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ODI)와 외국인직접투자(FDI) 통계를 바탕으로 직간접 일자리 유발 효과를 추정한 결과 지난해 제조업 일자리 7만2000개가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방식으로 2011년부터 20년까지 10년간 제조업 평균 직접투자 유출액이 매년 평균 -7.5조원에 달하고 직간접 일자리가 매년 4.9만개(누적 49.1만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했다.

(직접투자는 이자, 배당소득 목적 차익거래인 간접투자가 아니라 해외 자회사 설립, 기업인 수 및 지분 참여 등 현지 기업의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말한다. 취업유발계수란 국내 생산이나 투자,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마다 전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다. 2018년 기준 취업유발계수가 10.1명인데, 투자가 10억 늘었다면 취업자가 10명 는다고 본 것이다. 제조업 취업유발계수는 2018년 6.2명이므로 10억원 당 약 6명 정도 취업자가 늘어난다고 본다.)

#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지난해 제조업 일자리 7.2만개 해외로 빠져나가 (2021년 4월19일)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내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 제조업에 투자한 해외직접투자와 외국인이 우리나라 제조업에 직접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의 차액(직접투자 순유출액)을 업종별 취업유발계수와 곱해서 나온 결과로 유출된 일자리를 추정했다. 간단히 말하면, 직접투자 순유출액만큼 일자리가 줄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해외에 투자할 돈을 국내에 투자했으면 그만큼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왜 국내 투자를 하지 않고 해외에 투자하는가? 이에 대해서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각종 기업 관련 규제, 그중에서도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국내 투자와 고용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직적 노동시장 때문에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고 해외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이다. 다시 주장을 정리하면,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유연하지 못해서) 해외 직접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면 국내 투자가 더 활성화하고 일자리가 더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해외 투자 줄이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먼저 짚을 것은 투자가 곧 일자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직접투자의 1/3은 M&A형 지분인수다. 돈하고 주식만 왔다 갔다 하고 대주주가 바뀔 수는 있어도 시설 투자나 생산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자리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해외 직접투자를 하는 경우도 국내 시장 규제나 높은 임금,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이 아니라 현지 시장진출이 가장 큰 목적이다. 제조업 해외 직접투자의 경우 2019년 기준 목적별 해외투자액 비중을 살펴보면, 현지 시장진출(69.9%), 수출촉진(13.8%), 선진기술 도입(7.1%), 저임활용(5.9%) 등으로 노동시장과 관련된 것은 저임금활용과 제3국 진출 등 채 10%가 되지 못한다.

▲ 제조업 해외직접투자 목적별 비중 추이.
▲ 제조업 해외직접투자 목적별 비중 추이.

최근 삼성전자나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현대차 등이 미국 노동자 임금이 한국 노동자보다 낮거나 미국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서 미국 내 현지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미국 현지 시장 진출 때문에 직접투자를 늘리고 있다. 대중국 투자가 2019년 108.2억 달러로 2014년 52억달러 대비 2.1배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대미 투자는 14.9억 달러에서 82.8억 달러로 5.5배 증가했다.(중국 시장도 수요 증가로 최근에는 중국 현지 진출 목적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저임금 시장을 보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많이 이전했지만 최근 글로벌 경쟁과 생산조건 변화로 해외 직접투자는 대부분 현지 시장진출을 위해 이뤄지고 있다. 이 경우 국내 노동시장 조건과 상관없이 해외 직접투자를 줄인다고 국내 대체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해외 직접투자와 외국인 직접투자의 차액(직접투자 순유출액)이 국내 투자수요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 차액은 취업유발계수로 계산되는 ‘10억 투자 증가’와 같지 않기 때문에 한국경제연구원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분 계산은 잘못됐다.

고장 난 라디오 “노동시장은 경직적”

그러면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은 왜 현실에도 맞지 않는 보고서를 계속 내는가?(연구보고서도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보도자료다) 일자리가 정말 걱정돼서라기보다는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임금 유연성과 노동시간 유연성, 고용 유연성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더 강화하라고 주문하기 위한 근거로 제조업 일자리 유출을 무리해서 계산해 지속적인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런 분석을 매년 반복하고 있으며 투자와 생산, 노동시장 문제가 나오면 매번 고장 난 라디오처럼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또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근거로 프레이저연구소의 경제자유도 순위와 세계경제포럼(WEF)의 노동시장 경쟁력 순위를 매년, 매 순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프레이저 연구소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도 순위(2020년)는 조사대상 162개국 중 145위이고, 세계경제포럼의 노동시장 경쟁력 순위(2019년)에서도 한국은 조사대상 141개국 중 97위로 하위권이라는 게 근거다.

프레이저 연구소는 캐나다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성향의 연구소다. 경제자유네트워크(The Economic Freedom Network) 소속이고 한국의 협력단체가 자유주의 성향으로 이름 높은 자유기업원이다. 프레이저 연구소의 “세계경제자유도”에서 노동시장 규제에 대한 평가는 세부 항목으로 고용 규제와 최저임금(Hiring regulations and minimum wage), 고용과 해고 규제(Hiring and firing regulations), 중앙집중식 단체교섭(Centralized collective bargaining), 시간 규제(Hours regulations), 해고의무비용(Mandated cost of worker dismissal), 징병 기간(Conscription)으로 되어 있다. 이중 World bank 등의 공식 통계를 이용한 것은 고용규제와 최저임금, 시간 규제, 해고의무비용 등 3가지다. 고용과 해고규제, 중앙집중식 단체교섭은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의 CEO 설문조사를 그대로 원용했다. 그리고 징병 기간은 최저 점수인 0점을 받았는데, 징병 기간이 18개월 이상인 국가는 0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 평가에서 징병 기간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40년이 넘게 계속 0점만 받았다.

이처럼 프레이저 연구소의 노동시장에 대한 평가는 세계은행(World bank) 통계 50%, 기업 CEO 설문조사 33%, 노동시장과 관련 없는 징병 기간을 17%로 반영하고 있다. 이 평가의 최소 절반이 객관적 노동시장 현실과 관계없는 소규모의 편향적 여론조사나 통계들이다.

# 2020년 세계 경제자유도 (Economic Freedom of the World 2020, Fraser institute)

세계 최대 부호 경제인들의 연합체인 다보스포럼,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는 기업인 설문조사 비중이 70%가 넘고 물가상승률, 저축률 등 각종 통계는 30%도 채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 유연성을 평가하는 항목으로는 정리해고비용, 고용과 해고 유연성, 노사협력, 임금 결정 유연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동자 권리, 이주노동자 채용의 용이성, 국내 이직 용이성 등 8가지 항목이다. 이 가운데 정리해고비용과 노동자 권리만 각각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노총(ITUC) 통계를 사용하고 나머지 6개 항목은 기업인들 설문조사 결과다. 부록(appendix B)에 2019년 설문조사 응답 수가 한국의 경우 100명이라고 밝히고 있어 결국 한국 기업 CEO 100명의 설문조사로 한국 노동시장 유연성을 평가한 것이다.

# 2019년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The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 2019, WEF)

정치적으로도 편향된 사설 단체의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노동시장 평가 보고서를 언제까지 인용하면서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란 얘기를 앵무새처럼 할 것인가?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나 현실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갖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도 세계 최고이며, 자영업자 비율도 최고 수준이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은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에 가깝다.”

# [홍석만의 경제 매뉴얼]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건 가짜뉴스다 (미디어오늘 2021년 1월30일)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자동화‧무인화 때문

앞서 취업유발계수 문제를 다뤘는데, 이 취업유발계수가 지속해서 하락했다는 것이 일자리 문제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 그래프 출처=한국은행 산업연관표
▲ 그래프 출처=한국은행 산업연관표

2010년 13.8명에서 2015년 11.4명, 2016년 11.2명, 2017년 10.6명, 2018년 10.1명으로 지속 줄었다. 한국은행은 산업연관표에서 취업유발계수를 2018년도까지 발표했는데, 작년과 올해 통계가 취합되면 취업유발계수는 10명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서비스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제조업(공산품) 취업유발계수는 2015년 7.2명에서 2018년 6.2명으로 떨어졌다. 서비스업도 2015년 14.5명에서 2016년 14.1명, 2017년 13.5명, 2018년 12.8명으로 내려갔다.

취업유발계수가 줄어든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생산 현장이 곳곳이 빠르게 자동화‧무인화에 나선 영향으로 설명된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와 로봇이 대체한 영향이다. 특히 우리나라 제조업의 산업용 로봇 사용률은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압도적 세계 1위다. 그만큼 자동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진행돼 있고, 그만큼 제조업 취업유발계수가 낮은 이유다.

자동화와 무인화에 의한 일자리 축소 영향이 제일 크고 해외 직접투자나 기업의 해외 진출에 따른 축소 요인은 상당수 줄어들었다. 이는 미국에서 일자리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이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과 투자에 기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 큰 요인으로는 자동화 등 노동절약적 기술진보와 자본투자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계속 강조된 것과 같다. ‘고용 없는 성장’이 바로 이 경향을 대표한다. 국내 일자리 감소는 더 이상 해외 직접투자나 기업의 해외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절약적 자본투자’에 있다.

그러면 또 이런 반론을 한다. 노동절약적 자본투자, 기술진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강성노조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임금수준이 높아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즉, 강성노조로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자동화 등이 더 많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 힘이 강할수록 생산 현장 자동화는 노조 반발로 오히려 늦춰진다. 기계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노동자 고용을 위협하게 되고 노조는 여기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 로봇 도입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노조 힘이 그만큼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우리나라 노조 가입률은 10% 정도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 2021년 3월 취업자 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내내 이어지던 마이너스(-) 행진을 끊고 13개월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사진은 4월14일 서울 성동구 희망일자리센터의 구인 게시판. ⓒ 연합뉴스
▲ 2021년 3월 취업자 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내내 이어지던 마이너스(-) 행진을 끊고 13개월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사진은 4월14일 서울 성동구 희망일자리센터의 구인 게시판. ⓒ 연합뉴스

또한 기계가 도입되면 기업 내부 고용량뿐만 아니라 고용 형태도 변화시킨다. 기계와 함께 작업하는 정규직 노동자 수는 줄게 되고, 기계화한 핵심라인 외에 주변 라인을 외주와 하청으로 돌리면서 비정규직 고용이 늘게 된다. 이처럼 자동화와 노동유연화는 사실상 동시에 발생한다. 자동화율이 늘고 노동절약적 자본투자가 늘어날수록 비정규직, 외주화, 하청 등 노동유연화가 더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 수준도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자동화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어 일자리를 만들어 봐야 다시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일자리만 더 증가할 뿐이다. 코로나 위기 이전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에 도달했다는 미국과 일본 경제에서 불안정 일자리 폭증으로 투잡, 쓰리잡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와 프리터족(freeter)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양질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노동절약적 자본투자는 또 더 진행되면서 노동절약적 자본투자→일자리 감소→일자리 질 악화→노동절약적 자본투자라는 악순환만 지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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