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산 26조원에 대한 상속세 납부와 기부 등 사회 환원 계획을 밝혔다. 한 주 동안 뜨거웠던 이슈였다. 

노원명 매일경제 오피니언부장은 지난달 30일자 칼럼에서 “한 사회가 후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투자를 이건희라는 거인 한 명이 대신 해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참 고맙다”고 했다. 이 칼럼 제목은 “‘이 회장 고마워요’ 한마디는 해야”였다.

그는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점 기증’에 “이 회장과 유족들 덕에 뉴욕에 가지 않고도 우리 아이들은 그런 감동을 맛볼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회장 유산 사회 환원이 발표된 지금 국가 세정의 최고 책임자, 국민 문화 창달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감사 메시지를 따로 냈으면 하는 생각은 든다”고 밝혔다. 

삼성 일가가 비자금 의혹 등 과거부터 편·불법적으로 부를 증식해온 사실이나 이재용 부회장이 현재 삼성물산 불법 합병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 즉 ‘암’에 대한 언급 없이 ‘명’만 부각한 칼럼이라 나는 판단했다. 그래서 아쉬웠다.

노 부장은 지난 3월28일에도 “슬픈 충수염, 삼성이 참 안됐다”라는 칼럼에서 “수감 중이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아프다는 내색을 않고 버티다 충수가 터져 대장 일부까지 잘라냈다고 한다. 독한 사람 아닌가. 아무리 ‘삼성 특혜’ 소리에 진저리가 나도 그렇지 자기 몸을 그렇게 학대하나”라며 “지금에서야 말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삼성에만 모질게 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가 자본과 기업 입장에서 보도해온 대표 경제지라는 점을 감안해도 칼럼 논조는 다소 과해 보였다. 지난 4일 노 부장에게 직접 전화했다. 기명 칼럼을 비평하는 만큼 노 부장 생각을 직접 듣고 합리적 반론을 반영하고 싶어서였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 4월30일자 매일경제 노원명 부장 칼럼.
▲ 4월30일자 매일경제 노원명 부장 칼럼.

- 노원명 부장님이신가요? 저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삼성 관련 칼럼을 비평하고 있는데요.

“왜 아직까지 안 하시나 싶었네요.”

- 부장님이 쓰신 칼럼을 봤는데.

“네. (미디어오늘이) 쓰기 좋게 제가 써드렸잖아요.”

- 댓글 반응도 봤는데요. (삼성에 대한) 명암이 있을 텐데, 명만 너무 말씀하신 게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런데요. 김 기자님. 제가 기자님 글을 가끔 보는데, 글 잘 쓰시더라고요. 그냥 쓰시고 싶은 대로 쓰세요. 저는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요. 제 글에 대해 마음대로 쓰시면 되니까. 제 코멘트는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잠깐만요. 아직 말 안 끝났습니다.

“아뇨. 제가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 최소한 그래도, 제가 드린 질문이 있잖아요.

“아뇨. 저 지금 바빠요. 사람들 만나느라고. 쓰시고 싶은 대로 쓰세요. 저는 애독잡니다. 나중에 볼게요.”

이후 노 부장은 기자에게 답변이 필요하면 메일을 달라고 했다.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

△두 칼럼은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의 밝은 면(명)만 서술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당장 독자들 가운데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고마워요’ 한마디는 해야 한다니...”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암’도 다뤄야 공정한 칼럼 아닐까요?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점 기증’에 관해서도 과거부터 비자금 문제가 거론돼 왔다는 것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책에서 서술한 적 있고, (이건희 회장 배우자인) 홍라희씨는 2008년 삼성 특검에 소환돼 비자금을 이용해 600억원대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룹 비자금이 아닌 이건희 회장 개인 돈(차명)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것으로 결론 났지만 이러한 맥락 서술 없이 “이 회장과 유족들 덕에 뉴욕에 가지 않고도 우리 아이들은 그런 감동을 맛볼 수 있게 됐다”고만 평가하는 건 지나친 칭송 아닌가요?

△아무리 경제지여도 칼럼에 균형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삼성에만 모질게 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고용과 기부를 이 나라에서 제일 많이 한 삼성의 수장은 충수염에 걸려서 아프다는 소리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대변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연합뉴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연합뉴스

노 부장은 기자 질문 메일에 다음과 같이 답변 메일을 보냈다.

“(제 칼럼에) 공감한다는 반응도 많군요. 기사를 항상 기계적 공정에 맞춰 쓰시는지요. 비자금으로 구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난 걸 아시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저 또한 삼성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제 칼럼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의 연장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경제지여도’란 표현은 공정하지는 않군요. 좀더 균형감 있는 질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쨌든 고생하십니다. 모쪼록 기사는 균형되기를. 감사합니다.”

삼성 문제에서 진보언론과 보수·경제지 논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4일자 칼럼에서 “‘삼성 찬양 기사’의 종착점은 어김 없이 ‘이재용 사면론’이다. 삼성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사면 얘기를 안 한다. 언론이 기대 이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 아닐까”라고 반문한 뒤 “이제 삼성과 언론은 한몸이 된 듯싶다. 최대 광고주 삼성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언론이 처음부터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반면 노원명 매경 부장은 앞선 칼럼에서 “이재용과 삼성은 대국민사과와 법정 반성을 합쳐 몇번 했는지 세기도 어렵다. 삼성이 잘했다는게 아니라 왜 삼성만 반성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만 벌 받고 반성한다고 세상이 바뀌나”라고 지적한다. 180도 다른 논조다. 미디어오늘·한겨레를 포함한 진보언론, 매경을 포함한 보수언론 양쪽에 접점이나 서로 인정할 수 있는 대목이 있지 않을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경제지 간부와 직접 소통했으나 사안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는 뚜렷했다. 다만, 언론인들 사이 서로의 기사에 대한 소통이 부재한 현실에서 질문과 응답이 오갔다는 것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 부족한 질문에 답을 해준 노 부장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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