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커리어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에서 운영하는 ‘폴인’ 플랫폼과 또 다른 커리어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퍼블리’가 있다. 두 매체는 멤버십을 통한 유료 플랫폼이다. 폴인은 월 1만2800원, 퍼블리는 월 1만6900원이다. 그 외에도 ‘커리어콘’이라는 콘퍼런스도 있다. 미디어스타트업 이오(EO)스튜디오와 김나이 커리어 엑셀러레이터가 만든 행사인데, 참가비는 19만9000원이었다. 

유료 콘텐츠나 유료 콘퍼런스 등 수익 모델은 기존 미디어가 시도했을 때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최근 커리어 콘텐츠 부상은 어떤 콘텐츠에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지 연구하던 매체들의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여러 형태로 퍼져나가고 있다.

커리어 콘텐츠 중심에 김나이 커리어 엑셀러레이터(Career Accelerator)가 있다. 그의 ‘1:1 커리어 컨설팅’은 29만9000원(회원가 26만9000원)이다. 그는 2003년부터 증권사 JP모건에서 일하다 2014년 ‘커리어 엑셀러레이터’로 ‘창직’했고 현재 폴인에서 링커(linker)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상담하러 온 사람들 특성이나 고민을 파악해 장기적 커리어 설계를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커리어를 상담한 사람만 1800명이다. 왜 사람들은 커리어 이야기를 돈 주고까지 보고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3월29일 오후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와 1시간 동안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의 1:1 상담 안내문.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의 1:1 상담 안내문.

- 커리어 이야기를 ‘돈을 주고서라도’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선 ‘저성장’ 시대다. 회사를 잘 다니는 것만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변화가 더 빨라졌다. 이름값이 좋은 회사라고 해서 안정적이지 않고,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새로운 회사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그저 회사를 잘 다닌다고 생활이 안정적이거나 커리어가 저절로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두 번째는 조직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일을 하는데,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내는 것인지 고민이 많아졌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것에 이어 ‘평생 직업’도 사라지고, 살면서 직업을 3~4번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등을 배운 적 없으니 유료라도 커리어 콘텐츠를 보게 된다.”

-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 본인의 계기도 비슷했나. 

“나 역시 증권사를 다니면서 ‘커리어 사춘기’를 겪었다. 커리어 사춘기를 겪기 전까지는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왜 잘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놈의 ‘스펙 전쟁’을 통해 대학에 가고, 대학에 가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토익 점수, 인턴을 몇 번 했는지 줄 세운다.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 위주로 생각한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커리어 사춘기를 겪는데 막상 이 고민을 풀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마음을 채워주는 콘텐츠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커리어 엑셀러레이터라는 직업을 만들게 된 것인가.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상사에 대해 푸념하고 욕하고 끝내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푸념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이야기하고 가이드를 만들어야 실행할 수 있다. 결국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지?’, ‘나는 무슨 일을 오래 할 수 있지?’라는 것에 답을 원했다. 명함에 회사 이름 지우고 나의 이름으로 설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필요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하게 됐다.”

▲커리어 컨설팅 상담 안내문.
▲커리어 컨설팅 상담 안내문.

- 저렴한 가격은 아닌데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커리어 상담은 30만원 선이고 온라인 세션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19만원, 10~15년차 대상의 커리어 상담은 더욱 비싸다. 저는 이력서를 고쳐주거나 면접 스킬을 알려주거나 하진 않는다. 저와 마주하는 분들을 들여다보고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일로 만들고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결국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미국의 경우 커리어 코칭 비용이 1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면 돈 있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이 정도 가격을 가져가는 건 정말 일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시는 분들과 제대로 고민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에너지가 좋은 분들이 저와의 상담을 통해 더 많은 성장과 변화를 겪길 바란다. 그저 무조건적 응원이 아니라 현실적 조언을 주고 받으며 연대를 만들어가고 싶다.”

- 보통은 선배나 연장자에게 커리어 상담을 하는데, 이런 상담이 전문적으로 발전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은 ‘멘토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현재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를 아우르는 말)들과 선배 세대가 겪은 경험이 너무 달라서 함부로 조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MZ세대들이 조언 받는 걸 싫어한다는 분석도 많은데 그것보다 그들과 겪은 경험이 너무 달라 그들에게 맞는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드문 것 같다. 이 때문에 폴인이나 내 커리어 상담을 통해 현실 선배가 아닌, ‘내가 회사에서 찾을 수 없는 선배가 되어주는 매체’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 회사 내 분위기가 왜 이렇게 바뀐 것 같나. 

“‘각자도생의 시대’다. 커리어 상담을 하면 많이 듣는 말이 ‘외롭다’는 말이다.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보통 일에 열정적인 분들이 많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 열정을 드러내면 ‘넌 왜 유난이야?’, ‘대충 다녀’, ‘워라밸 챙기면서 다녀’ 이런 소리가 돌아오니까 외롭다는 거다. 회사 선배에게 커리어 상담을 하지 않는 이유로 마음 속으로 ‘저 상사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점점 고민이 많아지고 표현하고 싶은데 멘토나 선배를 찾기가 어려워지는 각자도생의 시대이기 때문에 상담자들이 내게 찾아오는 것 같다.”

- 지적한 것처럼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시대인데도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증권사를 다녔다. 일에 대한 관점도 투자 개념으로 바라본다. 일어나서 9시부터 6시까지, 내가 가장 멀쩡한 시간을 투자하는데 설렁설렁 대충 보내면 그것만큼 마이너스가 되는 투자가 어디 있나. 그저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결국 나에게 쌓이지 않는다. 9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면 워라밸이 좋은 걸까? 일하는 시간의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따져야 한다.”

▲'폴인'에서 제공하는 커리어 관련 콘텐츠들. 사진출처=폴인 홈페이지.
▲'폴인'에서 제공하는 커리어 관련 콘텐츠들. 사진출처=폴인 홈페이지.

- 증권사에서 커리어 엑셀러레이터로 전직하는 과정은 어땠나. 사람들이 전직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우선 현재 직장에서 관심 가는 콘텐츠나 시선이 가는 것들을 많이 보라는 조언을 한다. 나의 경우 ‘세바시’, ‘테드’나 책, 유튜브 등을 많이 보면서 참고했다. 전직 관련 상담을 할 때 우선 내가 했던 일의 역사는 무엇인지 죽 나열하고, 그 점들을 잇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나를 관찰해야 한다. 이후 시장에 ‘소프트 랜딩’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원이 브런치 식당을 만들고 싶다면 동네에서 제일 잘되는 브런치 식당에 가서 메뉴 구성, 테이블이 몇 개인지,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등을 조사하러 다니다가 내가 가능한 메뉴와 식당 모습을 짜본다. 돈 생각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보는 등의 실행을 한다. 실행하면서 관련 직종에 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 분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상상만 하지 말고 분석하고 시행해볼 것을 단계별로 나눠 말씀드린다. 공부만 하지 말고 마켓으로 나가봐라.”

- 커리어에 대한 질문할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 

“전문성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들이 ‘진짜 전문성’에 대한 질문인데 똑똑한 개인은 나만의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회사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다 보면 나만의 무기가 뭔지 헷갈리게 된다. 어떤 것을 벼리고 쌓아 나가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이어나갈지에 고민이 많다.”

▲EO스튜디오와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가 함께한 '커리어콘'의 포스터.
▲EO스튜디오와 김나이 커리어엑셀러레이터가 함께한 '커리어콘'의 포스터.

- 지난해 언론재단에서 ‘기자들의 커리어 빌딩’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커리어 상담은 어떤가.

“기자분들은 데일리 마감을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트렌드를 빨리 파악한다. 이것은 강점이다. 반면 예전에는 기자만이 깊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꼭 기자가 아니어도 인플루언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자분들이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하시는 것 같다.”

- 기자들의 전직 상담에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인가.

“우선 ‘내가 기자였다’는 걸 내려놓으라고 한다. 대기업에 다녔던 분들이 회사 명함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자분들은 ‘내가 기자’라는 의식이 있다. ‘내가 기자다’ 이것을 내려놓고 내가 어떤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인지 바라봐야 한다.”

- 지금도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내게 재밌는 일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고 스스로 물어보고 대답해주는 과정이 중요하다. 내 커리어 상담에 직장생활 2년차부터 25년차까지 온다. 커리어 고민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나는 뭘 좋아하지?’, ‘이걸 왜 하고 싶지?’, ‘어떻게 다르게 하고 싶지?’ 등을 물어야 한다. 하나 더. 어차피 하는 일이면 일하는 것을 투자 관점에서 바라보면 객관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된다. 증권사에 오래 있었지만 주식과 부동산은 운의 영역에 가깝다. 가장 좋은 투자처는 일이다. 내가 가장 멀쩡하게 깨어있는 시간 동안 어떤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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