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 희생자 사인규명과 관련, 함수에서 유일하게 시신으로 발견된 고 박○○ 하사의 구조 부실을 이유로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혐의는 직무유기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다.

신 전 위원은 12일 오전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신 전 위원은 두 고위공직자를 두고 “천안함 반파 이후 함수와 함미의 이동방향 및 최종 침몰지점을 파악함에 있어 군 당국의 정보 및 전략자산을 통한 추적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을 뿐만아니라 함수의 경우 완전 침몰될 때까지 해경정이 선회하며 지키고 있는 등, 이동과 침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지목했다. 그는 “그런데도 언론과 국민에게는 ‘함수와 함미가 침몰하였으며 현재 최선을 다해 수색하고 있다’고 거짓 발표를 반복하면서 골든타임에 해당하는 이틀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며 “그 과정에서 무려 16시간여 동안이나 수면 위에 선체 일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아 고 박○○ 하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크다”고 주장했다.

박 하사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를 두고 신 전 위원은 “박○○ 하사가 완전히 전복된 함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자 그나마 공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이로실까지 이동하여 그곳에 머물렀으나 군 당국이 수색을 방기함으로 인하여 결국 이틀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소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박 하사의 억울한 희생에 대한 피고발인들의 책임을 묻고자 ‘직무유기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죄’로 고발하게 됐다고 썼다.

신 전 위원은 지난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한 천안함 희생자 48명에 대한 조사 요청 진정서가 같은해 12월 조사개시 결정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이유를 두고 “희생자 가족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천안함 사고로 인한 희생자의 사망원인과 관련된 분들의 강력한 항의와 언론의 집요한 취재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어 ‘가장 억울한 죽음’으로 판단되는 희생자 가운데 한명인 故 박○○ 하사의 사망원인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 전 위원은 박 하사가 2010년 3월26일 사고 시점인 21시22분경 당시 안전당직을 수행하며 순찰하다 함수 자이로실 부근으로 이동중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정작 사고 직후 생존한 승조원 58명은 모두 함수에 있었고, 당시 함수엔 더 이상 승조원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위원은 “박 하사가 함수쪽에 건너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누구라도 박 하사가 순찰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사고 후 갑판 위에서 인원점검 당시 그 사실을 지적했을 것이고, 누구라도 다시 내려가 침수가 되지 않은 공간이라도 수색했을텐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함수 침몰 후 한 달 가까이 지난 2010년 4월24일 함수를 인양한 후 수색과정에서 박 하사가 자이로실에서 시신으로 발견하고서야 사고 당시 함수 쪽을 순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석했다.

▲천안함 함수가 침몰사고 다음날인 2010년 3월27일 아침 백령도 앞바다에 선수 부분이 가라앉지 않은채 떠 있는 장면을 백령도 면사무소 공무원이 촬영한 사진. 사진=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
▲천안함 함수가 침몰사고 다음날인 2010년 3월27일 아침 백령도 앞바다에 선수 부분이 가라앉지 않은채 떠 있는 장면을 백령도 면사무소 공무원이 촬영한 사진. 사진=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

 

특히 자이로실은 함수의 가장 아래쪽 지하2층으로 오른쪽으로, 전복되면서 기울었을 땐 박 하사가 있는 공간이 수면에 가까웠거나 공기가 남아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추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신 전 위원은 갑판 위에 모여 있었던 58명 가운데 누군가라도 “함수 내부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번 수색해보자”라고 했거나, 구조 완료된 후라도 구조 당국에 수색을 요청했다면 생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같은 상황과 함께 함수가 사고후 16시간여 동안 수면에 떠 있었다는 사실도 함수에서 발견된 박 하사의 시신과 함께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대목이다. 함체가 완전히 수면아래로 가라앉기 전에 조치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게 남는 탓이다. 사고시각은 3월26일 21시22분, 함수가 완전히 수면에서 사라진 시각은 이튿날(3월27일) 13시37분이다. 이를 두고 신 전 위원은 “함수가 16시간여 동안이나 떠 있었는데 정부와 군 당국은 그 사실을 숨긴 채 ‘수색중’이라며 거짓발표를 했고, 모습을 드러낸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방치하고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신 전 위원의 1심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함수가 떠 있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함수의 위치 뿐 아니라 이동상황도 TOD 뿐 아니라 KNTDS 등으로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바람에 고 박 하사의 구조 실패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신 전 위원은 군에 대해 △천안함 함장이 갑판 위에서 생존자 인원 점검을 할 당시 혹시라도 함수 내에 남아 있는 대원이 없는지 보다 면밀히 수색을 했다면 △구조된 후라도 조속히 잠수사를 투입해 수색을 요청했다면 △날이 밝은 후라도 함수를 확보해 수색했다면 박 하사가 구조되어 생존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했다.

▲국방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중에서
▲국방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중에서
▲지난 2010년 4월24일 해상크레인이 천안함 함수를 인양한 직후 바지선 위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10년 4월24일 해상크레인이 천안함 함수를 인양한 직후 바지선 위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사고 이후 이틀 동안이나 함미 뿐 아니라 함수까지 방치해 박 하사 구조의 기회를 놓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현재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태영 전 장관과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성찬 전 해군참모총장에 12일 오후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고, 문자메시지와 SNS메신저로 고발에 어떤 입장인지 반론을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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