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지역라디오 피디들과 세미나를 할 때다. 베를린 인구가 400만명 가량 되는데 지역라디오는 10개가 넘는단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묻는 와중에 그들이 우리(경기방송)의 가청인구를 묻는다. 1100만명이라고 답하자 화들짝 놀란다. 도대체 직원이 몇 명인데 그 거대 권역을 커버하느냐고. 그 때가 10여년 전이다. 그 새 경기도 인구는 더 늘어 2020년 12월 기준 1380만명이다. 올해 중으로 비어있는 FM 99.9의 새 사업자가 결정된다면 그 채널은 가청인구 1380만명을 가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메트로 방송이 될 전망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본다. 어떻게 운영해야 1380만명의 요구를 제대로 담는 '도민의 방송'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출입기자 중심 ‘나와바리’ 관행을 극복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열린 편집’(오픈 저널리즘) 시스템을 구축해 1380만명의 1인 미디어들을 네트워크로 잇고 또 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대주주 수익을 우선하는 민영모델보다는 공영방송이 적합하며, 공영 중에도 보도편성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비영리 공익법인 형태가 가장 좋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산술적으로 따져보자.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만 31개 시군이다. 기자 한 명씩 뽑아도 최소 31명이 필요하다. 수원같은 특례시는 인구 124만명으로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다. 도청은 별개의 영역으로 수원에도 있고 의정부에도 있다. 검찰청도 있고 법원에 고등법원까지 있다. 국세청도 있고 경기지역 한국은행도 있다. 도대체 몇 명의 기자를 뽑아야 할까? 운영이 될까? 이처럼 영역(나와바리)을 정해 기자실을 채우는 관행으로는 경영도 힘들거니와 도민 눈높이에 맞는 심층보도도 힘들다.

실마리는 시민이 참여하는 ‘열린 편집’(오픈 저널리즘) 시스템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08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쌀 직불금 부당수령’ 의혹을 최초 보도한 곳은 KBS도 경기방송도 아닌 경기도 김포의 풀뿌리 언론이었다. 농민기자가 소문을 듣고 검증에 착수해 감사원 특별감사까지 이끌어냈다. 농사짓기도 바쁜 그가 굳이 기사를 쓴 이유는 기자실을 오가는 기자들에게 제보를 해봤자 제대로 쓴 기사가 나오지 못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출입기자 시스템은 어느새 관공서 광고따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된것이다.

이런 시민기자가 김포에만 있을까? 여주에는 ‘강천섬’이라는 너무 아름다운 생태공원이 있는데 며칠전 큰 불이 났다. 캠핑족의 부주의가 자연을 태운 것이다. 강천섬 근처에 사는 한 주민은 불타는 강천섬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우리 마을도 ‘차박’ 캠핑족 때문에 쓰레기 소음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며 경종을 울렸다. LH 땅투기 의혹이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옮겨붙고 있는데, 사실 이곳에선 3년전에 개발도면이 돌아다니는 등 각종 의혹이 나오고 있었다. 없는게 아니라 묻혔던거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이제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가 라디오가 되고 뉴스가 돼야하고 그럴 수 있는 시대이다. 모든 시민이 SNS를 통해 미디어가 되고 여론을 형성하는 이 초연결사회에 지역방송의 역할은 자사 인력을 통한 정보의 독점적 제공보다는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공유와 검증’에 방점을 두고 삶의 현장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민영방송이 이걸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2019년 기자협회보 조사결과 지역신문사 17곳 중 7곳, 지역방송 11곳 중 5곳의 대주주가 건설사였다. 투기의혹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을까? 일선 기자들에게 사주회사는 금단의 영역이다. 인력은 줄이되 조회수는 늘리는 가성비 경영은 제보보다 실검기사를 따라쓰게 만든다.

공영으로 가야한다. 시장 바뀔 때마다 편성 바뀌는 ‘시영’ 말고 독립 편성이 보장된 비영리 ‘공영’으로. 그래야 경기지역에만 80개 넘게 운영중인 공동체라디오들과, 수백개 마을미디어들과, SNS를 손에 쥔 수많은 시민통신원들과 함께 서울중심 저널리즘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경기도민은 그럴 자격 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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