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선택에 대해, 좋아서 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제9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남편을 잃고 밴에서 유랑하는 삶을 산다. 작은 밴에서 이 장소 저 장소 옮겨가면서 혼자 살고, 저임금 단기 노동을 제공하며 떠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펀이 노마드족으로 차츰 성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하더라도 ‘돈이 없어서 노마드로 사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펀이 즐기는 것들을 가치 절하하기도 한다.

펀은 아마존 창고, 사탕무 가공 공장, 놀이동산 식당, 캠핑지 등에서 일하고 돈을 번다. 가끔은 친구 덕에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애써 부탁해도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떠돌아다니면서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작은 밴에서 추위에 떨며 자는 펀을 보면 측은함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선택하게 한 미국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펀의 주변인들 역시 펀의 노마드(유목민) 삶을 우려한다. 그래서 펀의 여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펀의 과거 이웃 주민은 슈퍼마켓에서 오랜만에 만난 펀에게 “우리 집에 와서 살자”고 제안한다. 펀이 이웃 주민 자녀의 교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은 “나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절한다.

밴이 고장 나 수리할 돈을 구하지 못했을 때 도움을 받은 친언니도 같은 제안을 한다. 펀의 밴과는 달리 튼튼하고 넓으며 현대적인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만 펀은 또 거절한다. 펀은 넓은 침대에서 자지 못하겠다고 했다.

관객이 펀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정말 정착하지 않을까’ 싶은 순간에도 펀은 노마드 삶을 택한다. 함께 노마드족으로 생활하면서 만난 한 남자는 손자가 생기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남자는 펀과 함께 노마드족으로 생활하며 도움을 주고 받았고,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노마드 삶을 먼저 청산한 남자는 대가족 안에서 안락한 삶에 적응했다. 시간이 지나 펀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관객은 ‘이 정도면 정착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따듯한 햇살과 밴을 세워둘 수 있는 넓은 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정원과 아기를 안은 펀의 시선까지. 그럼에도 펀은 또다시 밴 위에서 잠을 청한다.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

이쯤 되면 펀의 노마드적 삶에 ‘빈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펀에게 꼭 맞을 것 같은 자리에서도 펀은 그 자리를 거부하고 밴으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관객은 ‘돈 때문이 아니라면 왜 펀은 노마드족 삶을 고집하는 것일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펀이 노마드족으로 사는 이유에 대해 펀이 여행을 다니면서 본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라고, 그곳에서 만난 재미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전히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준다. 혹은 친언니 집에서 가족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펀이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한 가족 구성원이 부동산 투자를 이야기하자 펀은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투자하라고 해서 빚쟁이로 만들고,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냐”고 화를 낸다. 

영화를 보면 노마드족에 대한 편견이 하나씩 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마드족은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노마드족은 아날로그적일 것이라는 편견 등이 그렇다. 펀은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끊임없이 노동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해 노마드 친구들과 소식을 전하고 아름다운 풍경 동영상을 주고받기도 한다. 노마드족 중 누군가는 빈곤 때문에, 누군가는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노마드족을 택한다. 각자 이유는 다르다.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를 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삶 형태에 대해, 그것이 한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펀의 선택이 단지 빈곤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원작인 미국 여성 언론인 제시카 브루더의 책 ‘노마드랜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책은 영화보다 사회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지만 마냥 회의적이진 않다. 열악한 환경 속에도 기쁨과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원작은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임금은 낮고 주거 비용이 치솟는 시대에서 노마드족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르포다. 원작 르포는 “미국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일’을 두려워한다”고 전한다. 

노마드족인 이유에 사회가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동시에 노마드족의 자유와 해방도 말한다.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 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125p)와 같은 인터뷰를 책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빈곤과 무주택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추운 것, 불쌍한 것,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빈곤을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자유와 해방을 선택한 이들의 선택을 얕은 판단으로 가치 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원작의 책 9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둘 중 누구도 그들의 집값보다 높은 대출금을 갚으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3년형 피프스휠 트레일러 카디널을 샀고, 길로 나섰다.
“우린 그냥 걸어 나왔어요.” 애니타가 말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죠. ‘우린 더 이상 이 게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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