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0일 미 의회는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1.9조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구호법안(American Rescue Plan)을 최종 의결했다. 이 법안은 가계 현금 지급(1인당 1400달러), 실업수당 추가지급 연장(주당 300달러), 주‧지방 정부 지원(3500억달러), 코로나19 백신 배포 및 테스트 지원, 자녀 세액공제 확대, 주택 강제퇴거 유예조치 연장 등이 포함됐다.

또한 지난 3월31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 재건정책(Build Back Better Plan)의 일환으로 2.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중심인 ‘American Jobs Plan’(1차)을 발표했다. American Jobs Plan은 미 정부가 향후 8년에 걸쳐 추진할 ①운송 ②공공수자원, 광대역통신망 등 주거 ③보육 및 부양 ④혁신 및 연구개발 등과 관련한 인프라에 대한 투자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의료 및 교육 인프라와 관련된 ‘American Family Plan’(2차) 공개를 예고했다. 이것도 1~2조달러 규모로 예상돼, 미국 재건정책만 4조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America Job Plan’에는 막대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증세안, 15년에 걸쳐 2조달러 이상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Made in America Tax Plan)이 함께 포함되었다. 법인세 인상(21%→28%), 부유세 신설, 국세청(IRS) 역량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2차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연 수입 40만달러 이상의 개인에 대한 최고 세율 인상(소득세 최고세율인상) 방안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연방최저임금 100% 인상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시급을 2배가 넘는 15달러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자 한다. 이 방안은 상원의 반대에 부닥쳐 통과되지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계속 이 안을 추진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다.

바이든, 소득주도성장과 닮았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재정을 통한 가계 및 노동소득 지원,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 인프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교육 및 의료 등 공공인프라 강화,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부유세, 소득세 인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고 보던 그런 정책들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닮았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노동자와 서민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구매력을 대폭 끌어올려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워 가계 소득 지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며 총수요 진작을 통한 성장정책을 구사했다. 또한 코로나 위기가 발발하자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려 가계소득 지원 및 K-뉴딜과 같은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위키백과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위키백과

이에 대해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은 ‘소주성’이라 줄여 부르며 폄훼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족보 없는 경제이론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가부채 증가를 불러와 기본적으로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 정책으로 치부했다. 나아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자 소득주도 성장과 합쳐진 결과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부두(voodoo) 경제학 용어가 등장했다며 비아냥거렸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GDP 순위 11년 만에 하락 ‘세금 주도 성장’ 성적표 (2020년 05월28일) / 한국일보) 코로나 1년, 소득주도성장은 ‘공염불’… K자 양극화 지속될 듯 (2021년 02월18일)]

그런데 소득주도 성장과 세금주도 성장을 완성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 바이든 행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전국민재난지원금(2차 추경)으로 1인당 40만원, 4인 가구 최대 100만원을 지급했다. 바이든 정부는 여기서 더 나가 통 크게 1인당 1400달러(160만원)이고 4인이면 5600달러(640만원)을 지원한다. 1.9조달러 규모 코로나19 구호법만으로도 우리 1년 GDP 보다 큰 금액(2천조원)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2.2조달러 의료와 교육 등 공공인프라 확대에 1~2조달러 등 모두 6조달러(약 70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이 비용을 법인세 및 소득세와 자본세 인상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으니, 한국 보수진영이 그렇게 목 놓아 비판한 ‘세금주도 성장’의 완성판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전대미문의 양적완화에 이어 전대미문의 재정지출과 경기부양 정책으로 ‘세금을 퍼 부어’ 각 가정에 수백만원 현금지원을 하고 수천조원의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 실업을 줄이고 성장률을 끌어 올리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양일색이다. 미국 경제가 다시 돌아왔다며, 고성장-저물가-저실업의 골디락스 경제를 실현하게 됐다고 상찬해 마지않고 있다. 심지어 이 천문학적인 재원을 세금을 더 걷어 충당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도 글로벌 수준에서 재정지출이 늘었으니 미국이 세금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오히려 편을 들고 있다.

옐런의 고압경제론과 이력효과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를 총괄하고 있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연준의장으로 있던 2016년에 주장한 ‘고압경제론’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고압경제론에서는 경기침체 시 강력한 부양정책으로 총수요를 잠재 수준보다 강하게 자극하여 잠재성장률의 회복을 이끌어내고, 추가 하강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초과 수요유발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 골자로 재정정책 확대와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초과 수요 유발을 위한 재정과 통화정책의 부양 기조가 지속되어야 한다.

수요충격이 잠재성장률에도 영향을 준다는 입장은 ‘이력효과(hysteresis)’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력효과란 경기 위축이 반복되면 경제 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고 실제 성장률이 위축되어 잠재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력현상이 지속되면 회복되지 못해 잠재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 충격이 장기화되면 이력효과에 의한 투자위축과 노동자의 구직의지 상실로 이어져 성장 잠재력 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다.

옐런의 고압경제론의 핵심은 이런 이력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분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노동시장의 과열(타이트한 노동시장)을 유발하고, 일정기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노동 수요를 창출해 시장에 초과수요 상태를 조성하여, 침체가 장기화되면 실업 기간이 길어진 실업자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한다. 그들이 취업 기회를 얻게 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이것이 거시경제의 잠재성장률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시행된 부양책들은 옐런의 이런 고압경제론에 부합한다. 또한 노동자 가계의 소득 및 임금 인상 또는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지키고) 이를 통해 총수요를 부양한다는 점에서 고압경제론은 소득주도 성장론과 닮아 있다. 그리고 둘 다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으로 평가 받는다.

▲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 사진=flickr
▲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 사진=flickr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과 미국의 글로벌 독점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고압경제론은 노동자 가계에 대한 임금소득 지원 정책이 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잠재성장률의 상승 또는 하락을 방지해 성장을 이끌 수 있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미국은 올해 성장률을 6.5%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총 6조달러에 달하는 정부의 경기부양과 인프라 투자 등에 기댄바가 크다. 게다가 이 성장은 정상적인 성장이라기보다는 2020년 성장률이 –3.5%였던 점을 감안하면 주로 기저효과이며 수요회복에 따른 일시적인 상승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고압경제론에서 말하는 잠재성장률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도 2021년 6.5% 성장에서 2022년 3.3%, 2023년 2.2%로 하향하며, 장기전망(longer run)으로는 위기 이전 수준인 1.8%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IMF의 전망도 유사한데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의 대형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경제는 6%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이후 곧 하향한다. 회복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득주도 성장론도 그렇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들도 회복을 목표로 할 수 있어도 성장을 목표로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리고 실제 성장은 산업부문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성장론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혁신성장론은 박근혜 정부의 ‘4차산업 혁명론’과 판박이로 신산업 주도의 성장전략을 말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책들은 이면에 이런 성장전략을 감추고 있다. 이면의 진실, 인프라 투자가 일자리 창출과 녹색전환을 의미하는 그린뉴딜로 포장되어 있지만 전기차, 반도체, 5G 등 신산업과 녹색 부문에서 산업경쟁력을 확보해 미국의 글로벌 독점체제를 확대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인프라 투자와 함께 반도체, 희토류, 5G 등 주요 물자를 안보자산화 하고, 중국과의 패권경쟁은 물론이고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보급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바이든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은 동일한 구호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에서도 가계 소득지원이나 최저임금 인상과 달리 혁신성장이나 K-뉴딜,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이나 자본 내에서도 별반 문제제기가 없었다. K-뉴딜도 미국의 인프라 투자와 마찬가지로 수소차,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 신산업 분야에 치중해 있고 재벌이 독점하고 있는 산업영역에 대한 국가 지원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재벌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보수진영의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상찬도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고압경제론 등은 경제위기와 노동유연화로 축소된 노동자 임금소득을 지원해 부족한 소비를 채워주는 역할을 할 뿐, 성장 전략은 이처럼 다른 곳에 숨어 있다. 잠재성장률 증가 요인은 멀게 느껴지고 실제 무역거래액이나 소비증가 등 손에 잡히는 게 성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한국, 중국은 물론 유럽, 일본도 마찬가지로 대자본 중심으로 신산업과 녹색산업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성장 전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그에 따라 글로벌 공급과잉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탄소저감을 목표로 한 녹색전환과 에너지 전환의 기술독점과 공급독점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보급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녹색전환의 자국 우선주의, 글로벌 독점도 심화함에 따라 기후위기가 가져다 준 지구의 생존위협을 더욱 위태롭게 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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