권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으로 떠올랐다. 사원조합이 1대 주주인 독일 슈피겔의 경우 사원조합의 영향력으로 경영진이 통합 경영을 위한 경영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분석도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는 지난달 29일 성명에서 “온전한 독립을 위해 남은 것은 사원·조합원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라며 “우리사주조합이 드디어 기막힌 해답을 가져왔다. 하지만 참여 없이 결실 없다. 돈 좀 벌겠다고 영혼까지 바치는 시대, 하물며 우리 삶의 터전인 회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끌어오지 못할 게 무언가”라고 구성원의 합심을 촉구했다. 이어 “차기 사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경고한다”며 “사장이 되고 싶다면 실행 가능한 구체적 발전 계획을 마련하고, 사원들의 신뢰를 얻어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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