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과장 논란에 휩싸인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작성자인 이규원 검사가 지난 6일 중앙일보 기자를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이 검사는 19일 경찰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중앙일보는 지난 6일 “이규원 질문이 윤중천 답 둔갑…尹별장접대 오보 전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을 달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찰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별장 접대’ 오보의 근거가 됐던 건설업자 윤중천 면담 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된 경위를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이규원 검사가 물었던 질문이 마치 윤중천씨가 답변한 것처럼 바꿔서 보고서에 적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찰 전언을 통해 윤중천 면담보고서에 적힌 “윤석열 검사장은 A의 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 A가 검찰 인맥이 좋아 검사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다”는 문구가 ‘이규원 검사의 질문이 윤중천씨의 진술처럼 적히는 형태’로 왜곡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찰은 이규원 검사가 이 부분을 단독으로 작성한 것이라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고도 전했다.

▲ 중앙일보는 지난 6일 “이규원 질문이 윤중천 답 둔갑…尹별장접대 오보 전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을 달고 보도했다. 사진=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 중앙일보는 지난 6일 “이규원 질문이 윤중천 답 둔갑…尹별장접대 오보 전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을 달고 보도했다. 사진=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8팀 소속이었던 이 검사가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등을 왜곡·과장했고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언론들이 ‘굵직한 오보’를 냈다는 보도는 중앙일보 외에도 적지 않다.

이 검사와 함께 조사단 8팀 외부위원이었다가 자진 사퇴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한국일보와 SBS에 윤·박 면담보고서를 포함한 1249쪽 분량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며 관련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 검사를 대리하고 있는 문상식 변호사는 22일 통화에서 “사실 왜곡하는 보도는 많지만 현재 다 고소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중앙일보 기사의 경우) 이 검사가 비윤리적으로 조사한 것처럼 기사를 썼다. 이 보도는 심하다 싶어 고소한 것이다. 이 검사 기본 입장은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SBS와 한국일보 보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일일이 고소하기 어려워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를 고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지난 2019년 10월11일 1면과 온라인에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는 제목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접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한겨레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추가 조사 없이 마무리”됐다고 전했고 주간지 한겨레21 1283호(10월21일치)도 “윤중천 ‘별장에서 윤석열 접대했다’”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한국사회 여론이 반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공방이 이어지던 때 나온 기사였다. 하어영 기자가 썼다.

한겨레는 7개월 만인 지난해 5월22일 오보를 인정하고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 총장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 기사의 취지는 윤중천씨의 발언이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보고서에 적혀 있으나 이를 넘겨받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검찰수사단’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며 “한겨레21은 윤석열 총장이 법무부 과거사위 보고서에 언급돼 있다는 정보를 법조계 주변 복수의 취재원에게 확인해 기사화를 결정했다”고 보도 경위를 밝혔다.

▲ 한겨레는 지난 2019년 10월11일 1면과 온라인에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는 제목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접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보도는 오보였다.
▲ 한겨레는 지난 2019년 10월11일 1면과 온라인에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는 제목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접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보도는 오보였다.

올해 초 이 검사가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불법적으로 강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재조사 과정에서의 위법 여부가 수사 대상이 되면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기반했던 과거 보도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기초했던 JTBC와 KBS 보도가 민사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는 등 무검증 언론 보도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겨레 오보 취재원으로 이 검사를 지목하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13일 “실제 문재인 정권 초기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불법출국금지 의혹 관련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한겨레신문, JTBC, KBS 등 특정 언론사 기자들에게만 정권 입맛에 맞는 정보를 가공해 건네주면서 결과적으로 오보를 초래했다는 의혹이 최근 검찰 수사를 전후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2019년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당시 한겨레신문 1면에 보도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별장 접대를 받았다는 오보나, 국민의힘 총선 후보로 출마했던 윤갑근 전 고검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골프를 같이 치는 등 친분이 있었다는 JTBC 오보 모두 이 검사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한겨레신문은 법무부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전에 인터넷에 먼저 출금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국일보도 19일 “진상조사단 활동 종료 후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윤 전 총장과 관련한 면담 보고서 내용은 2019년 10월 언론 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며 “당시 보도 내용은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취지로 면담보고서 내용보다 더 과장돼 있었다”면서 한겨레 오보를 언급했다.

한국일보는 “보도 당시 윤 전 총장은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로 여권과 대립하던 시기였다”며 “누군가 윤 전 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실체가 불분명한 보고서 내용을 전하면서 의도적으로 과장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했다.

이 검사는 자신이 한겨레 취재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검사 측 문 변호사는 “하어영 기자의 취재원이 이규원 검사가 아니라는 건 너무 명백하다. 이 검사가 너무 억울해하는 대목”이라며 “이 검사가 취재원이 아닌지는 한겨레 기사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이 2019년 5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이 2019년 5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도 지난 2월 보도에서 “보도 시점에 이 검사는 미국 유학 중이었고, 기자들의 질문에 ‘제보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 검사가 한겨레에 직접 제보했다고 보기는 증거가 부족하다”면서도 “그러나 보도에서 근거로 든 ‘보고서’ 역시 이 검사가 작성한 면담보고서였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 과정의 위법 여부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가 수사하고 있다. 문 변호사는 “중앙지검이 수사하는 사건은 아직 조사받은 적 없다. 검찰이 어느 부분을 인지했는지, 범죄 사실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문 변호사는 JTBC와 KBS 오보 취재원으로 이 검사가 지목되고 있는 것에 말을 아꼈다. 이 사안에 대해선 아직 이 검사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 문 변호사는 “이 검사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입장을 밝히고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한겨레가 아닌 한국일보·SBS를 택한 이유

“윗선 칼럼 보고 한겨레와의 공론화 어렵다고 판단”
 

한편, 한국일보와 SBS에 대검 진상조사단 자료를 제공한 박준영 변호사는 22일 SNS에 “저는 이 공론화를 당초 한겨레신문과 진행하려 했다. 오보를 낸 언론이 반성하며 바로잡는 게 의미 있다고 봤다”며 “지난 1월26일 현장 기자들이 성명을 발표할 당시 발표에 참여한 기자에게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제안했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현장 기자 41명은 지난 1월26일 자사 법조 보도가 데스크 주도로 정권 편향적으로 작성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들은 한겨레 편집국 국·부장단에게 이메일로 보낸 성명에서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제안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윗선의 칼럼 하나를 보고 한겨레와의 공론화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제안을 철회했다”며 보도 논조가 제보 언론 선택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실제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낸 박용현 논설위원은 지난 2월3일자 칼럼(“김학의 출금과 정의의 형평”)을 통해 김 전 차관 불법출금에 대한 검찰 수사를 겨냥해 “이 사안을 유독 심각하게 절차 위반에 대한 ‘응징의 시범 케이스’로 삼는 건 아무리 봐도 형평성과 공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은 “검찰이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의 문제점을 따져보겠다면, 출국금지를 주도한 검사와 법무부 관계자만 겨냥할 게 아니다”라며 “당시 출국금지에 소극적이었던 대검의 대응은 적절했는지, 또 법무부·검찰 내부자가 김 전 차관에게 출국금지 관련 상황을 알려줘 도피 시도를 도왔다는 의혹도 함께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 박준영 변호사. 사진=민중의소리
▲ 박준영 변호사. 사진=민중의소리

박 변호사는 22일 통화에서 “검찰 과거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정부·여당이 말하는) ‘검찰 개혁’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한겨레를 통해 공론화하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사건에 오보를 내고 사과한 적 있어서 한겨레라면 제보·제공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특히 올해 1월 한겨레 현장 기자들의 성명 발표가 인상 깊었다”며 “현장 기자 중 한 분한테 연락해 제안했었다. 그러다가 박용현 칼럼을 보고 한겨레는 안 될 것 같다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진보나 보수 언론에 제공했다가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려가 됐다. 특히 보수 언론 쪽이 자료에 관심이 많았다”며 “그래서 한국일보에 제안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일보 한 군데에만 자료 제공하는 것은 부담이었고, 공론화하기로 한 마당에 파급력이 큰 매체로서 SBS를 선택했다. 나를 위해서도 필요했던 선택이었다”며 “SBS 법조팀의 취재파일은 법조 제도 문제를 오랫동안 분석해왔다. 그런 부분에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대검 진상조사단은 법률에 근거를 둔 조사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사권에 한계가 있었다. 조사 방식 등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다. 훈령 형식으로 만들어진 조직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면서도 “다만, 조사 내용이 조사단 내부 기록으로만 남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2019년 당시) 밖(언론)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 난리를 겪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은 분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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