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제도를 마련했다. 그만큼 SBS 조직원들이 바라는 공정방송에 대한 염원이 그 어떤 방송사 조직원보다 깊고 크다고 생각한다.”(박정훈 SBS 사장)

지난 2017년 10월13일 SBS ‘8뉴스’는 자사가 “SBS가 국내 방송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박정훈 사장은 ‘사장 임명동의제’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SBS는 노사 단체협약에 명시된 경영진 임명동의제 조항 삭제를 요구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사측은 지난 2일 언론노조 SBS본부에 단협 해지 통고를 하며 다음과 같이 ‘노영 방송’ 프레임을 가동했다.

“구성원들의 검증을 통해 공정방송을 담보하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실제로는 노조위원장이 경영진 인사를 재가하는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돼 버렸다. 노조위원장이 사장과 경영진 인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제도로는 치열한 미디어 전쟁에서 결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회사의 결론이다.”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노조 주장대로 공정방송에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면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KBS, EBS, MBC부터 도입을 추진했을 것이다. 또 해당 언론사 노조들도 도입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방송사와 공기업, 일반 기업 등에서도 보편화한 제도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자사 사장이 자사 메인뉴스 보도를 통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제도를 마련했다”고 극찬한 사실을 망각한,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다름없는 ‘표변’이다. 

사측은 2017년 10월13일 경영진 임명동의제 등을 담은 노사·대주주 합의를 통해 노사 갈등 완화를 기대했지만 당시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SBS 대주주(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와 사장, 경영본부장 퇴진 운동을 벌이고 대주주를 포함해 전현직 사장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약속을 파기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10·13 합의 파기 책임을 윤창현 전 언론노조 SBS본부장(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 SBS 8뉴스 2017년 10월13일자 리포트. 사진=SBS 뉴스
▲ SBS 8뉴스 2017년 10월13일자 리포트. 사진=SBS 뉴스

그러나 사측은 입장문에 윤석민 회장이 SBS 경영에 개입했다고 비판 받는 사건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10·13 합의의 대원칙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였다. SBS는 지난 2019년 3월28일 언론노조 SBS본부의 반대 집회를 물리적으로 봉쇄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소유 경영 분리 원칙을 주장하는 이사를 좌천하는 등 기존 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직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가 시민사회 반발에 부닥쳤다. 

이후 언론노조 SBS본부는 사측의 합의 파기를 선언한 뒤 윤 회장 등이 SBS 수익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언론노조 SBS본부가 윤 회장과 박정훈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던 이유다. ‘3·28 이사회 사태’는 SBS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한 계기였다. 이 사건을 언급도 않고, 경영진 임명동의제를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매도하는 것에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기자협회는 9일 “SBS 사측은 자신들이 그렇게 자화자찬했던 합의를 불과 4년도 안 돼 일방적으로 폐기를 주장하고 또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체협약을 해지했다”며 “이러한 행위는 방송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포기하고 사기업으로 전락하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SBS 사측은 하루빨리 2017년 노사가 합의한 임명동의제를 유지하고 노조와의 단협 해지를 철회해 적극 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그것이 구성원들이 SBS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무 환경이자 시청자로부터 신뢰받는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방송기자연합회도 8일 “SBS 사측은 4년 전 임명동의제를 두고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서 국내 방송 역사에 없었던 획기적인 조치’라고 밝혔다”며 “지금 사태는 누가 보더라도 사측의 일방적 억지에서 시작됐다. 단협 파기를 철회하고 사측은 당장 노측과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2017년 10월13일 최대주주와 노사가 서명한 합의문에는 ‘방통위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해 성실한 이행을 사회적으로 약속하고 보증한다’고 명기돼 있다”며 “SBS 임명동의제는 형식상으로는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됐으나 실질적으로는 지상파 방송 SBS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제작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천명하며 시청자와 맺은 사회적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연대는 “방통위는 재허가 조건 및 권고 사항의 이행 여부를 관리해야 할 감독 책임을 진다”며 “특히 그 중에서도 임명동의제는 방통위가 그간 모든 민영방송 심사에서 제1의 원칙으로 강조해 온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데 핵심 기능을 하는 제도적 장치로 감독 필요성이 매우 큰 사안이다. 방통위는 서둘러 사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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