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들어갑니다” 소리에 “밥 먹고 합시다”. 
방송 장비 들고 “오늘도 밤샘”. 
“막내야” 소리에 ‘언짢음’. 
월급봉투를 들고 “뭐야 이거 왜 이래?”. 
“방송 스태프도 노동자다” 플래카드 앞에서 “와”하고 함성.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장면은 아니고, 텔레그램 스티커 이야기다. 지난해 4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만든 ‘미디어 세이프’ 텔레그램 스티커는 미디어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스티커다. 이모티콘 특유의 귀여움은 물론이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쓰자”, “12시간 찍고 12시간 쉬자”, “무늬만 프리랜서 인제 그만”과 같은 방송 노동 변화를 위한 요구까지 한다. 이렇게나 귀여운 노동운동이라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만든 '미디어 세이프' 텔레그램 스티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만든 '미디어 세이프' 텔레그램 스티커.

해당 스티커를 만든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상근 활동가는 이외에도 다양한 일러스트와 웹툰 등으로 꾸준히 사회 문제를 지적해왔다. 그는 “사회 ‘이슈’가 아닌 사회 ‘운동’에 대한 선입견을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자꾸 신경 쓰인다”며 “어떻게 하면 주제와 활동을 접하는데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한다. 미디어오늘은 이재임 활동가와 6일 서면 인터뷰로 그의 작업을 함께 돌아봤다. 

이재임 활동가는 2019년부터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가로 근무 중이다. 이곳에서의 인연은 ‘들어봐, 나의 몫소리’라는 작업이 계기였다. ‘들어봐 나의 몫소리’는 2017년 한겨레21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필요성을 알리는 기획으로, 이 활동가는 만화를 그렸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기준’ 문제를 다룬 만화였다. 당시 이 활동가는 수급 당사자, 사회복지사, 활동가 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족이 책임질 수 없는 가난의 문제를 담았다. 

▲한겨레21 '들어봐, 나의 몫소리' 기획 가운데 삽입된 만화.
▲한겨레21 '들어봐, 나의 몫소리' 기획 가운데 삽입된 만화.

그는 “사회 현안과 더불어 활동 이야기를 주로 다루다 보니 작업에 앞서 인터뷰를 길게 하는 편”이라며 “목소리를 잘 듣고 잘 전달하는 것이 작업의 주된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의 경험이 가진 힘을 잘 살리자는 것이 작업의 원칙이라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 시리즈 만화와 기사 일러스트 연재에도 참가했다. 해당 기획은 한겨레 기자들이 공장, 콜센터 등에 노동자로 취업하고 그 경험을 기사로 전했다. 이 활동가는 위장 취업 당시 기자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각 일터 속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어 만화로 재구성했다. [관련 기사: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 orz ]

▲한겨레 '노동orz' 웹툰.
▲한겨레 '노동orz' 웹툰.

그 외 사회진보연대 월간지 ‘오늘보다’에 ‘단결툰’을 연재했고 일상적 노동법을 질문과 답변으로 풀어낸 ‘꿀팁상담소’ 일러스트 작업, 한빛미디어센터에서 만화 겸 카드 뉴스 기획,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바지락’에 ‘화가 많은 신입’이라는 만화도 그렸다. 

이 활동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그림과 만화를 자주 그렸다고 한다. 처음 만화를 그리게 된 곳은 다니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출범을 알리는 소식지였다. 

▲이재임 활동가가 대학 시절 그린 만화.
▲이재임 활동가가 대학 시절 그린 만화.

이 활동가는 “내가 그린 만화를 재사용하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무척 반갑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사용되는 건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만화가 드러냈던 현실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7년 마사회의 다단계 고용구조에서 비롯된 연이은 마사회 노동자들을 죽음을 계기로 ‘어느 마필관리사의 죽음’을 그렸는데, 몇 해가 흘러 2020년 초 문중원 열사의 분향소가 차려진 모습을 봤다“고 언급했다. 그의 만화가 제기했던 사회 문제가 반복돼온 것이다.   

▲'어느 마필관리사의 죽음' 가운데 일부.
▲'어느 마필관리사의 죽음' 가운데 일부.
▲'즐거운 휴가길, 공항 노동자를 존중합시다'라는 만화 가운데 일부.
▲'즐거운 휴가길, 공항 노동자를 존중합시다'라는 만화 가운데 일부.

이 활동가는 2017년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의 ‘즐거운 휴가길, 공항 노동자를 존중합시다’라는 캠페인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실제 공항 노동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작업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 활동가는 해당 작업을 언급하며 “재미있었던 점은 내 그림이 공유될 때 ‘공공운수노조’나 ‘감정 노동자’가 언급된 페이지는 빠져 있기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노조’와 같은 말을) 의도적으로 누락한 채 유포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들에게 ‘진상 고객’의 문제에 있어 감정 노동자라거나, 노동 환경이라거나, 고용구조 같은 것들은 쉽사리 연결되지 않거나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앞으로 작업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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