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보도에 최소한의 법률 규제를 마련하고 각 언론사의 자율 규제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자극적으로 흐르는 대다수의 보도가 아동·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가장 널리 알려진 아동학대 사건으로는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꼽힌다.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정인이 사건’으로 명명하고 ‘#정인아미안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사건 피해아동의 이름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맑게 웃던 피해아동이 폭력에 시달리면서 생기를 잃어가는 얼굴 사진은 이미지 파일로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 보도는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발했지만 보도 윤리, 아동 인권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형적인 ‘자극적인 이야기 구성’ 방식의 보도다. 

▲지난 9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조사처는 27일 보고서(아동학대 관련 언론 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서 이런 유형의 보도를 두고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서 사건을 지칭함으로써 2차 가해를 유발하고, 심지어 그 이름 자체에 대한 편견조차 갖게 한다”며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심층적인 보도보다는 관심을 끌기 위해 감정과 신경을 자극하는 보도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 지적했다. 

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기본요소처럼 여겨지는 폭력 상황 CCTV 영상, 개인 간 주고 받은 폭력적인 메시지를 여과 없이 노출하는 일들도 문제다. 학대 대상 아동 및 그 가족·주변인이 쉽게 노출되거나, 피해자·가해자 주변인에 대한 인터뷰를 과도하게 시도하면서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성년자 인권에 대한 민감성 부족도 아동학대 사건 보도에서 흔히 비판 받는 지점이다. 학대 대상 아동과 이들의 형제·자매 등 주변인 정보가 쉽게 노출되고, 모자이크 처리를 한 화면으로도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문제들은 3년 전 만들어진 ‘아동학대 사건보도 권고 기준’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현 아동관리보장원)이 만든 기준은 △아동학대 사건 취재 시 언론이 준수해야 할 윤리 이행 △아동학대 사건 보도 시 언론이 지켜야 할 준칙 이행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 고려 △아동학대 예방에 정확한 정보 제공 등이다.

입법조사처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은 미성년자들에게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미성년자는 성인에 비해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예방과 권리 주장이 쉽지 않다. 이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엄격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아동이 권리 보호의 대상이자 주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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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언론 보도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기 쉬운 환경인 만큼 검증되지 않은 허위조작정보를 담거나, 특정 가족 유형 등에 편견을 조장하는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일부 아동학대 사건 보도의 제목에 ‘양부’ ‘양모’ ‘계모(부)’ 등의 표현을 관성적으로 붙이면 한부모·재혼·입양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화되고 피해아동 등에 대한 2, 3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언론 보도를 법률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아동학대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최소한의 법률 규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동 관련 법률인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에 대한 실태조사 실시와 권고 기준 수립 및 이행 확보 방안 마련 등을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사례로 지난 2018년 국가의 자살예방 기본계획에 ‘언론의 자살보도에 대한 권고기준 수립 및 이행확보 방안’을 포함하도록 한 관련법 개정을 들었다.

방송심의에 관해서는 이미 어린이 학대 사건 보도에 관한 규정이 있다. 입법조사처는 “아동학대 보도 관련 심의와 제재조치를 강화하고, 특히 같은 사유나 내용의 심의 위반 사례가 반복해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덧붙여 “학대 피해 아동의 외모나 사생활에 대한 표현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조항을 개정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 스스로의 변화다. 언론사나 관련 협회들이 아동학대 보도 준칙을 만들거나,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전문기자를 채용하는 등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리적인 학교폭력과 사이버폭력을 포괄하는 미성년자 관련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학대 및 대응 예방을 최우선으로 삼는 심층보도가 활성화될 필요도 거듭 강조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역할이 약화되고 신뢰도가 계속 낮아지는 현재 상황에서 언론의 보도가 힘을 잃지 않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최선”이라며 “자극적인 보도를 독자들이 많이 볼지는 몰라도 결국 언론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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