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에 연루돼 뇌물·횡령죄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에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당내 중진(3선 의원)이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원욱 의원이 돌연 이재용 사면의 필요성이 강력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민사회에서는 평소 이 의원이 친기업적 행보를 보여오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의 양향자 의원에 이어 당내 중진까지 이재용 구명에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공정경제를 무력화하고 친재벌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사법정의를 파괴할 뿐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로 후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오전 BBS(불교방송)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과 전화연결을 통해 경제단체와 종교계 사면건의를 두고 “지금 반도체의 수급 상황, 미국에 대한 투자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 필요성이 강력히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코로나 상황에서 경제가 매우 불안하고 반도체 위기를 온 국민이 이렇게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이재용 부회장 사면 필요성을 국민들도 요구하고 있고, 정부가 좀 적극적인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나 황희 문체부 장관도 검토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사회자 질의에 “저는 좀 사면 필요성이 조금 있는 정도가 아니고 아주 강력히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놓고 노골적인 이재용 구명선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날 방송 이후 한 청와대 기자가 ‘지금도 검토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느냐’고 묻자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로서도 마찬가지 대답”이라고 밝혔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이 의원이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일개 의원이라고 하기엔 그 말의 무게가 남다르다”며 “지난 29일 경영실적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충격과 반도체 부진에도 1분기 기준 역대 최고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런 기업을 두고 ‘위기’를 운운하며 사면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원욱 국회 과방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이던 지난 2019년 11월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활동지원과 내수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 접대비 손금(비용처리)한도 상향과 명칭변경'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욱 국회 과방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이던 지난 2019년 11월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활동지원과 내수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 접대비 손금(비용처리)한도 상향과 명칭변경'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 대변인은 “이 의원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삼성 이재용 사면 간 보기’를 당장 멈추라”며 “더불어민주당에 묻는다. 이재용 부회장 사면에 대한 당론은 무엇이냐. 신임 대표가 선출된 만큼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이자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을 맡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4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면권은 사법부의 결정을 행정부가 변경하는 것이므로 예외적으로만 행사돼야 한다”며 “예외적인 경우도 과거 사법부가 군사정부의 억압으로 잘못된 판결한 사안에 대한 역사적 반성의 의미에서 하거나 사회통합상 불가피할 때가 해당되는데, 이재용 부회장은 여기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경우 부패와 비리 행위로 형이 확정됐는데, 이런 특정인을 위해 사면권을 행사하게 되면, 다시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 돈없는 사람만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회로 회귀하고, 이는 위헌적 행위일 뿐 아니라 사법부의 신뢰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신청 요건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재소자들이 성실하게 수형생활하고 피해를 복구하면서 가석방을 신청하는 것처럼 가석방 제도를 통해 성실한 수형생활을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다만 이 부회장은 현재 다른 사건(불법 경영권 승계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재판도 받아야 해서 가석방도 쉽지 않은 위치라고도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여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에 사면을 요구하고, 재판부에 압박을 가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다른 당도 아닌 민주당 소속인 이원욱 의원의 이 같은 행위를 두고 김 변호사는 “눈앞의 정치적 표만 신경쓸 게 아니라 사법질서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양향자 의원의 경우 삼성전자 출신으로 민주당에 와서 삼성 등 재벌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충실히 대변하고 있고, 이원욱 의원은 신산업을 육성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벌과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김 변호사는 “마치 이재용 부회장이 사면을 받아들이면 이 부회장이 반도체에 더 많이 투자할 거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며 “그걸 거래하고 투자하도록 한다는 것이야말로 또다른 정경유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재용 사면 요구)하는 것이먀말로 정치발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을지로위·민주연가 지난해 6월2일 주최한 21대 국회 민생공정경제 연속세미나 '과잉주택담보대출과 한계채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김남근 변호사가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을지로위·민주연가 지난해 6월2일 주최한 21대 국회 민생공정경제 연속세미나 '과잉주택담보대출과 한계채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김남근 변호사가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구나 재벌대기업 정보통신업체에 관한 법률을 관장하는 국회 과방위의 상임위원장이 이렇게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저지른 특정 재벌 총수의 구명을 위해 뛰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입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과연 의정활동을 공정하게 하고 있느냐는 시비를 불러올 것”이라며 “신산업 중에 정보통신 분야도 많을 텐데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보다 대기업 위주로 정책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입법 불신’을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원욱 의원 뿐 아니라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기조를 포기하고 친재벌 성향의 규제완화와 부동산 규제완화로 정책방향을 수정하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말로는 약자와 서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재벌과 강자, 큰 범죄를 저질러도 돈많고 힘있는 자들을 대변하는 위선적인 모습이 민주당의 참모습이냐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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