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365일 중 364일이 어른들의 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채 있다.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라는 배제당한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어린이를 정중하게 대하려는 어른 4명을 만났다. 김소영 작가, 김영하 작가의 추천으로 더욱 주목받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썼다.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미디어교육학 박사), 어린이와 미디어의 접점을 풍성하게 할 연구자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매달 경향신문에 어린이를 주제로 글을 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학교 현장에 있는 미디어리터러시 전문가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6일,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 편집자주

지난달 EBS에서 방송한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가 화제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란 뜻의 문해력을 주제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 ‘학교 속의 문맹자들’ 등 6부로 진행했다. 일부 방송 장면이 화제가 됐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어휘를 몰라 수업을 못 따라가는 장면들이었고 어른들이 이에 크게 놀라는 반응이었다. 이후 문해력을 주제로 한 언론보도도 ‘요즘 학생들이 영상만 보고 책을 보지 않는다’는 논조로 흘렀다. 조선일보 지난달 27일자 “유튜브 빠져 책 안읽어… 방과후교실서 국어 배울 판” 등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대담 1부에 이어서)

김소영 작가(김소영) : 어린이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노출될 땐 그만한 훈련도 필요하다. 영상뉴스의 경우 자막 넣는 법, 눈길 끄는 법을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의미있게 구성하기 위해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성 사고력’이 요구된다. 이는 언어기반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문해력 문제를 ‘영상 때문에 어린이들 문해력이 저하된다’로 접근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문해력 높이기와 영상문법을 어떻게 같이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논의의 초점을 바꿔야 하는 때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가 와서 더 늦출 수 없는 이야기다. 

[관련기사 : ‘총공’하는 10대, ‘미디어 리터러시 백신’이 필요한 이유]

박유신 석관초 교사(박유신) : 발화자로서 어린이에 대해 국어교육과정에서 다루고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법, 매체를 이용해 말하기 등을 다루는데 문제는 ‘비판적’이라는 말에 예민하다. 사실과 의견을 나누고 주요 내용을 요약하는 등 형식에 집중한다. ‘비판적’이라는 것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기 두려워한다. ‘쓰기’의 전략만 있고 ‘내용’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김지은) : 내가 어린이기자 시절 일이다. 교장선생님이 어린이기자들을 다 불러놓고 ‘앞으로 우리학교에 이런 기사가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어린이들이 근사한 모습으로 말하면 만족하는 어른들이 그 교장선생님의 상태가 아닌가. 결국 어린이가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어린이를 어른의 일에 대해 반격하는 기사를 쓰는 동료라고 생각해야 한다.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김아미) : 스쿨미투를 준비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만난 적 있다. 학생들이 공식적인 말로 잘 썼고 발표할 일만 남았는데 미리 언론에 흘러 이슈가 됐다. 그러자 학교가 학생 목소리를 차단했다. 

▲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소영 : 어린이들과 글쓰기를 하다보면 ‘비판적으로 쓴다’, ‘비판적으로 읽는다’라고 하면 ‘단점을 찾는다’, ‘누구랑 싸워서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 ‘내 생각 말하기’ ‘내 생각 쓰기’라고 한다. 자기 말을 하는 경험을 주고 싶다. 어린이들이 조금 더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일상에서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의견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어서 때로는 내용은 좋지만 형식이 안 좋아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험도 하면서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김지은 : 거절도 당해보고) 그런 경험이 있어야 좋은 미디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김지은 : 독일 함부르크에 미니어처 원더랜드라는 곳이 있다. 미니어처로 세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선거 시즌이 되면 정당별로 섹션을 줘서 정책을 미니어처로 설명하게 한다. 선거 기간마다 개설이 돼 어린이도 (공약이) 어떻다는 걸 시각화된 것으로 보고 질문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은) 다양한 미디어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산 사용처가 협소하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의 중심에서 배제돼있고 어린이들이 이런 경험을 쌓지 못하는 거다. 

▲ 독일 함부르크 미니어처 원더랜드에서 정당 관계자들이 모인 모습. 사진=유튜브 'Miniatur Wunderland' 갈무리
▲ 독일 함부르크 미니어처 원더랜드에서 정당 관계자들이 모인 모습. 사진=유튜브 'Miniatur Wunderland' 갈무리

 

박유신 : 유튜브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뭘 채우고 있느냐가 문제다. 문해력에 대한 최근의 이야기들이 실망스러운 면이 있다. 첫째는 문자에 대해 집착한다는 느낌이 들고, 둘째 학습자로서 어린이에 집착한다. EBS 다큐가 그걸 목적으로 만들진 않았겠지만 대중에 의해 걸러졌을 때 결국 ‘아니 그러니까 어휘를 몰라서 수학문제를 못 푼단 말이야?’였다. 

김지은 : 수학문제를 못 풀면 큰일나니까. 

박유신 : 공부를 잘하려면 문해력이 핵심능력이구나 그것만 남았다. 그래서 영상을 많이 봐선 안 되는구나. 이런 논의의 흐름을 보고 실망도 느끼고 퇴행적이라고 생각했다. 어휘력 물론 중요하다. 꾸준하게 쓰기와 반복해서 읽기를 시킨다. 다만 현장에서 경험을 말씀드리면,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머리는 굉장히 좋아’라고 말했다. 함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선 지식을 영상으로 만나니까 한번도 그 학생이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다큐에 관심이 많고 과학지식, 사회과학도 흥미로워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보니 글자를 잘 못썼다. 심리적으로 글자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문제행동을 일으켰던 거다. 그 학생에게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다. 이런 경험이 한번의 경험이 아니다.  

▲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지은 : 기술을 잘 활용하면 과거에는 배제된 사람들의 발언을 독려할 수 있다. 독일 미니어처 원더랜드 사례에서 공약을 왜 미니어처로 만드는가. 만약 휠체어 탄 사람이면 휠체어 탄 미니어처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는 거다. 경사로는 마련돼 있는지 등을 시각적으로 볼 때 많은 이들이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화자와 청자로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가는 맥락 속에 문해력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개방된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민주적 참여의 과정으로 구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각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세계에선 질을 포기해 선정적인 것으로 아무 언어나 남발하게 하고, 고매한 논의는 문자미디어 속에서만 하는가. 문자미디어 논의에 들어오면 참여시키고, 못 오면 ‘보던 거나 봐라, 그런데 그건 서브컬처야’라고 배제하는 건 아닌가. 

박유신 : 글을 쓰는 건 굉장한 추상화 능력이라서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문자미디어를 유려하게 다루는 건 극소수다. 문자미디어에 어떤 아이들은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다. 학생을 평가하고자 하는 역량, 성취기준이 있는데 결국 문자미디어로 잘 정리하는가로 평가받는다. 이건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과거 인쇄물 중심이었기 때문에 기존 평가관행이 이어졌고 최근 다들 수행평가를 힘들어하고, 정식의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자 미디어로 복잡한 문장을 구사할 수 없는 학생들도 사회문제에 발언할 수 있어야 하고, 영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다 무효로 치는 거다. 

▲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인 김소영 작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인 김소영 작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소영 : 어휘력은 중요하지만 문해력의 핵심 키워드는 아니다. 다큐를 보면서 의아한 건 선생님이 설명하면서 ‘가제가 뭔지 아니?’ 그랬더니 아이들이 ‘랍스터요’하고, 사람들은 놀라더라. 아이들이 ‘가제’를 어디서 들었을까. 그 말을 들어볼 일이 없었을 거 같다. 다큐에서 문제화했던 단어들 대부분은 어린이·청소년들 언어환경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데 아이들이 문제인 것처럼 다뤘다. 책을 많이 읽으면 문해력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건 단순한 논의다. 

▲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1부 영상 갈무리
▲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1부 영상 갈무리

 

김아미 : 영상을 봐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기본은 소통과 표현을 위한 문해력이다. 기성세대에게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성세대 가치관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기성세대는 어휘에 강하고, 자라나는 세대는 영상에 익숙하고 문해력이 부족하니 ‘너희는 문제야’ 이런 건 낭만주의적 접근이다. 미디어 교육에서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바꿔보거나 영상을 문학을 바꾸거나 문학을 만화로 그려보는 등 장르를 바꾸는 활동이 있는데 되게 어렵다. 각자의 영역이 있는 리터러시다. 

박유신 : 오늘날 미디어 리터러시는 문자 리터러시만이 아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큰일 난 거처럼 말하지만 중상위권 이하 아이들의 어휘력은 과거에도 꾸준히 좋지 않았다. 문자미디어를 쓰는 건 자연적으로 습득되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얻는다. 포털 뉴스 댓글을 보면 어른들도 ‘글을 읽었나’ 싶다. 문해력의 핵심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텍스트를 파악하는 거지 어휘력 몇 자를 더 아는 건 아니다. ‘가제’를 모르면 그 자리에서 가르쳐주면 된다. 

김지은 : 문해력은 결국 ‘타인의 마음으로 팩트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내 눈으로 보는 팩트만이 아니라 하나의 팩트를 여러 사람이 보고 있고 타인은 어떻게 아프게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몇월 몇일에 무슨 일이 있는지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뉴스만 읽어선 안 되고 문학을 읽어야 한다. 문학이든 영화든, 서정적인 읽기와 보기의 경험이 없으면 팩트에 대한 이해는 생기지 않는다. 최근 일어난 많은 논쟁을 보면 사람이 없다. 모든 사실은 인간과 접목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너는 좋은 인간이 되라’와 같은 말이나 근사한 논설을 읽힌다고 해서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정적인 읽기의 경험이 배제되면 뉴스읽기의 경험을 질적으로 상승시킬 수 없다. 일상언어로만 자신의 복잡한 감정적 문제나 처지를 설명할 수 없다. 철학적 언어가 어린이에게도 필요하다. 우린 ‘절망’과 ‘고뇌’의 차이를 알지만 어린이는 다 비슷한 말로 들린다. 이걸 이미지 언어로라도 차이를 전달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줘야 하고 그래서 그림책이 필요하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문해력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강조하는 팩트체크로 이어졌다. 팩트체크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3부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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