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도 있고 앞으로 미디어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뭘 어떻게 할지 막연하다.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미디어 교육’이 뭔지 개념적 정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이라면 어떨까? 아이들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나를 발견하고 친구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로 만들어지기도 한 미국 에린 그루웰 선생님 사례가 있다. 1994년 캘리포니아. 속칭 문제아들의 집합소인 고등학교에 에린 그루웰이라는 독특한 국어 선생님이 나타난다. 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쳐 보려 애쓰지만 어린 나이부터 인종 차별과 부모 이혼, 마약에 익숙한 아이들은 바뀌지 않는데, 그루웰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것은 아이들 스스로 일기를 쓰게 하는 거였다.

개인 알바로 상금을 마련해 일기를 써보도록 권유하는 국어쌤의 지극 정성에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일기를 써보는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각자의 삶이 한 편의 소설이었던 거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놀랍고 슬픈 현실, 써내려가던 아이들은 어느새 재미를 붙이고, 쓰다보니 읽게 되고 읽다 보니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고 궁금해 한다. 이후 윌슨고등학교 203호 모든 학생(150명)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졌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프리덤 라이터스’(The Freedom Writers), 자유의 작가들이라 불렀다.

▲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 스틸컷
▲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 스틸컷

아이들 스스로 문학이라는 미디어가 됐을 때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남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교육은 나를 발견하고 남을 이해하는 재미난 인성 교육이자 또 다른 미디어 교육을 위한 디딤돌이다. 이런 교육을 각 지역 방송국이 해보면 어떨까? 방송인 체험 말이다.

작은 경험이 있다. 업무상 방송국으로 견학오는 학생들을 맞아주던 시절, 이왕이면 재미있고도 교육이 되는 체험을 선사하고 싶어 한 시간 반짜리 커리큘럼을 짰다. 이렇게 짜봤다. 내가 직접 아나운서가 되고 작가, PD, 엔지니어가 되어 라디오를 만드는 경험… 내가 처음 작가가 되고 PD가 됐을 때 느꼈던 그 짜릿짜릿한 순간을 커리큘럼에 녹여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번째 실험 대상은 대학 동기들의 자녀들이었는데 ‘분당 잡월드보다 유익하고 재미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먼저 팀을 짜게 했다. 아나운서, 작가, PD, 엔지니어, 이렇게 4명이 한 팀. 그리고 구체적 역할을 줬다. 30분간 방송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여주고, 20분간 스스로 방송 준비할 시간을 줬다. 아나운서와 작가는 뭘 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 원고를 작성하고 PD는 멘트 후 나갈 음악을 선곡하고 엔지니어는 휴대폰을 들고 모든 과정을 촬영해 단톡방에 올리게 했다.

이렇게 하고 방송국을 보여주는데 아이들 눈빛이 남다르다. 잠시 후 내가 쓰거나 말해야 할 방송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빨아들이듯 경청한다. 중간중간 스튜디오 안의 방음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어디 한번 실험해보자면서 아이들을 방음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게 한 뒤 밖에서 ‘야’ ‘자’ 크게 부른 뒤 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할 때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요란했다.

직접 콘솔을 조작해 좋아하는 음악이 스튜디오에 울려퍼질 때 꺅하는 탄성을 지르며 따라부르거나 리듬을 탔다. 그리고 방송 준비 시간. 딱 20분 동안 방송 대본을 쓰고, 선곡을 하는 데 서로 도와가면서 진지하다. 시계를 보며 5분 남았는데 어떻게 하지 조마조마하는 표정이다. 아이들은 스튜디오에서 바들바들 떨다가도 한 팀 두 팀, 실제 방송을 해보며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 말을 경청하며 신기한 표정이 됐다.

이렇게 80회 이상 진행했다. 선생님 인솔 아래 경기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고등학생들, 나중에는 외국인 학교 학생들까지 찾아왔다. 지역 방송국이 지역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손쉬운 사회 공헌이었다. 견학이 아니다. 미디어 교육, 지역방송이 나서보자. 마치 놀이동산 오는 것처럼 온 가족이 아이들 손잡고 지역방송을 오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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