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거리가 못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그것은 뉴스거리가 된다.” 수업에서 ‘뉴스란 무엇인가’를 배울 때 교수에게 들었던 얘기다.

‘선’의 편집장이었던 찰스 데이나가 한 말이라는데, 뉴스가 되려면 사람의 관심을 끌거나 충격적 사건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과 같은 일상적 일은 뉴스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기사가 출고되자마자 곧바로 조회수로 평가받는 지금과 같은 시대엔 이 저널리즘 경구가 더 엄격히 적용된다. 지난 4월11일 오후 8시 기준으로 한 언론사의 가장 많이 본 뉴스는 ‘세제 수액 사건’과 관련한 기사였다. 전직 간호사가 병실에 입원한 환자 수액에 욕실 세제를 주입한 사건이 있었는데, ‘간호사가 상습적으로 음주 근무를 했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기사는 잘 팔린다.

▲ ‘세재 수액 사건’ 관련 보도 검색 결과
▲ ‘세재 수액 사건’ 관련 보도 검색 결과

일단 환자 수액에 욕실 세제를 주입했다는 사건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고, 그 일을 벌인 사람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면 독자들은 ‘욕을 퍼부으러’ 들어올 테니 말이다. 사람들 관심이 조회수로 평가되는 이런 구조에서라면 기자들은 이렇게 하이에나처럼 ‘사람이 개를 무는’ 사건을 좇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걸로 정말 괜찮을까? 기자들은 ‘일상의 역치’를 넘는 자극적 사건만을 물고 오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까.

“의미 있는 기사가 될 게다. 사회적 약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니. 필요한 글을 쓰는 것이니. 그러나 조회 수를 담보할 수 없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체헐리즘’이란 기사를 쓰는 남형도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기사가 되겠냐던 말, 넌 왜 그런 거에만 관심 있냐던 말, 팔리는 기사를 쓰라던 말을 들어왔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하는 기사는 잘 소비되지 않아서, 쉽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수습기자 때 끓어왔던 열망이 실제 현실과 맞닥뜨린 뒤 실망한 날이 많았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사명감으로 기자가 된 다른 기자들의 고민과도 맞닿아있을 것이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돈벌이 기사’와 재미없지만 ‘의미 있는 기사’ 사이를 오가며 고뇌한다. 그러면서 꾸역꾸역 쓰는 거다. 수많은 ‘돈벌이 기사’와 몇 건의 읽히지 않는 ‘의미 있는 기사’를.

▲ 동아일보 디지털 콘텐츠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
▲ 동아일보 디지털 콘텐츠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

그렇기에 동아일보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이 거둔 성과는 더욱 값지다. 이 기사는 조회 수 300만회를 기록하며 독자 호응을 끌어낸 기사다. 높은 조회수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관심과 돈을 좇는 다른 기사와는 결이 달랐다. ‘장기기증’이라는, 어떻게 보면 뉴스가 되지 않는 일상적 사회 문제를 주제로 잡았다.

[관련사이트 : 동아일보) 환생-첫 번째 이야기-The Original]

이 기사를 보도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장기기증은 기시감이 있는 주제”였지만, “‘우리 사회는 정말 살 만한 곳인가’에 대한 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역”이라 취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사는 동생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의사였던 형이 동생의 사고를 전화로 접하고 믿지 못하는 모습, 철제 침대에 누운 동생 모습을 보며 ‘뇌사(腦死)’를 떠올리곤 불안해하는 형의 모습, 딸 같은 아들 노릇을 했던 착한 동생의 인생, 수술실로 들어가는 동생의 베드를 붙잡으며 오열하는 어머니 모습, 동생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 충분한 취재를 통해 장기기증자 가족의 이야기를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아낸 이 기사는 ‘사람이 개를 무는’ 공식 없이도 독자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좇아야만 기사가 된다는 공식은, 게으른 보도를 합리화하고자 만든 논리일지도 모르겠다. 공들이지 않고,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스트레이트로 빨리빨리 써낸 기사도 읽히게 하는 공식이란 것이다.

▲ 동아일보 2월1일 1면 갈무리
▲ 동아일보 2월1일 1면 갈무리

물론 하루 여러 건 기사를 빨리빨리 써내야 하는 기자 개인에게 ‘환생’과 같은 기사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동아일보도 무기한 장기취재를 허용하는 ‘히어로팀’을 만들고 나서야 이런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진기자, 디지털 전문가, 전담 편집기자 등 여러 사내 인력의 협업도 있었다.

그래서 언론사에 부탁하고 싶다. 기자들에게 ‘의미 있는 기사’를 고민할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의미 있는 기사를 어떻게 하면 잘 읽히게 할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사람들 마음을 울리고 사회를 바꿀 기사가 될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잘 팔리는 ‘의미 있는 기사’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지금, 언론사가 바뀌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런 기사들로,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존재 이유를 되찾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때, ‘돈벌이 기사’와 ‘의미 있는 기사’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하던 기자들도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기자들은 황색 저널리즘에 빠진 언론을 구할 어떤 명작을 남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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